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로이터] 중국 완성차 업체들이 유럽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BYD, SAIC에서 GAC에 이르기까지 주요 브랜드들이 과거에는 판매 부진에 시달리던 유럽 대륙에서 점유율을 확대하며, “유럽에 머물러 장기적으로 사업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2025년 9월 10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주 독일 뮌헨에서 개막한 IAA 모빌리티(IAA Mobility) 자동차 박람회에서 중국 기업들은 자국 내 치열한 가격 전쟁을 피해 유럽 시장을 차세대 성장 축으로 삼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IAA 모빌리티는 1897년부터 이어져 온 세계 4대 모터쇼 중 하나로, 최근 전기차·자율주행 중심으로 전시 콘셉트를 전환해 글로벌 완성차 및 스타트업의 미래 전략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다.
이번 박람회에서 GAC의 해외사업 총괄 웨이 하이강(魏海刚) 사장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유럽 소비자의 요구에서 출발한다
”며 Aion V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공개했다. Aion V는 이달 폴란드·포르투갈·핀란드에서 판매가 시작되며, 후속 모델 Aion UT 역시 2026년 유럽 출시가 확정됐다. 그는 “유럽을 위해, 유럽 안에서(localized production)”라는 구호를 내걸고 현지 생산 가속화까지 예고했다.
중국 고급차 브랜드 홍치(紅旗, Hongqi)와 20년 넘게 중국 최대 자동차 수출 실적을 유지한 체리(Chery)도 기자회견에서 같은 문구(“in Europe, for Europe”)를 반복했다. 이는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 독일업체들이 외치던 “in China, for China”
전략을 역으로 차용한 것이다.
폭스바겐은 중국 현지 전략이 무색하게 2020~2024년 사이 판매량이 24% 급감했다. 라이벌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도 고전 중이다. 반면, JATO 다이내믹스에 따르면 중국 브랜드의 유럽 점유율은 2024년 1~7월 4.8%로 전년 동기 대비 2배 가까이 뛰었다.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앞으로 10년 안에 중국 브랜드가 유럽에서 14%(일본 브랜드)·9%(한국 브랜드)에 해당하는 수준의 점유율을 차지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중국 업체들이 사실상 진입이 막힌 미국 시장을 대신해 유럽을 전략적 요충지로 삼으면서, 점유율을 놓고 격렬한 경쟁이 예고된다. 이번 박람회에는 중국 1위 완성차 그룹 BYD가 복귀했고, GAC·창안(Changan)·Aito·홍치 등 신흥 업체들도 대거 참가해 유럽 시장용 전기차를 대거 선보였다.
BYD의 2인자 스텔라 리(李柯) 부사장은 “우리는 유럽에 오래 머물기 위해 왔다
”며, 헝가리 신공장이 연말부터 양산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독일 기업 전략을 그대로 차용?
Sino Auto Insights 창립자 투 리(Tu Le)는 “중국 업체들이 독일 기업이 중국에서 쓰던 동일한 전략
을 유럽에 적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뮌헨행 비행기를 타고 온 중국 기업들은 기자회견장에서 유럽 현지 R&D 센터 설립, 현지 고용 창출, 현지 디자인 스튜디오 운영 등을 경쟁적으로 내세웠다.
Xpeng(샤오펑) 부회장 브라이언 구(Brian Gu)는 이번 주 뮌헨에 연구센터를 열었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현지 투자를 확대해 유럽 고객에게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겠다
”고 밝혔다.
국유 기업 FAW 산하 홍치는 2028년까지 유럽에 15개 모델을 출시하겠다고 선언하며, 기자회견 오프닝 영상에서 “유럽을 위해 제작, 유럽에 헌신”이라는 문구를 강조했다. FAW 글로벌 디자인 총괄 자일스 테일러(Giles Taylor)는 “7년 전부터 유럽 R&D 센터를 운영하며 유럽 고객을 위한 자동차
를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컨설팅기업 가트너의 리서치 부사장 페드로 파체코(Pedro Pacheco)는 “중국 업체들은 아직 중국 내수용 모델을 약간 변형해 유럽에 들여오는 수준”이라며, 1997년 도요타 야리스가 유럽 맞춤 모델로 대성공을 거둔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유럽 소비자 취향에 최적화된 차별화 요소가 어디 있느냐
”며 의문을 제기했다.
용어‧배경 설명
IAA 모빌리티(Internationale Automobil-Ausstellung Mobility)는 2년마다 독일에서 열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 모터쇼다. 2021년부터 ‘모빌리티’ 콘셉트를 내세워 미래 이동수단·친환경차·스타트업 전시 비중을 대폭 강화했다.
‘In China, for China’ 전략은 독일 완성차가 중국 현지 공장을 통해 현지 소비자 맞춤형 상품을 개발‧생산해온 방식을 뜻한다. 중국 업체들은 이를 ‘In Europe, for Europe’으로 전환해 현지화 전략을 천명하고 있다.
EU 내 전기차 가격경쟁은 중국 업체들의 공격적 진출로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보조금 축소 논의까지 나오면서, 가격 경쟁력이 직접적 성공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한편 미국 시장은 고율 관세·정치적 리스크 등으로 사실상 중국산 완성차의 진입이 봉쇄되어 있다. 이에 따라 유럽은 중국 업체들이 글로벌 존재감을 확대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선진 시장으로 부상했다.
종합하건대, 중국 완성차 기업들은 현지 생산·R&D·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으로 유럽 내 지속 가능한
시장 안착을 꾀하고 있다. 다만 유럽 소비자 특유의 품질·안전·브랜드 충성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디자인과 주행 성능, 그리고 서비스 네트워크 확충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