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런트라인】 유럽 주요 금융기관 최고경영자(CEO)들이 급격히 팽창하고 있는 사모대출(private credit) 시장을 두고 “통제되지 않은 카지노”에 비유하며 시스템 전반의 위험을 경고했다. 독일 보험사 알리안츠(Allianz)의 올리버 베테(Oliver Bäte) CEO는 “사모대출을 혁신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규제 사각지대가 확대되면 2008년 금융위기와 유사한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25년 9월 20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베테 CEO는 “은행을 강력하게 규제해 온 데는 소비자 보호와 위기 시 손실흡수 목적이 있었지만, 사모대출 펀드의 다층 구조는 그러한 안전판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논의되는 사모대출은 혁신이 아니라 마치 카지노에 가깝다”는 표현을 사용해 파장을 일으켰다.
사모대출 시장의 팽창 — 글로벌 사모대출 시장 규모는 약 10년 사이 세 배로 커져 1조8천억 달러(약 2천4백조 원)에 이르렀다. 중소·중견기업(SME)이 은행 대비 경쟁력 있는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몰리고, 연기금·보험사도 고수익을 좇아 대거 참여하면서 생긴 결과다.
“위험의 최종 보유자가 보이지 않는다”
베테 CEO는 “결국 누가 위험을 떠안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면서 2008년 이전 주택담보부증권(MBS) 시장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언젠가는 충격이 발생할 것이며, 그때 시스템이 버틸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사모대출 부실은 기록을 시작한 2019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 마닝스타 DBRS 애널리스트 보고서(2025년 7월)
평가회사 모닝스타 DBRS에 따르면 사모대출을 이용한 중견기업의 30%가 재무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연환산 부도율은 2.2%를 넘어 지속 상승 중이다. 부실로 인해 채무 재조정을 진행 중인 기업 비중은 10%에 육박하고, 이들 기업의 평균 이익은 25% 이상 급감했다.
베테는 “문제가 발생하면 사모펀드에 돈을 빌려준 은행이 직격탄을 맞는다”며 “이는 2008~2009년 금융위기를 겪은 사회적 분노를 다시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규제의 공백, ‘투트랙 금융체제’ 우려
프랑스 거대은행 크레디 아그리콜(Crédit Agricole)의 제롬 그리베(Jérôme Grivet) 부CEO도 “은행과 비(非)은행권의 규제 수준이 현저히 다르다”면서 “은행 밖에서 시작된 충격이 전체 금융시스템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은행이 사모대출·논뱅크 대출기관에 빌려준 총액이 2010년 560억 달러에서 현재 1조2천억 달러로 급증했다. 전통적 금융·투자 수단만으로는 수익률을 맞추기 어렵다는 보험사·연기금의 고민이 레버리지(차입)를 부추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수익률 경쟁 압박” — 기관투자가들의 고민
무디스(Moody’s)는 사모대출 스프레드(추가 수익률)가 일반 회사채 대비 평균 100bp(1%포인트) 이상 높다고 분석했다. 크레디 아그리콜, 아비바(Aviva), 리걸앤드제너럴(Legal & General) 등 유럽 대형 보험사는 이미 자회사 운용·보험 포트폴리오로 사모대출을 확대하고 있다.
아비바의 아만다 블랑(Amanda Blanc) CEO는 “저위험·저수익 자산만으로는 은퇴자산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고, 리걸앤드제너럴의 안토니오 시모이스(Antonio Simoes) CEO는 “공·사모 시장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무디스 보고서는 “대다수 보험사가 유동성·투명성 리스크보다 수익·다각화 효과를 우선시해 사모대출 비중을 계속 늘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용어 풀이 및 맥락
사모대출(private credit)은 은행이 아닌 펀드·자산운용사가 직접 기업에 대출을 제공하는 형태다. 대출채권을 여러 층으로 쪼개 ‘펀드’ 형태로 투자자에게 판매하며, 레버리지(차입)를 활용해 고수익을 추구한다.
레버리지는 자기자본보다 많은 돈을 빌려 투자하는 기법으로, 수익률을 키우지만 동시에 손실 위험도 배가시킨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MBS·CDO 구조와 유사점이 있다.
스프레드(spread)는 동일 만기의 국채·회사채·사모대출 등 각각의 금리 차이를 의미한다. 스프레드가 넓다는 것은 위험보상 성격의 추가 이자(프리미엄)가 높다는 뜻이다.
전문가 시각과 향후 변수
전문가들은 규제 당국이 거시건전성 프레임 안에서 사모대출 정보를 의무 공개하도록 하고, 은행의 대손충당금·자본적정성 규제를 사모대출 익스포저(exposure)에 연동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베테 CEO도 “사모대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위험관리 없는 방임이 문제”라고 못 박았다.
실제로 유럽중앙은행(ECB)·영국 중앙은행(BoE)도 사모대출 리스크를 거시 시스템 위험(Macroprudential risk) 보고서에 포함하기 시작했다. 다만 구체적 규제안은 아직 난항을 겪고 있어, 시장 자율과 규제 공백 사이에서 정책당국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