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기업들, 트럼프발 무역전쟁 ‘허리케인’은 피했지만 15% 관세에 씁쓸

런던발 리포트 — 유럽 기업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기 행정부가 예고했던 ‘글로벌 관세 30%’ 파고를 피해 15%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다는 소식에 안도하면서도, 기존 평균 2.5% 수준이었던 미국 수입관세보다 여전히 몇 배 높은 새 기준에 우려를 표했다.

2025년 7월 28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전날 유럽연합(EU)과 미국은 대부분의 유럽산 제품에 15% 관세를 부과하는 새 무역 프레임워크에 합의했다. 이로써 전 세계 교역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양측이 ‘관세 전면전’으로 내몰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단 막았다.

그러나 유럽 산업계가 처음 기대했던 ‘제로 대 제로(zero-for-zero)’—즉 상호 관세 철폐—모델과는 거리가 먼 결과다. 합의 발표 직후 독일화학산업협회(VCI) 회장 볼프강 그로쎄 엔트루프는 “

허리케인을 예상한 이들은 폭풍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면서도 “15%는 여전히 화학 업계에 과도한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합의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EU 기업들의 미국 내 신규·추가 투자 6000억 달러, 트럼프 2기 동안 EU의 미국 에너지구매 7500억 달러, 자동차·항공·화학 등 대부분 품목 15% 관세 일괄 적용, 항공기·반도체 장비·일부 농산물 등 전략 품목 면제다.

자동차 업체들의 계산도 분주하다. 폭스바겐(VW)스텔란티스는 4월 트럼프가 전격 부과한 25%보다는 낮아졌지만, 여전히 두 자릿수 관세를 감수해야 한다. 이날 프랑크푸르트 증시에서 스텔란티스 주가는 3.5% 뛰었고, 부품사 발레오는 4.7% 상승했다.

면제 혜택을 받은 대표 품목은 항공기 및 부품이다. 에어버스에는 단기적으로 호재다.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사인 ASML도 4% 이상 급등하며 범유럽 STOXX 600 지수 상위권에 올랐다.


아직 미정(Still to be negotiated)이라는 표현은 협상이 끝나지 않은 품목을 가리킨다. 대표적으로 증류주·와인·고급 화장품이다. 네덜란드 맥주사 하이네켄의 돌프 판 덴 브링크 최고경영자(CEO)는 “확실성이 생겼다”며 합의를 반겼지만, 와인업계는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스페인와인연맹(AEFE) 호세 루이스 베니테스 국장은 “협상 막판 농산물엔 ‘제로 대 제로’ 방식이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며 “유럽 와인이 예외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와인협회(UIV) 람베르토 프레스코발디 회장은 15% 관세가 12개월 동안 최대 3억1,700만 유로(약 4,030억 원) 손실을 야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화장품 업계 역시 촉각을 곤두세운다. 프랑스 화장품협회(FEBEA) 사무총장 엠마누엘 기샤르는 “불확실성은 사라졌지만 프랑스 업체의 가격 경쟁력이 줄어들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FEBEA 회원사에는 로레알, LVMH, 클라란스 등이 포진해 있다.


전문가 해설: ‘제로 대 제로’가 무엇인가?
국제 통상 용어 ‘zero-for-zero’는 양측이 동일 품목에 대해 관세를 완전히 철폐하는 방식이다. 1997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정보기술협정(ITA)이 대표적 사례다. 이번 EU-미국 협상에서도 자동차·주류 등 품목을 두고 같은 모델이 논의됐으나, 정치적·재정적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최종 문안에서 빠졌다.

배경 분석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동안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시도했다. 2기엔 관세 카드를 더욱 과감히 쓰겠다고 공언했는데, EU와 일본이 잇달아 부분 타협안을 수용함으로써 관세 전면전은 일단 진화된 셈이다. 다만 평균 15%라는 단일 관세율은 중소 수출기업에 ‘사실상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달러-유로 환율 영향
현재 시장 환율은 1달러당 0.8507유로다. 관세로 인한 비용 상승분을 감안할 때, 유럽 수출업체들이 달러 강세 구간에서 환 헤지를 적극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가 확전은 피했지만, 유럽 수출 경쟁력은 여전히 위협받는다.”

전망
투자은행들은 관세 인상에도 불구, 미국 내 고정투자 확대 약속(6000억 달러)이 달러 유출을 억제해 미국 장기채 금리 상승 압력을 완화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일부 애널리스트는 “미·EU 간 구조적 통상 갈등은 여전히 불안 요소”라고 지적한다.


용어 설명 Baseline Tariff(기준관세) : 특별·임시관세가 아닌, 기본적으로 부과되는 일반 관세율.
Generic Drugs(제네릭 의약품) : 특허가 만료된 뒤 동일한 성분·효능을 가진 복제 의약품.
Critical Raw Materials(핵심 원자재) : 공급망 안정성을 위해 EU가 지정한 전략적 광물·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