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ing.com이 전한 바에 따르면, Capital Economics는 유럽 정책당국이 추진해 온 새로운 유로화 ‘안전자산’ 창출 구상이 단기간에는 실현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2025년 8월 17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Capital Economics는 보고서에서 “투자등급 상위의 유로존 및 EU 기관 채권 발행 잔액이 확대될 전망이지만, 시장은 여전히 분절적(fragmented)이며 규모 면에서 미국 국채U.S. Treasuries를 크게 밑돌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환율 기준으로 유로권 안전자산 총액은 9조 달러(역내 GDP의 약 50%) 수준으로, 30조 달러를 웃도는 미국 국채 시장(미국 GDP의 108%)과 비교할 때 현격히 작다. 따라서 “유럽판 안전자산”이 세계 최대 채권시장과 경쟁하려면 장기간에 걸친 제도적·정치적 진전이 필수라는 설명이다.
안전자산 설계 구상 — 위험 공유 대 비공유
보고서는 제안된 안전자산 모델을 ‘위험 공유(risk-sharing)’와 ‘비공유(non-risk-sharing)’ 두 갈래로 구분했다.
위험 공유형은 EU 차원의 공동차입을 통해 대규모 프로젝트를 재원 조달하거나, 각국 국채 일부를 공동 보증 채권으로 대체하는 방식이다. 반면 비공유형은 개별 국가 채권을 증권화(securitisation)하여 공·사(公私) 기관이 새로운 금융상품 형태로 재구성한다.
“자본시장연합(CMU) 진전을 촉진하고, 유로화의 글로벌 준비통화 비중을 높이며, 역내 차입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 지지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Capital Economics는 이러한 이점을 “대체로 과장돼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유동성이 개선되더라도 수익률(금리) 하락 폭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독일 분트(Bund) 시장 규모가 네덜란드보다 2조 유로 가까이 크지만, 10년물 금리는 불과 15bp(0.15%p) 낮을 뿐이다.
또 차입비용이 급격히 하락해 금융 여건이 완화되면, 유럽중앙은행(ECB)이 정책 금리를 높여 이를 상쇄할 수 있다는 점도 변수로 꼽혔다.
콘센서스 부재와 정치적 난제
새로운 안전자산 창출에 대한 역내 합의는 아직 멀다. 위험 공유형은 독일·네덜란드 등 핵심국이 재정 리스크 이전을 우려하며 강하게 반대하고, 비공유형은 “금융 공학적(more financial-engineering than substance)”이라는 회의론과 함께 각국 국채시장의 유동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심지어 팬데믹 위기 속에서 시행된 8,060억 유로 규모의 NGEU(Next Generation EU)도 미국 국채에 필적할 ‘유럽형’ 안전자산을 만들기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존 안전자산 공급 확대 전망
보고서는 “새로운 자산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안전자산으로 간주되는 AA-급 이상 채권 잔액이 2024년 7조 유로에서 2030년 약 9.5조 유로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ECB의 양적긴축(QT)으로 약 1조 유로가 추가 공급되는 효과를 감안한 수치다.
EU 집행위원회도 NGEU 프로젝트 자금 조달을 위해 2026년까지 2,500억 유로, 안보 관련 ‘Security Action for Europe’ 프로그램으로 2030년까지 최대 1,500억 유로를 신규 발행할 계획이다.
그러나 공급 증가가 곧 조달비용 하락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2022년 ECB의 긴축이 시작됐을 때, 그리고 2024년 말 독일 연립정부가 붕괴해 재정규칙 완화 기대가 커졌을 때 Bund-OIS 스프레드는 오히려 확대됐다.
Capital Economics는 독일의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시장 컨센서스보다 커질 것으로 예측하면서 “스프레드가 추가로 벌어질 위험”을 지적했다. 프랑스를 포함한 일부 ‘안전국’ 역시 재정 여건이 악화되면 최상위 신용등급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용어‧배경 설명독자 이해도 제고
자본시장연합(CMU)은 EU 내부 자본시장을 통합해 기업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고, 역내 저축이 보다 효율적으로 투자로 이어지도록 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Bund-OIS 스프레드는 독일 10년물 국채금리와 무담보호출금리(OIS) 간 차이를 뜻한다. 유럽 금융시장에서 ‘위험 프리미엄’을 측정하는 대표적 지표로 사용된다.
증권화(securitisation)는 자산(이 경우 국가채권)에서 발생할 현금흐름을 기초로 채권을 재구성해 판매하는 과정이다. 위험을 분산할 수 있지만, 구조가 복잡해 시장 충격을 키울 위험도 내포한다.
전망 및 시사점
Capital Economics의 결론은 명확하다. “유럽판 통합 안전자산을 통해 미국 국채에 필적하는 규모·유동성을 확보하려면 상당한 정치적 타협과 제도적 설계가 선행돼야 하며, 단기간에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
이는 곧 글로벌 준비통화 지위를 둘러싼 ‘달러 독주’ 체제에 당분간 큰 변화가 없을 것임을 시사한다. 아울러 유럽 투자자와 정책당국은 채권시장 분절에 기인한 리스크 관리 전략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