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러시아산 원유 문제로 EU·미국에 “이중 잣대” 정면 비판

NEW DELHI—인도 정부가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이유로 미국과 유럽연합(EU)으로부터 받는 압박에 대해 “부당한 선택적 비난”이라며 강도 높게 반발했다.

2025년 8월 5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인도 외교부는 전날 늦은 밤 발표한 공식 성명에서 “우리를 비판하는 국가들 스스로 러시아와 대규모 교역을 계속하고 있다”며 “인도만 콕 집어 문제 삼는 것은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모디 총리 회담

이번 반발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 4일(현지 시각)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계속 수입할 경우 대(對)인도 관세를 대폭 인상하겠다”고 재차 경고한 데 따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7월 31일 미국행 인도산 제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예고하며, 러시아 원유 거래에 대한 ‘모호한 제재’를 시사한 바 있다.

여·야 한목소리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여당 인도국민당(BJP)과 제1야당 인도국민회의(Congress)는 5일 공동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규탄했다. BJP의 바이잔트 제이 판다 부총재는 X(옛 트위터)에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말을 인용해 “미국의 적이 되는 것은 위험하지만, 친구가 되는 것은 치명적”이라고 적으며 불만을 드러냈다.

인도 외교부는 성명에서 “EU는 2024년 한 해 동안 러시아와 675억 유로(약 780억 달러) 규모의 상품을 교역했고, 특히 액화천연가스(LNG)사상 최대치인 1,650만 t이나 수입했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은 자국 원전 연료로 쓰이는 육불화우라늄(uranium hexafluoride)을 비롯해 팔라듐·비료·화학제품을 꾸준히 들여오고 있다”고 밝혔다.

EU와 미국 측은 현재까지 인도 측 주장에 공식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양측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대러 교역 규모를 급격히 축소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 2021년 러시아는 EU의 5대 교역 상대국이었으나, 2023년 이후 순위 밖으로 밀려났다.

■ 무역 갈등의 ‘급가속’

트럼프 대통령이 새 관세를 예고한 7월 31일 이후 인도·미국 간 무역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도는 올해 1~6월 러시아산 원유를 하루 평균 175만 배럴 수입했으며, 이는 전년 대비 +1%p 증가한 수준이다.

러시아 국영기업 로스네프트가 대주주인 인도 정유사 나야라 에너지(Nayara Energy)는 7월 EU의 대러 에너지 제재 대상에 포함되며 직접 제재를 받았다. 인도 정부는 “EU의 일방적 제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인도는 국제법과 다자 틀에 근거하지 않은 일방적 제재를 지지하지 않는다.” — 인도 외교부 성명

■ 시장 충격과 전문가 분석

무역 전문가 아자이 스리바스타바(뉴델리 소재 글로벌무역연구소)는 “25%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2025회계연도(2024.4~2025.3) 인도의 대(對)미 상품 수출은 864억 달러에서 606억 달러로 약 30% 급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진 직후, 뭄바이 증시 SENSEXNIFTY 50 지수는 장중 각각 1% 가까이 하락하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현지 투자자들은 관세 확대가 섬유·보석·정보기술(IT) 서비스 등 핵심 수출업종에 직접 타격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야당 인도국민회의의 마니시 테와리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폄훼성 발언은 인도인의 자존심을 훼손한다”며 “상시적 괴롭힘과 고자세를 이제는 단호히 거부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용어·배경 설명

액화천연가스(LNG)는 천연가스를 영하 162 ℃로 냉각해 액체 상태로 만든 에너지 자원으로, 부피를 600분의 1로 줄여 선박 운송이 용이하다.

육불화우라늄(UF6)은 천연 우라늄을 농축 과정에서 기체로 전환하기 위해 사용하는 화합물이다. 미국 원전 산업은 현재도 러시아 공급에 부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팔라듐은 자동차 촉매제·전자부품·귀금속 등에 쓰이는 희귀 금속으로, 글로벌 생산량의 40% 가량을 러시아가 차지한다.

■ 기자 시각 — “관세보다 자원 안보로 프레임 전환해야”

현재 갈등의 본질은 단순히 ‘누가 러시아와 더 거래하느냐’가 아니다. 필자는 에너지·식량·희소금속전략 자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국제 협력 틀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과 EU가 인도를 겨냥한 관세 카드를 꺼내든 근본 이유 역시 에너지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의 주도권 확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따라서 인도는 ‘이중 잣대’라는 도덕성 공세에 그치지 말고, 중장기적으로는 수입 다변화·재생에너지 투자·국제 벙커링 사업 등을 병행해 실질적 협상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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