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정부가 200조 루피아(약 121억5천만 달러) 규모의 예금을 중앙은행에서 시중은행으로 이전해 금융시장 유동성을 확충하기로 했다. 신임 재무장관 푸르바야 유디 사데와(Purbaya Yudhi Sadewa)는 11일(현지시간) 국회 청문회에서 해당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2025년 9월 10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사데와 장관은 정부 지출 지연으로 정부 현금 잔액이 중앙은행(Bank Indonesia)BI에 430조 루피아까지 불어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중 절반에 가까운 200조 루피아를 시중은행에 예치해 대출 여력을 높이겠다”며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통해 이를 다시 흡수하지 않도록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사데와 장관은 청문회에서 “
현 금융시스템이 건조(dry)해 경제가 둔화됐고 지난 1년간 일자리 찾기가 어려웠다. 이는 통화·재정정책 모두에서 오류가 있었기 때문”
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책적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 자금 직접 투입이라는 강수를 택했다고 덧붙였다.
중앙은행의 반응과 유동성 조치
Bank Indonesia 대변인 람단 데니 프라코소(Ramdan Denny Prakoso)는 “우리는 이미 국채를 2차 시장에서 매입해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으며, 정부와의 새로운 ‘부담 분담(burden sharing)’ 합의에 따라 정부 예금에 대한 이자율도 상향했다”고 밝혔다.
참고 부담 분담(burden sharing)은 중앙은행과 정부가 재정 지출 부담을 나누어 지는 협력 방식으로, 코로나19 이후 신흥국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중앙은행이 직접 국채를 인수하거나 정부 예금 금리를 조정해 재정 운용에 힘을 보태는 구조다.
BI는 지난해 9월 이후 기준금리를 125bp(1.25%p) 인하했지만, 시중 유동성 부족 현상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시중은행들은 “대출 수요보다는 유동성 흡수가 더 강하게 이뤄졌다”고 토로해 왔다.
경제학자들의 시각
DBS은행의 라디카 라오(Radhika Rao) 이코노미스트는 “정부·중앙은행이 내놓은 여러 부양책이 효과를 내려면 가계·기업 대출 수요가 실제로 살아나야 한다”고 분석했다.
반면 SMBC은행 아베 료타(Ryota Abe) 이코노미스트는 “정부가 은행에 대출을 강요할 경우 부실채권(NPL) 비율이 상승할 위험이 있다”면서 “인프라 투자 등 재정지출을 늘려 실물 수요를 자발적으로 끌어올리는 편이 은행 수익성을 훼손하지 않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인도네시아의 은행대출은 7월 기준 전년 대비 7% 증가해 2022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민간 부문 신용 위축이 여전하다는 방증이다.
전문가 해설: 왜 ‘정부 예금 이동’이 중요한가
인도네시아 정부는 통상 세입 잉여금을 BI에 단기로 예치해 왔다. 이 잔액이 과도하게 쌓이면 통화량 흡수로 이어져 시중 자금 사정이 악화된다. 이번 조치는 사실상 ‘재정 스팀’을 시중으로 직접 전달하는 것이어서, 통화정책의 완화 효과를 배가할 수 있다.
다만 정부 자금이 민간 대출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은행권이 유동성만 축적한 채 대손충당금 부담을 우려해 대출을 꺼릴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재정지출 확대·규제 완화·신용보증제도 강화 등 보완 정책이 병행돼야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환율은 1달러=16,460루피아 수준으로, 외환시장이 비교적 안정적인 만큼 단기 자금 이동이 급격한 변동성을 촉발할 위험은 제한적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향후 관전 포인트
첫째, 200조 루피아가 언제, 어떤 형태로 은행권에 풀릴지가 핵심이다. 둘째, BI가 실제로 유동성을 재흡수하지 않을지를 지켜봐야 한다. 셋째, 여전히 둔화된 민간 대출 수요를 살릴 추가 재정·통화 공조가 나올지 관심이 모인다.
사데와 장관은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이번 조치가 인도네시아 경제에 ‘물길 트기’ 역할을 할지, 은행 건전성·재정 여력이라는 양날의 검이 될지는 앞으로 수개월 내 결과가 가시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