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DELHI – 인도 외교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H-1B 비자 신청·유지 수수료를 연간 10만 달러로 대폭 인상한 조치에 대해 “가족 생활의 심각한 교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2025년 9월 20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해당 조치는 현지 시각 20일 자정(21일 04시 GMT)부터 즉각 발효되며, 기존 수백~수천 달러 수준이었던 수수료가 한꺼번에 100배 이상 뛰어오르게 된다.
인도 정부 대변인 란디르 재이스왈(Randhir Jaiswal)은 성명에서 “이번 방침은 인도 출신 고숙련 근로자와 그 가족에게 중대한 인도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미국 당국이 파장을 최소화할 수단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H-1B 비자는 미국 기업이 해외 고급 인력을 단기 고용할 때 활용하는 대표적 취업 비자로, 정보기술(IT)·엔지니어링·의학·금융 등 첨단 분야에서 가장 수요가 높다. 현행 제도는 ①무작위 추첨(lottery) 참가 시 소액의 접수료만 납부하고, ②추첨에 당첨될 경우 기업과 신청자가 수천 달러 수준의 추가 수수료를 부담하는 구조다. 따라서 연간 10만 달러라는 새 기준은 “전례 없는 급등”으로 평가된다.
통계로 보는 영향
미 국무부 집계에 따르면 2024회계연도 H-1B 비자 승인 건수 48만 건 중 71%가 인도 국적자였다. 인도는 명실상부한 최대 수혜국이지만, 이번 인상으로 인도 IT 서비스 대기업—타타컨설턴시서비시스(TCS), 인포시스, 위프로 등—의 미국 파견 인력 전략이 근본적으로 재조정될 전망이다.
인도 IT업계를 대표하는 산업단체 Nasscom은 “글로벌 프로젝트를 수행 중인 수만 명의 엔지니어와 개발자가 계약 연장 또는 비자 갱신을 포기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클라이언트의 北미 데이터센터 운영, 사이버보안 유지, 클라우드 전환 작업 일정이 연쇄적으로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도와 미국은 인적 교류를 통해 혁신·부(富) 창출·경제 성장을 함께 누려 왔다. 정책 결정권자들은 이번 조치를 양국 간 호혜적 이익 관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 란디르 재이스왈, 인도 외교부 대변인
배경: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규제 기조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직후부터 불법 이민뿐만 아니라 합법적 이민 허용 폭도 축소하는 행정 명령들을 잇달아 발표해 왔다. H-1B 프로그램 개편은 그 연장선으로, 미국 내 노동시장 보호와 임금 상승을 목표로 내세우지만, 실리콘밸리·월가·바이오 산업계는 “혁신 역량 잠식”을 우려한다.
양국 갈등의 복합화
이번 비자 수수료 인상은 최근 50%까지 인상된 인도산 제품 관세 이슈와 맞물려 양국 관계의 최악 국면을 예고한다. 특히,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대규모 수입이 미국의 대러 제재 취지를 훼손한다는 워싱턴의 불만이 누적되고 있어, 무역·에너지·이민 3대 분야 갈등이 한꺼번에 불거진 형국이다.
미국 빅테크의 대응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본사도 사내 공지를 통해 “H-1B 소지 직원은 가급적 미국 내에 머무르라”고 권고했다. 이는 인도·중국·EU 국적 고숙련 엔지니어의 출장·재계약·해외 파견 일정이 동결됨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글로벌 연구개발(R&D) 흐름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 시각
델리 소재 싱크탱크 ‘매크로폴리시 포럼’의 아누라그 미슈라 선임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미국 기업의 인력 확보 비용 상승이 불가피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다른 국가—캐나다·호주·아랍에미리트—가 인도 인재 유치를 가속화할 것”이라며 “미국이 글로벌 인재 허브 지위를 점진적으로 상실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독자 이해 돕기: ‘H-1B’란?
H-1B는 미국 이민·귀화법(INA) 101조에 따라 ‘특정 전문직(Specialty Occupation)’ 종사자를 최대 6년간 고용할 수 있는 비자 유형이다. 연간 쿼터는 8만5천 개로 제한되며, 그중 2만 개는 미국 고등교육기관 석·박사 학위 취득자에게 별도로 배정된다. 신청 초과 시 컴퓨터 무작위 추첨으로 당락이 결정된다.
예컨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H-1B로 미국에 체류하려면 ①추첨통과, ②고용계약 유지, ③수수료 납부 등 복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번에 발표된 연 10만 달러라는 금액은 현행 미국 중위가구 연소득(약 7만9천 달러)을 웃도는 수준으로, 스타트업·중소기업에는 사실상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향후 전망
인도 외교부와 미국 국토안보부(DHS)는 조만간 합동 실무 채널을 가동해 수수료 조정, 가족 동반 규정, 비자 발급 일정 등에 대한 세부 협의에 착수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미국 대선을 앞두고 ‘강경 이민 공약’이 정치적 쟁점으로 재부상하면서, 단기간 내 정책 선회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