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산업 대전환]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NERSC)의 데이터 저장 테이프실과 차세대 슈퍼컴퓨터 설비는 Nvidia의 ‘베라 루빈(Vera Rubin)’ GPU 도입을 앞두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이처럼 대규모 연산 설비를 한데 모은 ‘AI 공장(Factory)’ 구상에 수십억 유로를 투입하며 인공지능 산업에서 뒤처진 격차를 줄이려 한다.
2025년 7월 29일, CN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EU는 ‘기가팩토리(gigafactory)’라 불리는 초대형 데이터 센터 프로젝트를 통해 연산 능력·데이터·인재를 한곳에 모으는 ‘동적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과 중국에 비해 느린 법·제도 합의, 높은 에너지 비용, 노후화된 전력망으로 인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다.
젠슨 황(Jensen Huang) Nvidia 최고경영자(CEO)는 6월 파리 GTC 콘퍼런스에서 “새로운 산업혁명이 시작됐다”고 선언하며, 프랑스·이탈리아·영국 정부‧기업과 손잡고 ‘수익을 내는 AI 공장’ 건설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 이후 ‘AI 공장’이라는 개념이 유럽 산업계에서 급속히 확산됐다.
EU의 ‘테크 주권(Tech Sovereignty)’ 전략
Henna Virkkunen EU 집행위 기술주권 부문 수석 부위원장은 CNBC와 인터뷰에서 “EU에는 미국보다 인구 대비 30% 많은 AI 연구자가 있고, 7,000여 개 스타트업이 있지만 연산 자원이 부족해 성장에 제약을 받고 있다”며 “회원국과 함께 핵심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투자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공공 AI 투자다. 우리가 구상하는 기가팩토리는 현재 최대 AI 공장 대비 네 배의 컴퓨팅 성능을 갖게 될 것이다.” — Henna Virkkunen
EU는 AI 공장 13곳 건설에 100억 유로, 기가팩토리 초기 자금으로 200억 유로를 책정했다. 16개 회원국 60개 부지에서 총 76건의 관심 의향서가 접수될 정도로 시장 반응이 뜨겁다. 다만 민간 자본의 추가 참여 없이는 막대한 건설·운영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장’이지만 제품 대신 지능을 찍어낸다
UBS 애널리스트 Andre Kukhnin은 “AI 공장은 GPU 클러스터를 핵심으로 하는 ‘특수화 데이터 센터’로, 중소기업(SME)이 자체 인프라를 마련하지 않고도 대형 모델 훈련과 추론(inference)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Citi의 Martin Wilkie도 “막대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그리드까지 갖춰야만 AI 플랫폼으로서 가치를 발휘한다”고 평가했다.
노르웨이 통신사 Telenor는 2024년 11월 소형 GPU 클러스터를 설치해 자국 첫 AI 공장을 파일럿 운영 중이다. 카렌 힐센(Kaaren Hilsen) 혁신총괄은 “데이터 주권이 핵심”이라며, 국가경찰이 민감 대화를 번역하는 ‘BabelSpeak’ 프로젝트를 예로 들었다.
전문가 시각 — 전력망·경제성 한계
브뤼겔(Bruegel) 연구소 Bertin Martens 선임연구원은 “공장당 30억~50억 유로가 들어가는 사업을 왜 정부가 보조해야 하는지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GPU 10만 개를 운용하려면 최소 1GW 규모 전력이 필요하지만 발전소 건설에는 여러 해가 걸려 전력 부족이 심각한 병목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용어 설명
- GPU(Graphics Processing Unit): 그래픽 연산용 칩이지만 최근 대규모 행렬 계산에 강점을 보여 AI 학습·추론에 필수로 쓰인다.
- 모델 훈련(Training): AI가 데이터에서 패턴을 학습하는 과정.
- 추론(Inference): 학습한 모델이 실제 질문에 답하거나 예측값을 내놓는 과정.
- 기가팩토리: 원래 배터리 산업에서 초대형 공장을 가리키던 용어를 차용, 1GW(기가와트)급 전력 소모가 가능한 초대형 AI 데이터 센터를 의미한다.
시장 전망과 기자 분석
UBS는 현재 전 세계 데이터 센터 설치 용량 85GW가 두 배로 늘 것이라 예측한다. EU가 구상한 기가팩토리 20여 곳(총 1.5~2GW)이 현실화되면 유럽 데이터 센터 캐파에 15% 추가가 이뤄져 미국(글로벌 점유율 33%)과의 격차를 좁힐 수 있다. 그러나 장기 성공 여부는 민간 수익 모델 확보, 친환경 전력 조달, 규제 공조 등 복합 변수에 달려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미·EU 무역 협력 발표 직후 “미국산 AI 칩이 우리 기가팩토리를 구동해 양측의 기술 우위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Martens 연구원은 “Nvidia 칩을 구매해 하드웨어를 설치하는 것은 자본만 있으면 비교적 쉽다”면서도, “경제적 자립성과 수익성 확보가 더 큰 과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EU가 처음부터 최첨단 모델을 자체 개발하기는 어려우므로, 점진적 인프라 확대와 비즈니스 모델 구축이 현실적”이라고 내다봤다.
© 2025 매경AI국제부 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