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전략 산업의 핵심 원료인 희토류 확보를 위해 다각도로 움직이고 있으나, 당분간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유럽도 자동차, 그린에너지, 방위산업 등 핵심 분야의 공급 안정성을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무리 없이 관리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다.
2025년 11월 19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유럽은 전 세계 17개 희토류 원소 공급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다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으며, 베이징과의 공급 문제를 둘러싼 긴장을 완화하는 동시에 역내 및 제3국에서의 대체 조달원 발굴에 나서고 있다. 유럽은 ‘자기 뒷마당’에 해당하는 역내 자원까지 포함해 공급원 다변화를 추진 중이지만, 이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으로 평가된다.
이 같은 전환이 장기 과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유럽은 희토류의 대규모 소비국인 미국과 마찬가지로 베이징이 ‘공급 밸브’를 죄는 순간 취약성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단기적으로 중국 리스크를 회피할 실질적 대안이 제한적이라는 현실이 재확인되고 있다.
이번 주, 독일과 네덜란드 정부 관계자들이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측과 희토류 수출 규제와 반도체 관련 통제를 둘러싼 협의를 진행 중이다. 유럽 산업계는 글로벌 공급망 충격에 노출된 상태이며, 당국자들은 해당 통제가 유럽 제조업의 병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채굴의 59%, 정제의 91%, 영구자석 제조의 94%를 각각 담당하고 있다. 이들 영구자석은 전기차(EV), 풍력 터빈, 산업용 모터, 데이터센터, 방위 시스템 등 광범위한 분야에 사용되는 핵심 부품이다.
IEA는 “단일 최대 공급국이 산업 전반의 필수 부품을 장악하면서, 에너지·자동차·방위·AI 데이터센터 등 전략 부문의 글로벌 공급망이 잠재적 중단 위험에 취약해졌다”고 지적했다.
올해 4월과 10월, 베이징은 희토류 공급 및 관련 기술에 허가 요건을 도입하고 나아가 수출 통제를 발표하면서 공급 차질 위험을 전면화했다. 이는 시장 전반에 정책 리스크 프리미엄을 키우는 변수로 작용했다.
다만 10월 미·중 간 무역 휴전이 성립되면서 중국은 관련 추가 수출 통제를 1년간 유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토류 주요 수입국인 미국과 EU는 여전히 지정학적 충격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다. EU는 희토류 공급의 약 70%와 거의 전량의 희토류 자석을 중국에서 들여오고 있어 구조적 리스크가 상존한다.
공급원 다변화의 장벽
지난달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블록 차원의 ‘RESourceEU’ 계획을 발표해, 단기·중기·장기에 걸쳐 중국산 핵심 원자재 의존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배터리 등에서의 재활용 확대, 공동 구매 및 비축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그는 또한 유럽 내에서 핵심 원자재의 생산 및 가공을 가능케 하는 전략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우크라이나·호주·캐나다·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칠레·그린란드 등과의 핵심 원자재 파트너십을 가속화하겠다고 밝혔다.
폰 데어 라이엔은 “오늘날 세계는 망설임이 아닌 속도를 보상한다. 글로벌 경제는 불과 몇 년 전과도 완전히 다르다. 유럽은 더 이상 예전 방식으로 할 수 없다. 우리는 에너지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었고, 핵심 소재에서는 이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의 러시아산 석유·가스 의존을 간접적으로 상기시킨 발언이다.

발디스 도브로브스키스 EU 경제·생산성 집행위원은 월요일 인터뷰에서, 블록이 희토류 공급 다변화를 추진 중이지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긍정적 소식도 있다. 중국이 10월에 발표했던 추가 수출 통제를 12개월간 유예했다. 다만 이는 EU가 희토류 및 핵심 광물 공급원을 다변화할 필요성을 더욱 부각한다. 여러 희토류의 경우 우리는 중국 공급에 90% 이상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인가?
유럽은 터키·스웨덴·노르웨이 등지에서 희토류 매장지가 확인되어 있으나, 문제는 채굴·정제·가공을 수행할 산업 기반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수십 년의 경험·투자·인프라를 바탕으로 글로벌 가공을 장악한 중국과 대비된다.
