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주요 지수가 20일 장 초반부터 약세를 면치 못했다. 전일 뉴욕 증시에서 기술주 중심의 매도세가 거셌던 여파가 이어진 데다, 영국의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시장 예상치를 상회하면서 영란은행(BoE)의 통화 완화 시나리오에 의구심이 제기된 영향이다.
2025년 8월 20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독일 DAX 지수는 04:00 ET(08:00 GMT) 기준 전 거래일 대비 0.5% 하락했고, 프랑스 CAC 40 지수는 0.2% 밀렸다. 런던 FTSE 100 지수 역시 0.2% 내렸다. 유럽 전역에 걸쳐 투자 심리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모습이다.
기술주 주도 약세는 전날 미국장에서 시작됐다. 로이터는 미 상무부의 하워드 러트닉 장관이 CHIPS and Science Act (반도체산업 지원·과학법)에 따른 보조금 지급과 맞바꿔 인텔(NASDAQ: INTC) 등 미국 반도체 기업의 지분을 정부가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정부가 직접 지분을 확보하면 기술 안보를 강화할 수 있지만, 민간 자본 시장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시장 참여자들은 지적했다.
CHIPS Act는 2022년 8월 제정된 미국 연방법으로, 반도체 제조시설 신·증설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연구·개발(R&D)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정부 지분 참여가 현실화될 경우, 과도한 정부 개입에 대한 규제 리스크가 부각돼 기술 업종 전반에 리레이팅(Valuation 재조정)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유럽 기업들의 실적 전망도 다소 꺾였다. 금융정보업체 LSEG의 I/B/E/S 데이터에 따르면, 유럽 상장사들의 2분기 순이익은 전주 전망치였던 4.8% 증가에서 평균 4.6% 증가로 하향 조정됐다. 이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점진적 개선 흐름’이 일시적으로 주춤했음을 시사한다.
영국 7월 소비자물가(CPI)는 전년 동월 대비 3.8% 올라 전달 3.6% 및 시장 전망치 3.7%를 모두 넘어섰다. 이는 2024년 1월 이후 최고치다. 영란은행은 이 같은 인플레이션 가속을 이미 8월 통화정책보고서에서 예견하며 “7월 CPI가 3.8%까지 반등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CPI는 소비자가 실제 체감하는 물가 변동을 측정하는 대표 지표다. 물가 상승세가 예상보다 강하면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 목표를 위해 금리 인하를 미루거나 보류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시장조사업체 캐피털이코노믹스는 “11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임금 상승과 기대 인플레이션이 추가로 자극될 경우 첫 인하 시점이 2026년으로 늦춰질 위험도 있다”고 진단했다.
유로존 전체 7월 CPI 결과는 장 마감 전 발표될 예정이다. 컨센서스는 전년 동월 대비 2.0%로, 이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중기 목표와 정확히 일치한다. 예상치가 적중할 경우 ECB는 “목표 달성에도 불구하고, 정책 완화 시점을 신중히 검토할 것”이라는 기존 스탠스를 고수할 전망이다.
개별 종목 소식도 투자심리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쳤다. 스위스·미국 합작 안과 기업 알콘(SIX: ALCC)은 미국 관세 부담이 지속된다는 이유로 2025년 매출 가이던스를 하향 조정했다. 북해(北海) 유전 개발사 아이타카 에너지(LON: ITH)는 상반기 순이익이 급증했다고 발표하며 생산 확대와 비용 절감으로 2025년 실적 전망을 상향했다. 반면 덴마크 광산 장비업체 FLS미스(CSE: FLS)는 2분기 매출이 큰 폭으로 줄고 제품 부문이 적자를 지속했다고 밝혔다.
방산주 섹터는 “우크라이나 평화협상 기대감”이 고조되자 이틀째 부진했다. 전쟁 우려 완화는 방위 산업체의 수주 모멘텀을 약화시키는 반면, 에너지 업체에는 제재 완화·원유 공급 확대라는 긍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제 유가는 전날 1% 넘게 하락한 뒤 이날 소폭 반등했다. 04:00 ET 기준, 북해산 브렌트유 10월물은 1.0% 오른 배럴당 66.46달러, 미 서부텍사스산(WTI) 10월물은 1.2% 상승한 62.48달러에 거래됐다. 시장은 “전쟁 종식 기대 → 러시아산 공급 확대 → 공급 과잉 우려”라는 전일 논리를 어느 정도 되돌리는 모습이다.
브렌트유는 북해산 원유, WTI는 미국 서부텍사스산 경질유를 뜻한다. 통상 브렌트 가격이 국제유가 벤치마크로 활용되며, WTI는 미국 내 물류·재고 상황에 더 민감하다.
결국, 강한 영국 물가·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분 참여 검토·유럽 기업 실적 둔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유럽 투자자들은 위험 자산 비중 축소에 나섰다. 향후 물가 흐름과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 시그널, 그리고 우크라이나 정세의 ‘삼각 변수’가 코스(주가) 변동성을 좌우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