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스위스)에서 유엔 고위관계자들이 내년 재정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현행 재정 규정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회원국들이 납부한 회비 중 사용되지 않은 금액은 자동으로 다음 회비에서 차감(credit)되며, 납부 지연이나 미납이 발생하면 해당 금액을 유엔이 회원국에게 ‘돌려줘야’ 하는 구조이다.
2025년 12월 18일,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유엔 내부에서는 이 규정이 내년 예산에서 약 3억 달러 규모의 ‘크레딧'(감액)을 요구해 전체 계획 예산인 $32억의 거의 10%에 해당하는 예산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제네바 주재 유엔 사무국장 겸 사무총장 직무대행인 타티아나 발로바야(Tatiana Valovaya)는 이 규정을 “bizarre(이상하다)”고 표현하면서 수년간 개혁을 요구했음에도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녀는 기자들에게 “조직은 받지 못한 자금을 회원국에 반환해야 하며, 이는 2026년 우리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유엔은 이미 현금 위기로 인해 15%의 예산 감축을 진행 중이며, 이는 유엔 창설 80주년을 맞아 비용 절감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조치다. 이 위기는 주로 최대 분담국인 미국의 체납(arrears)에 의해 촉발되었다.
유엔 측은 2026년 예산 협상 과정에서 이 규정의 개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며, 총회가 연말 이전에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한 유엔 대변인은 로이터에 전했다. 또한 총액 산정 방식은 193개 회원국 각국의 경제 규모에 따라 부과되는 회비 표준에 기반한다.
유엔 웹사이트에 따르면 2025년 12월 15일 기준으로 193개 회원국 중 148개국만이 회비를 납부한 상태다. 관측통들은 과거처럼 회원국들이 제때 전액을 납부하던 시기에는 이 규정이 합리적이었지만, 현재처럼 체납과 지연이 빈발하는 상황에서는 역효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일부 관측통과 내부 관계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유엔에 대한 공개 비판을 이유로 미국이 체납 상태를 지속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Antonio Guterres)는 예산 패키지의 일환으로 회원국에 대한 크레딧 반환을 일시 중단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유엔 문서에 따르면 그는 2025년에 사용되지 않은 자금을 기반으로 2027년에는 $6억까지 회원국에 크레딧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구테흐스는 “That means a race to bankruptcy(그것은 파산으로의 질주를 의미한다)”고 표현했다.
재정 문제 전문가인 로니 파츠(Ronny Patz)는 이를 “runaway crisis(통제 불능의 위기)”라고 규정하면서 “핵심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고 있으며, 이는 사무국에 의존하는 모든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했다.
용어 설명 및 제도적 배경
유엔의 회비 제도는 각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 등 경제 규모에 근거해 분담률을 산정한다. 여기서 말하는 “미집행 회비(unspent dues)” 또는 “크레딧(credit)”은 예산 연도에 납부되었으나 실제로 집행되지 않은 금액을 다음 연도의 회비에서 자동으로 공제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어떤 이유로 납부가 지연되거나 반환되어야 할 상황이 발생하면 그 금액은 차기 회비에서 상쇄된다.
과거에는 회원국들이 대부분 기한 내에 전액을 납부했기 때문에 이 규정이 재정 운영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주요 분담국의 체납과 납부 지연이 빈발하면서 이 규정이 오히려 유엔의 단기 현금흐름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예상되는 영향과 실무적 의미
단기적으로는 유엔의 현금 가용성(cash availability)이 감소하면서 인건비, 계약 갱신, 긴급 구호 프로그램 운용 등 핵심 기능에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 예산에서 약 $3억이 공제될 경우 계획된 $32억 예산의 거의 10% 축소가 불가피하며, 이는 운영의 우선순위 재조정이나 일부 프로그램 축소·중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중장기적으로는 2027년까지 크레딧 반환이 누적되면 $6억 수준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유엔 사무총장의 추정이 있어, 회원국들의 추가적인 납부 지연이 계속될 경우 유엔의 재정 건전성에 구조적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재정 불안정은 인도주의 지원, 평화유지 활동, 개발 협력 프로그램의 연속성에 영향을 미치며, 관련 계약을 맺은 기업과 비정부기구(NGO)의 재무 계획에도 파장을 줄 수 있다.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대한 파급 가능성
직접적인 영향은 한정적일 수 있으나, 대규모의 유엔 사업 축소는 국제 원조와 인도적 지원이 축소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는 특정 지역의 재건 프로젝트 지연, 구호 물자 수급 차질 등으로 지역 경제에 부정적 파급을 줄 수 있다. 또한 다자기구의 재정 건전성 문제는 국제 공공재 공급의 불확실성을 높여 투자 리스크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대응 방안과 전망
유엔 내부에서는 규정 개정을 통해 크레딧 반환의 일시 중단 또는 크레딧 처리 방식의 수정 같은 단기·중기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총회가 연말 이전에 결정을 내릴 예정이며, 이 결정의 내용은 유엔의 즉각적인 현금흐름과 2026년 운영 계획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책적 해결 뿐만 아니라 회원국들의 신속한 회비 납부가 병행돼야만 재정 위기를 실질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특히 최대 분담국의 납부 여부가 전체 재정 균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만큼 주요 분담국과의 외교적 협의가 핵심이 될 전망이다.
이번 사안은 국제기구의 재정 규정이 과거의 정상 상태를 전제로 설계되어 있을 때는 문제 되지 않았으나, 현재처럼 납부 패턴이 변한 환경에서는 제도적 취약성을 드러낸 사례로 평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