더욱이 유럽은 채굴 허가 과정이 장기간 소요되고, 환경 기준이 엄격하다. 따라서 역내 매장지를 개발하더라도 상업 생산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다. 주민 반대 또한 흔히 발생하는 변수로, 이 점은 중국과의 차별점으로 지적된다.
중·장기 리스크를 줄이려면 속도가 필요하다는 현실은 규제 완화 논의를 자극할 수 있다. 실제로 9월 에스토니아 나르바에는 유럽 최초의 희토류 자석 생산 공장이 문을 열었다. 이 시설은 캐나다와 EU의 자금 지원을 받았고, 원료는 호주와 말레이시아에서 조달 중이다.

CRU 그룹의 윌리스 토머스 수석 컨설턴트는 “유럽에는 매장지가 더 많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를 상업화하는 데는 다양한 장벽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무역 긴장에 따른 위험이 현실화되는 국면에서는, 각국이 공급망을 확충하고 복원력을 높이도록 압박이 커질 것이다. 다만 이는 시간도 걸리고, 관련 전문성도 제한적”이라고 덧붙였다.
유럽이 원료의 원천과 공급을 통제하지 못할 경우, 기술과 녹색 전환 목표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ESCP 유럽의 하메드 기아이 경제·공공정책 교수와 넥상스의 필리포 고렐리 애널리스트는 “유럽의 순배출 제로 달성과 디지털 리더십은 유럽이 통제하지 못하는 소재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두 전문가는 “수십 년간 유럽은 원자재를 전략이 아닌 상품의 문제로 취급해 왔고, 그 안이함의 비용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걸려 있는 것은 기후 목표와 경제 회복력이다. 희토류, 갈륨, 저마늄의 부족은 반도체 생산, AI 개발, 풍력 설치까지 늦출 수 있다. 요컨대, 유럽은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공급망에 녹색·디지털 미래를 세울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용어와 맥락 설명
희토류(rare earth elements)는 네오디뮴(Nd), 프라세오디뮴(Pr), 디스프로슘(Dy) 등 17개 원소를 가리키며, 고성능 영구자석과 전기·전자 부품의 필수 소재다. 특히 네오디뮴-철-보론(NdFeB) 자석은 전기차 구동 모터와 풍력 터빈의 효율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으로, 소형·고출력·고효율이라는 특성 때문에 대체가 쉽지 않다.
영구자석(permanent magnets)은 외부 전력 없이도 자성을 유지하는 자석으로, 산업용 모터, 하드디스크, 의료기기, 방위 체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능을 결정한다. 고성능 자석의 안정적 수급은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며, 공급망 차질은 생산 지연과 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분석: 유럽의 실행 과제
이번 보도는 유럽이 ① 공급원 다변화, ② 중간재(정제·가공·자석) 역량 구축, ③ 수요 관리(재활용·대체 소재·설계 혁신)라는 세 축을 동시에 밀어야 함을 보여준다. 단, 산업 생태계는 경험·기술·자본의 축적이 필요해 속도전이 쉽지 않다. 허가·환경 규제와 사회적 수용성은 민주주의 사회의 정당한 비용이지만, 대외 리스크가 커질수록 절차의 예측 가능성과 집행 속도를 높이는 제도 개선이 관건이 된다. 또한 역내 생산이 시작되어도 초기에는 원료의 역외 조달이 불가피해, 상호 의존을 전제로 한 안정적 파트너십 포트폴리오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정책과 자금의 일관성이 기업의 투자 결정을 좌우할 전망이다.
사진 설명: 중국 장쑤성 롄윈강 항에서는 수출용 희토류 함유 토양이 운송되는 장면이 포착됐다(출처: 로이터). 에스토니아 나르바에는 유럽 전기차·풍력 산업을 위한 희토류 자석 공장이 가동을 시작했다. 위 이미지는 EU 경제 담당 집행위원의 인터뷰 보도 화면 갈무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