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분(Boone)의 애팔래치안 주립대 인턴십·채용 박람회에서 포착된 ‘We’re Hiring(채용 중)’ 안내판은 한때 넘쳐나던 일자리 분위기를 상징한다. 겉으로 드러난 통계만 보면, 일자리를 원하는 누구에게나 자리가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세부 지표를 들여다보면 다른 그림이 나타난다.
2025년 11월 11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미 노동통계국(BLS)이 집계해온 구인공고(job openings) 규모는 수년간 실업자 수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수준을 유지해 왔다. 표면적 수치만 보면 충분한 일자리가 존재하는 듯한 신호다.
하지만 구인공고와 실제 채용(hirings)을 비교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많은 공고가 실제로 채워지지 않고 있다. BLS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초부터 현재까지 매월 구인공고 수가 실제 채용 수를 220만 건 이상 초과했다. 이 격차는 ‘유령 일자리’—채워지지 않거나 채용 의도가 불분명한 공고—현상이 지속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 노동시장은 서류상으로는 기만적으로 강해 보인다. 수백만 건의 공고는 기회를 암시하지만, 그 중 상당수는 환상에 가깝다.” 마이퍼펙트레주메(MyPerfectResume)의 커리어 전문가 재스민 에스칼레라(Jasmine Escalera)는 이번 주 자사 보고서(‘유령 일자리 경제’)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유령 일자리 경제는 구직자의 희망을 부풀리고 시간을 낭비시키며, 정책 당국이 경제 운용에 의존하는 데이터를 혼탁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구인공고는 2022년 3월 1,200만 건을 넘기며 정점을 기록할 당시, 구인 수가 가용 노동자 대비 2대 1을 웃도는 과열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현재는 정부 셧다운으로 공식 통계 공백이 발생해 가장 최근인 8월 기준으로만 비교가 가능하다. 8월 구인공고는 720만 건 이상, 실제 채용은 510만 건에 그쳤다. 같은 시점의 빈 일자리 대비 가용 노동자 비율은 대체로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됐다.
물론, 두 숫자만 단순 비교해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구인공고는 ‘재고(stock)’, 즉 특정 시점에 게시된 전체 일자리 공고의 잔량을 의미하고, 실제 채용은 ‘흐름(flow)’, 즉 해당 월 동안 실제로 채용된 인원을 뜻한다. 한 개의 공고가 여러 달에 걸쳐 반복 게시될 수 있으며, 그 자체가 곧바로 ‘채용 의사 부재’로 등치되지는 않는다.
잠재 인력풀(Inventory) 확보 목적도 있다. 일부 기업은 향후에 열릴 수 있는 자리를 대비해 상시적으로 공고를 올려 후보자 풀을 관리한다. 또한 구인 대비 채용 비율은 정점기(구인 1.8 대 채용 1)에서 현재 약 1.4 대 1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는 ‘유령 일자리’가 과거보다 줄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격차를 키우는 요인으로는 노동력 구성 변화가 지목된다. 미국이 이민 기준을 강화하면서 숙련 인력 수급이 왜곡됐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전미자영업연맹(NFIB)은 화요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채용이 어려운 환경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구직자 88%가 필수 역량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나왔다고 밝혔다.
이 문제는 노동시장이 점차 둔화하고 순고용이 정체 조짐을 보이면서 최근 몇 달 사이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동시에 워싱턴 D.C.의 정부 셧다운으로 인해 공식 노동통계가 일시적으로 제공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며, 정책 판단을 위한 신뢰 가능한 데이터가 부족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여기서 ‘정부 셧다운’이란 연방정부 예산안이 제때 통과되지 않아 비필수 공공서비스가 부분 정지되는 상태를 뜻한다.
현장에서의 체감도는 나빠졌다. 구직자 이동성을 보여주는 자발적 이직률(quits rate)은 2022년 3월 ‘대퇴사(Great Resignation)’ 정점 대비 30% 이상 하락했다. 자발적 이직률은 더 나은 일자리로 이동하려는 자신감의 간접 지표로 활용된다. ‘대퇴사’는 팬데믹 국면에서 광범위한 인력 재배치와 직업 재평가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현상을 일컫는다.
