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 시장 부진에도 자사주 매입 ‘멈춤’… 버크셔 해서웨이 현금 3,820억달러 사상 최고

워런 버핏(94) 회장이 60년 넘게 이어온 전설적 경영의 마지막 해에도 ‘지갑’을 열지 않았다.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는 2025년 1∼9월 동안 단 한 주의 자사주도 사들이지 않았으며, 같은 기간 현금 및 현금성 자산사상 최고치인 3,820억달러(약 517조원)*1로 불어났다.

2025년 11월 2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버핏 회장의 이러한 절제는 그가 오랜 기간 강조해 온 원칙, 즉 주가가 ‘내재가치’(intrinsic value) 대비 의미 있는 할인 상태일 때만 자사주를 매입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한 것이다.

버핏은 2018년 주주 서한에서 “주가가 우리가 추정한 가치보다 낮을 때 그리고 매입 후에도 충분한 현금이 남을 때에만 자사주를 사겠다”고 못 박았다. 그는 또 “의미 있는 할인폭이 나타날 경우 공격적으로 매수하겠지만, 주가를 떠받치기 위한 매입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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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크셔는 a) 주가가 가치보다 낮을 때, b) 매입 후 넉넉한 현금을 유지할 수 있을 때만 자사주를 사들이겠다.” — 워런 버핏, 2018년 주주 서한

왜 ‘안 싸다’고 판단했을까

UBS 애널리스트들에 따르면 버핏은 통상 내재가치 대비 최소 15% 할인이 발생해야 자사주를 매입해 왔다. 버크셔가 2018년 매입을 재개했을 당시 주가는 UBS 추정치 기준 약 13% 낮게 거래됐으며, 이후 할인폭이 20% 정도로 확대되자 버핏은 매입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버크셔 주가는 5월 초 고점 대비 12% 하락했지만, 여전히 버핏이 산정한 내재가치와 거의 동일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자사주 매입을 자극할 만큼 ‘싸지 않다’는 판단이 나온다.


시장 수익률 대비 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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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크셔 클래스 A(종목코드: BRK.A) 주가는 2025년 들어 5% 상승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S&P500 지수는 16.3% 올랐고, 최근 6개월간만 놓고 보면 S&P500이 23% 급등하는 사이 버크셔는 11% 가까이 하락했다.

올해 초 관세 갈등이 불거지며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고조됐을 때 버크셔는 잇달아 사상 최고가를 찍었다. 그러나 위험 선호가 되살아나자 주가는 급격히 되돌림을 보였고, 여기에 버핏의 연말 CEO 은퇴 선언이 겹치면서 낙폭이 확대됐다.

UBS의 전망

UBS는 3분기 자사주 매입이 없을 것이라고 선제적으로 예측했으며, 2026년까지도 추가 매입은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UBS 보고서는 “최근 조정에도 불구하고 버크셔 주가는 내재가치에 근접해 있어 매입 유인이 부족하다”면서 “특히 주당 순자산가치(Book Value)*2 대비 1.6배라는 현 밸류에이션은 2018년(1.3배) 대비 높다”고 평가했다.


현금 더미, 그리고 ‘다음 한 수’

자사주 매입이 중단된 사이 버크셔의 현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는 버핏 또는 차기 CEO 그레그 아벨(Greg Abel)에게 대규모 인수합병(M&A)이나 추후 자사주 매입을 위한 막대한 실탄을 제공한다.

버핏은 과거 “장기적으로는 주주 수(share count)를 줄이고 싶다”고 밝혀 왔다. 다시 말해, 적정가 이하로 주가가 하락할 경우 언제든 매입 버튼을 누를 준비가 돼 있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할인폭이 충분치 않은 이상, ‘가격’이 아닌 ‘시간’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용어 풀이

*1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단기 금융상품, 국채, 머니마켓펀드 등 즉시 사용 가능한 유동 자산을 모두 합한 금액을 말한다.

*2 Book Value(주당 순자산가치)는 총자산에서 총부채를 차감한 뒤 발행주식수로 나눈 지표로, 기업 청산 시 이론상 주주가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으로 해석되곤 한다. 버핏은 과거 장기간 이 지표를 ‘안전마진’ 산출의 보조 도구로 사용해 왔다.

또한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식은 클래스 A(BRK.A)와 클래스 B(BRK.B) 두 가지로 나뉘는데, 클래스 A는 의결권이 강력하고 액면분할이 거의 없어 한 주 가격이 수십만 달러에 이른다. 일반 투자자는 보통 클래스 B를 통해 버크셔에 투자한다.

전문가 시각

뉴욕 월가에서 활동하는 한 자산운용사는 “현금 비중이 30%를 넘어선 상황에서, 버크셔가 결국 ‘코끼리급’ 딜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면서 “주식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버핏이 평소 언급한 ‘재앙적 가격(disaster pricing)’의 기회가 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버핏이 은퇴를 공식화한 만큼 향후 매입·M&A 의사결정 구조가 어떻게 재편될지, 그리고 시장이 이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또 다른 변수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