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혼조세로 마감했다. 9월물 서부텍사스중질유(WTI)※미국 텍사스 중질유로, 세계 원유 가격의 벤치마크로 활용된다(코드 CLU25)는 전 거래일 대비 변동 없이 보합으로 장을 마쳤고, 9월물 RBOB 가솔린※Reformulated Blendstock for Oxygenate Blending의 약어로, 북미 가솔린 선물 가격 지표(코드 RBU25)은 0.086달러(0.41%) 상승했다.
2025년 8월 11일, 나스닥닷컴 보도에 따르면 이날 원유 가격은 큰 폭의 방향성을 보이지 않았으나, 미국이 추진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안에 대한 회의론이 지지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미 달러화 약세와 글로벌 증시 랠리가 동반되며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개선돼 유가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장 초반에는 브룸버그(Bloomberg) 통신 보도로 2개월 만의 저점을 찍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합의를 모색 중이며, 합의가 이뤄질 경우 미국은 러시아 에너지 수출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지 않을 전망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동부 돈바스 전역과 크림반도를 양도한다면 헤르손·자포리자 지역에서 공세를 중단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 해제가 이뤄져 글로벌 공급이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가 매도 재료로 작용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일주일 전 “러시아가 8월 11일까지 휴전에 나서지 않으면 러시아산 에너지를 구매하는 국가에 새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어 인도산 수입품 관세를 25%에서 50%로 두 배 인상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JP모건체이스는 “러시아 원유에 트리플디짓(100% 이상) 관세가 실제 부과될 경우 OPEC의 잉여 생산능력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시장은 공급 충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OPEC+※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주요 비(非)회원국의 협의체가 9월 1일부터 하루 54만7000배럴 증산하기로 하면서 공급 과잉 우려도 부각됐다. OPEC+는 지난 2년간의 감산을 역진(逆進)시키기 위해 2026년 9월까지 총 220만 배럴을 단계적으로 복원할 계획이다. 단체는 “수요 상황을 면밀히 관찰해 필요 시 감산 재개 또는 증산 취소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재고가 하루 100만 배럴씩 증가하고 있으며 2025년 4분기에는 세계 소비량의 1.5%에 해당하는 초과 공급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유럽연합(EU)은 러시아산 석유 제재를 강화했다. 새 패키지는 러시아계 은행 20곳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추가 제외하고, 제3국에서 정제된 러시아 석유제품까지 제재 대상으로 확대했다. 러시아의 국영 석유기업 로스네프트가 지분을 보유한 인도 대형 정유시설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또한 러시아의 이른바 ‘그늘 선대(shadow fleet)’ 소속 유조선 105척이 추가로 제재되면서, 제재 대상 선박은 400척을 넘어섰다.
시장조사업체 보르텍사(Vortexa)는 8월 1일 종료 주 기준, 7일 이상 정박해 있는 유조선의 부유식 저장 원유가 전주 대비 15% 감소한 7,912만 배럴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공급 감소 전망에 강세 재료로 작용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8월 1일 발표한 주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원유 재고는 5년 평균 대비 6.5% 낮았고, 가솔린 재고는 0.3% 낮았으며, 디스틸레이트(난방유·경유) 재고는 16.1% 낮았다. 같은 기간 미국 원유 생산량은 주간 기준 0.2% 감소한 하루 1,328만4천 배럴로, 2024년 12월 6일 사상 최고치(1,363만1천 배럴)에는 미치지 못했다.
서비스 기업 베이커휴즈(Baker Hughes)에 따르면 8월 8일 종료 주 활동 중인 미국 내 원유 시추 굴착기는 전주 대비 1기 증가한 411기로, 8월 1일 기록한 3년 9개월 만의 최저치(410기)에서 소폭 반등했다. 그러나 2022년 12월 5년 3개월 만의 고점(627기)보다는 크게 줄어든 상태다.
※ RBOB 가솔린과 WTI 선물은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며, 각각 북미 가솔린·원유 가격의 대표적 지표다. WTI는 미국 내 생산·소비 비중이 높아 브렌트(Brent) 대비 미 국내 여건에 민감하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지정학적 변동성, OPEC+ 정책,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서방 제재 강화, 그리고 미국 내 재고·시추 데이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글로벌 원유 시장은 공급 전망과 수요 기대 사이에서 방향성을 모색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