시민 청원도 등장했다. Change.org에는 유령 일자리 공고 규제를 촉구하는 청원이 올라 약 5만 명에 달하는 서명을 모았다. 이는 구직자의 피로감과 신뢰 하락을 방증한다는 평가다.
정책 측면의 파장도 작지 않다. 연방준비제도(Fed)는 노동시장 긴장도를 가늠하기 위해 BLS의 구인공고 수치를 면밀히 본다. 데이터가 신뢰할 수 없다면 통화정책 판단의 가시성이 저하한다. 에스칼레라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구직자에게는 시간 낭비, 정책당국에는 왜곡된 데이터, 기업에는 신뢰도 저하를 의미한다. 채용 실적을 보다 정확히 반영하는 공고 관행이 자리 잡기 전까지, 노동자들은 존재하지 않는 일자리를 계속 뒤쫓게 되고, 노동시장에 대한 신뢰는 침식될 것이다.”
전문적 분석: ‘유령 일자리’가 시사하는 것
첫째, 수요·공급 괴리가 고착화되고 있다. 기술·경험·자격증 등 역량 미스매치가 심화되면서, 표면적인 구인 급증이 곧바로 채용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는 임금 압력의 분절화를 낳아, 일부 직군에서는 인력난과 임금 상승, 다른 직군에서는 채용 축소가 동시에 나타나는 이중 노동시장을 강화할 수 있다.
둘째, 데이터 품질 문제가 정책 리스크를 키운다. BLS의 구인공고는 정책 신호로 자주 인용되지만, 재고(공고) vs 흐름(채용) 간 괴리는 경기에 따라 확대·축소된다. 정부 셧다운으로 통계 공백까지 겹치면 연준의 판단 오차 가능성이 올라간다. 이는 금리 경로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을 어렵게 만들어, 시장 변동성을 자극할 수 있다.
셋째, 기업 신뢰도 관리가 중요해진다. 상시 공고, 장기 미충원, 포지션 설명의 모호성은 브랜드 신뢰를 해칠 수 있다. 채용 공고가 실제 승인된 헤드카운트인지, 탤런트 파이프라인 구축용인지, 혹은 시장 탐색인지 명확히 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일자리를 진정성 있게 찾는 인재를 유치하는 데도 유리하다.
넷째, 구직 전략의 재설계가 요구된다. 지원 전 공고의 신뢰 신호(게시 기간의 비정상적 장기화, 반복 재게시, 포지션 설명의 과도한 범용성, 면접 단계의 장기 지연 등)를 점검하고, 핵심 역량과 직무 요건의 정합성을 정량적으로 매칭해 시간 대비 효율을 높여야 한다. 아울러 기술·자격 재교육을 통한 스킬 갭 축소가 중장기 경쟁력의 관건이다.
용어 설명과 맥락
• 유령 일자리(Ghost Job): 게시되지만 오랜 기간 채워지지 않거나, 당장 채용 계획이 불분명한 공고를 지칭한다. 파이프라인 확보나 시장 탐색 목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 재고(Stock) vs 흐름(Flow): ‘구인공고’는 특정 시점에 남아 있는 공고 총량(재고), ‘채용’은 해당 기간 실제로 채용된 인원(흐름)을 뜻한다.
• 자발적 이직률(Quits Rate):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직장을 떠나는 비율로, 노동자들의 시장 자신감을 가늠하는 지표로 쓰인다.
• 대퇴사(Great Resignation): 팬데믹 시기 직업관 재편과 원격근무 확산 등을 배경으로 대규모 이직이 일어난 현상.
• 정부 셧다운: 예산 미통과로 비필수 연방정부 업무가 부분 정지되는 상태로, 공식 통계 공백을 유발할 수 있다.
결론
요약하면, 구인공고는 많지만 채용은 더디고, ‘유령 일자리’ 논란은 미국 고용시장 둔화와 맞물려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2022년 정점 이후 구인 대비 채용 비율이 완만히 정상화되는 조짐도 있지만, 기술 미스매치와 데이터 공백이라는 구조적 제약은 여전하다. 구직자에게는 시간 관리와 역량 보강, 기업에는 공고의 투명성, 정책당국에는 데이터 신뢰 회복이 각각 과제로 떠오른다. 이는 곧 노동시장 신뢰와 정책 일관성을 회복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