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DC발 — 러시아와의 전쟁이 3년을 넘어 장기화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알래스카에서 단독 회담을 앞두자 우크라이나가 국제사회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모스크바는 결코 믿을 상대가 아니며, 새로운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5년 8월 12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정보·군사 당국으로부터 최신 보고를 받고 “푸틴이 무엇을 노리고 있고 실제로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들었다. 그 내용에는 군사적 대비도 포함돼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야간 연설에서
“러시아가 휴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어떤 징후도 없다. 러시아군이 전후 상황을 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증거 역시 없다. 오히려 병력과 장비 이동 경로를 보면 새로운 공격 작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 평화를 준비하는 자는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어 “푸틴의 유일한 목표는 미국과의 회담 자체를 개인적 승리로 포장하고, 이후에도 예전과 다름없이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크렘린에 반론의 기회를 주기 위해 CNBC가 러시아 측에 의견을 요청했으며, 아직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를 빼놓고는 그 어떤 합의도 불가능”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목소리를 누가 귀 기울여 듣느냐이다. 이번 알래스카 회담에 젤렌스키 대통령과 유럽연합(EU) 주요 인사들은 초청받지 못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는 “당사국 부재 상태에서 우리 미래를 논할 수는 없다”며 강경하게 반발했다. 특히 러시아가 점령 중인 영토를 평화의 대가로 내주는 ‘영토 양도 시나리오’가 수면 위로 오르자, 키이우는 이를 적색선으로 규정했다.
유럽 지도자들 역시 우크라이나 참여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독일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화상 긴급 회의를 제안, 12일 오후(유럽 현지 시각) 젤렌스키 및 EU 정상들과 함께 러시아 압박 강화 방안, 점령지 문제, 키이우 안보보장을 논의할 예정이다.
트럼프 “어느 정도 영토 교환 가능…우크라이나 땅 일부 되찾겠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어느 정도 땅을 바꾸는 거래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위해 그 ‘주요 영토(prime territory)’ 일부를 돌려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번 회담을 “탐색전(feel-out meeting)”이라 칭하며 결과에 대한 기대치를 낮췄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이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 먼저 확인할 것”이라며 “만약 공정한 제안이라면 EU, NATO,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공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 견해: ‘포괄적 해결’은 요원, 시간 벌기 전략 가능성
지정학 분석가들은 이번 회담이 “전쟁 종식의 근본 해법을 내놓기보다는, 양측 입장 차를 가늠하는 시범적 성격”이 될 것으로 본다. 리스크 컨설팅사 테네오(Teneo)의 안드리우스 투르사(Andrius Tursa) 고문은 이메일 논평에서 “양측이 일부 의제에서 타협 여지가 있는지를 시험하려는 것”이라면서, “설령 고위급 합의가 이뤄져도 후속 이행 협상만 해도 난관이 많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는 전선에서 점차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협상을 지연시키며 이익을 극대화하려 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미국이 상징적 외교 성과에 집중하는 사이, 크렘린이 부분적·일시적 긴장 완화를 제시해 우크라이나에 실질적 양보를 요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의 ‘레드라인’
테네오는 “우크라이나 의회와 국민 여론이 불리한 합의를 승인할 가능성은 없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젤렌스키 행정부는 회담 전부터 영토 양도론을 공개적으로 거부하며 “키이우의 레드라인”을 분명히 했다. 만약 트럼프-푸틴 간 초안이 우크라이나 참여 없이 마련된다면, 러시아는 “키이우가 평화의 걸림돌”이라는 프레임을 만들고 워싱턴에 젤렌스키 압박을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용어 풀이 및 추가 설명
탐색전(Feel-out meeting)은 상대 의도와 가능성을 가늠하기 위해 사전 조건 없이 진행되는 회담을 뜻한다. 전면적 협상과 달리 구체적 합의를 목표로 하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 성과보다는 상대방의 ‘레드라인’과 분위기 파악이 주목적이다.
영토 교환(Territory Swapping)은 분쟁 지역에서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해 서로가 점령하거나 주장하는 영토를 교환·재배치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안처럼 주권과 국제법적 원칙이 걸린 경우, 이는 내부 정치적 정당성과 국제법 위배 여부 등 복합적 문제가 얽혀 있어 추진이 쉽지 않다.
기자 해설: 미국·러 정상회담의 파급력과 한계
이번 알래스카 회담은 “전쟁을 끝낼 수도, 끝내지 못할 수도 있는 거대한 정치 이벤트”다. 그러나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빅딜’을 시도할 경우, 합의 효력과 지속 가능성 모두 의문부호가 붙는다. 무엇보다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현 전선에서, 군사적 판세가 협상장을 지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외교적 성과를 과시할 카드”가 필요하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서방 제재와 저유가로 흔들리는 경제를 숨 돌릴 명분이 절실하다. 즉, 두 정상 모두 국내 정치의 압력을 완화할 ‘사진 한 장’이 필요하지만, 실제 전쟁 종식에는 훨씬 복잡한 이해관계가 내재한다.
따라서 이번 회담을 바라보는 관전 포인트는 ① 우크라이나 참여 여부, ② 영토 문제의 구체적 언급, ③ 휴전·완전철수·안보보장 등 핵심 의제의 진전으로 요약된다. 향후 대화가 몇 차례 추가로 이어질 경우, 시장과 국제정세가 순차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국제사회가 배제된 ‘양자 담판’은 “푸틴에게 시간을, 트럼프에게 정치적 성과를” 제공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과 영토 주권이 희생되지 않도록, 유럽과 NATO의 적극적 개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