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뉴델리에서 굳은 악수와 ‘베어 허그’를 나누며 조기 무역협정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두 정상은 서로를 ‘위대한 친구’라고 부르며 양국 관계가 새 전기를 맞이했다고 자평했다.
2025년 8월 6일, CN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그로부터 불과 6개월 만에 분위기는 급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를 ‘관세 왕(Tariff King)’이라 지칭하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관세 폭탄을 부과했고,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 구매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조장’하고 있다고 공개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 수요일, 인도산 수출품에 추가 25% 관세를 부과해 총 관세율을 50%로 끌어올렸다. 이에 대해 인도 상무부는 즉각 성명을 내고 “부당하며 정당화될 수 없는 조치”라고 반발했다. 성명서는 또 “여러 국가가 자국 이익을 위해 동일한 행동을 하고 있는데, 유독 미국만 추가 관세를 택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관세(관세·Tariff)란 무엇인가?
관세는 특정 물품이 국경을 넘어올 때 정부가 부과하는 세금이다. 자국 산업 보호, 교역 상대국에 대한 압박, 재정 확보 등 다양한 목적이 있지만, 지나치게 높을 경우 교역 축소·가격 상승·외교 갈등을 초래한다.
이번 조치는 양국이 지난 20여 년간 공들여 쌓아온 전략적 협력을 뒤흔들고 있다. 관측통들은 “인도가 미국 압박에 양보할지, 아니면 정면 반발해 긴장을 감수할지”를 주목한다. 비라하리 카우시칸 전 싱가포르 외교부 차관은 CNBC 인터뷰에서 “인도는 독자 노선을 중시하는 국가”라며 “어떤 ‘보안관’의 부보 노릇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도는 자존감이 대단히 강한 나라다. 설령 충격을 받더라도 미국 대신 중국이나 러시아 품으로 완전히 기울 가능성은 없다.” — 비라하리 카우시칸 前 싱가포르 외교부 차관
희망에서 냉각으로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모디·트럼프 두 정상은 2030년까지 양국 교역 규모를 5,000억 달러로 두 배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1)당시 제이디 밴스 미 부통령과 피유시 고얄 인도 상무장관은 ‘선호 관세’ 적용에 원칙 합의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소셜미디어에 “인도와 러시아 경제는 ‘죽었다’(dead)”고 폄하했고, 파키스탄과의 관계 개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같은 발언은 뉴델리의 자존심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는 평가다.
냉전 이후 미·인도 전략변화
인도는 냉전기엔 소련에 기울었으나,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조지 W. 부시·버락 오바마 행정부를 거치며 미국과 협력을 대폭 확대했다. 특히 공동으로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이해가 맞물리면서 2016년 미 의회는 인도를 ‘주요 방위 파트너(Major Defense Partner)’로 지정했다.
하지만 에번 파이겐바움 카네기국제평화기금 부원장은 CNBC ‘스쿼크 박스 아시아’에 출연해 “이번 관세 폭탄은 20여 년간 축적된 신뢰를 한순간에 허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그간 양국이 러시아와의 관계(인도)·파키스탄과의 관계(미국)처럼 민감한 사안을 ‘차단벽’으로 관리해 왔으나, “이제는 그 장치가 무력화됐다”고 진단했다.
인도 외교부도 러시아산 원유 구매에 대한 서방국 비판을 “이율배반”이라 반박하며, 정작 유럽 각국도 러시아와 교역을 지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이겐바움은 “서방이 전쟁을 막지 못한 책임을 인도에 전가하는 셈”이라며 뉴델리의 불신이 고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중 관계 변수
최근 워싱턴이 베이징과의 소통 채널 복원을 모색하는 데 대해서도 인도는 불안감을 표한다. 니키 헤일리 전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인도는 강력한 동맹국”이라며 “그 관계를 소모전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고 백악관에 공개 메시지를 남겼다. 헤일리는 특히 중국이 러시아산 원유 최대 수입국임에도 지난 5월 90일 관세 유예를 부여받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협상 전망은 ‘안갯속’
전문가들은 이처럼 신뢰가 균열된 상황에서 무역협정 체결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파이겐바움 부원장은 “설령 합의가 이뤄져도 ‘심리적 계약’은 깨진 상태”라고 말했다.
인도 전 재무장관 수바시 가르그도 CNBC ‘인사이드 인디아’에 출연해 “입장 차가 너무 크다”며 사실상 봉합은 어렵다고 전망했다. 그는 “미국이 필요하다면 관세를 지불하면서라도 인도 물건을 살 것”이라며, 인도 기업엔 내수 및 제3국 시장 다변화를 주문했다.
반면 전 노동장관 수미타 다우라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8월 말 예정된 무역협상에서 긍정적 결과를 기대한다”고 신중론을 폈다. 그는 인도의 내수 수요가 “매우 견조”하다며, 인도·영국 FTA와 인도·EU FTA 협상이 연내 타결될 전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는 공정하고 상호 호혜적인 합의를 원한다. 인도 협상단은 훌륭한 결과를 이끌어낼 것이라 확신한다.” — 수미타 다우라 前 인도 노동장관
전문가 시각·향후 관전 포인트
① 정치적 변수: 2025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제조업 보호’라는 국내 정치 카드를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② 에너지 지형: 러시아제 원유 가격이 서방 제재로 할인되면서 인도 정유사 수입량이 이미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③ 대중(對中) 공조: 중국 견제가 미·인도 동맹의 핵심 축인 만큼, 워싱턴의 대중 전략 변화는 뉴델리의 전략적 균형감각에 직격탄을 줄 수 있다.
요컨대, 이번 ‘관세 전면전’은 단순 통상 갈등을 넘어 지정학·에너지·국내 정치가 복합적으로 얽힌 다차원 게임으로 확장되고 있다. 양국이 다시 전략적 신뢰를 복원할지, 아니면 ‘관세 왕’이라는 낙인이 고착화돼 협력 패러다임이 구조적으로 흔들릴지는 향후 수개월 내 외교 라인의 협상 역량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