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발 — 유럽 주요 상장사들이 제시한 경영진 보수 정책(remuneration policy)이 올해 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특히 스페인과 영국을 중심으로 반대표가 급증하며, 집행부의 장기 인센티브 구조 전반에 대한 재검토 압력이 커지고 있다.
2025년 9월 1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기업 거버넌스 자문사 조지슨(Georgeson)이 집계한 자료에서, 유럽 9개 주요 증시 상장 대기업 중 향후 보수 정책을 주주총회에 상정한 기업의 37.9%가 10% 이상의 반대표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30.7%에서 7.2%p 상승한 수치로, 반란 기업 수로는 23% 증가에 해당한다.
대표적 사례로는 영국 인터콘티넨털 호텔 그룹(InterContinental Hotels Group)이 제시한 안건에 찬성률이 69.5%에 불과했고, 이탈리아 유니크레디트(UniCredit) 역시 66.5%의 지지에 그쳤다. 양 사 모두 유럽 블루칩으로 꼽히는 만큼, 시장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
● 스페인·영국에서 반대 급증… ‘정책 결의’가 ‘보고서 결의’보다 더 뜨거워져
정책 결의(binding remuneration policy)는 향후 3년 내 임원 보수 구조를 공식적으로 확정하는 안건으로, 통과되면 변경이 쉽지 않다. 반면 보수 보고서(remuneration report)는 이미 지난 회계연도에 집행된 보수를 사후 승인하는 성격이 강하다. 올해 처음으로 ‘정책 결의’에 대한 반대표 비중이 ‘보고서 결의’를 넘어섰다.
조지슨 글로벌 CEO 캐스 시도로위츠(Cas Sydorowitz)는 “투자자들이 점점 더 대립적‧파괴적(confrontational and disruptive) 방식으로 보수안을 저지하고 있다”며 “장기 인센티브 구조 전반을 겨냥해 직접적인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가별로는 스페인에서 과반의 안건이 ‘유의미한 반대’를 맞았고, 유럽 시가총액 1위 시장인 영국에서도 4건 중 1건(25%)이 10% 이상 반대표를 기록했다. 벨기에·독일·프랑스·네덜란드 등 6개국 모두 지난해보다 반대가 늘었다.
● 투자자들이 문제 삼은 핵심 포인트
자산운용사 페더레이티드 허미즈(Federated Hermes)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루이즈 더들리(Louise Dudley)는 “장기 인센티브가 너무 일찍 베스트(vest)되는 구조, 경영진 자기주식 보유 의무 부족 등이 대표적 반대 사유”라고 설명했다.
슈로더(Schroders)의 거버넌스 총괄 유시프 이베드(Yousif Ebeed) 역시 “충분히 도전적인 퍼포먼스 목표와 회사 실적과 연계된 보상 체계가 충족돼야만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용어 풀이: ‘베스팅(Vesting)’과 ‘롤링 인센티브’
베스팅(Vesting)은 스톡옵션·주식보상 등 장기 인센티브가 실제로 수령 가능해지는 시점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3~5년의 성과 평가 후 권리가 확정되지만, 일부 기업은 단 1~2년 만에 베스팅돼 주주와 이해 상충이 발생한다.
반면 롤링 인센티브(rolling incentive)는 매년 새로운 성과 목표가 설정되고, 일정 비율로 누적·중첩 보상이 이뤄지는 구조다. 장기 가치 창출을 유도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목표 설정이 느슨하면 과도한 보수로 이어질 수 있다.
● 시장·거버넌스 측면의 함의
전문가들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주류 투자 기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G’(지배구조) 영역의 핵심 의제인 보수 투명성에 대해 보다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인플레이션·금리 상승으로 실적 변동성이 커지는 국면에서, 경영진 성과 연계 보상에 대한 주주 감시가 한층 날카로워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향후 기업들은 ① 장기적 성과 지표 확대, ② ESG 연동 가중치 상향, ③ 경영진·이사회 주식보유 의무 강화 등을 통해 주주 설득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반면 이를 소홀히 할 경우, ‘세컨드 스트라이크(2차 반대)’와 같은 중징계^1^가 가해질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1) 일부 국가에서는 동일 안건이 2년 연속 25% 이상 반대표를 받으면 이사진 전원 재선임이 거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