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INTC) 주가가 9% 하락했다. 회사가 장기 성장동력으로 내세웠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의 비용을 대폭 삭감하고 일부 프로젝트를 중단하기로 발표한 직후다.
2025년 7월 25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결정은 인텔이 수년째 이어진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놓은 최신 ‘턴어라운드’ 전략이다. 이날 공개된 2분기 실적은 매출·이익 모두 시장 기대치를 웃돌았으나, 파운드리 사업의 불확실성이 투자심리를 짓눌렀다.
인텔은 3분기 매출 전망도 월가 예상치를 상회한다고 밝혔으며, 조정 주당순이익(EPS) 0.10달러를 기록해 LSEG 컨센서스 0.01달러를 크게 넘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생산능력 확대 계획에 ‘백지수표는 없다’는 경영진의 메시지가 시장에 충격을 주었다.
“확정 고객 없는 설비 확장은 없다”
3월 취임한 립부 탄(Lip-Bu Tan) 최고경영자(CEO)는 사내 메모에서 차세대 공정 ‘14A’ 개발을 “고객 주문이 확보된 범위 내에서만 진행하고 추가 투자는 보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더 이상 blank check(무제한 지원)는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같은 날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인텔은
“다음 기술 사이클에서 핵심 고객을 확보하지 못하면 파운드리 사업을 보류 또는 중단할 수 있다”
고 명시했다.
보고서는 “현재까지 어떤 노드(node)에서도 의미 있는 외부 고객을 확보하지 못했으며, 14A 노드 또한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적었다.
연초 상승분 대부분 반납
이번 급락으로 인텔 주가는 올해 상승분을 거의 모두 잃었다. 2024년에는 연간 60% 폭락하며 역대 최악의 해를 기록했는데, 이는 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NVDA)와의 격차, 그리고 파운드리 베팅에 대한 회의론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회사는 독일·폴란드 신규 공장을 철회하고, 미국 오하이오 공장의 생산 속도도 늦추기로 했다. 인텔은 “대형 외부 고객 확보가 파운드리 성공의 열쇠”라고 설명했다.
바클레이스 애널리스트들은 “고객 확보 전에는 노드 개발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방침이 제품 로드맵을 더 불확실하게 만들고, 고객 채택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분석 메모를 내고 투자의견 ‘보유(Hold)’를 유지했다.
인텔 내부 구조조정 가속
탄 CEO는 “취임 이후 몇 달간 결코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인텔은 이미 발표한 감원 계획 대부분을 단행해 연말까지 전체 인력의 15%를 줄여 약 7만5,000명으로 조직을 축소한다.
2분기 순손실은 29억 달러(주당 0.67달러)로 전년 동기 16억1,000만 달러(주당 0.38달러)보다 확대됐다. 회사는 사용처가 없는 장비에 대한 8억 달러 규모 손상차손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JP모건체이스 애널리스트들은 파운드리 전략 수정이 “긍정적 첫걸음”이라고 평했으나, 서버·PC 칩 시장에서 진행 중인 점유율 하락은 여전히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 용어 한눈에 보기
파운드리(Foundry)는 반도체 설계 회사로부터 회로 설계를 받아 대신 칩을 제조하는 사업 모델을 뜻한다. 노드(Node)는 반도체 공정 미세화 단계를 지칭하는 기술적 구분이며, 숫자가 작을수록 고도화된 기술을 의미한다. 인텔의 14A는 차세대 1.4나노미터급(추정) 공정으로 알려져 있다.
● 기자 관전평
인텔의 이번 결정은 재무 건전성 확보 측면에서는 합리적이지만, 시장 신뢰 회복에는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파운드리는 거대 자본 투입과 장기 고객 관계가 필수인데, 인텔은 두 요소 모두에서 경쟁사 TSMC에 비해 열세를 보인다. 다만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보조금과 국방·클라우드 기업들의 전략적 수요가 맞물릴 경우, 14A 노드에 어느 정도 수요가 유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핵심은 “누가 첫 번째 대규모 외부 고객이 될 것인가”다. 구체적 계약이 발표되기 전까지 인텔 주가는 변동성이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