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Oracle) 주가가 시간외 거래에서 21% 급등했다. 시장 예상치를 소폭 밑돈 실적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제시한 공격적인 성장 청사진이 투자 심리를 강력하게 자극한 결과다.
2025년 9월 9일(현지시간),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오라클은 2026 회계연도 1분기(종료일 8월 31일) 실적을 발표하며 주당순이익(EPS) 1.47달러(조정치)와 매출 149억3,000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각기 1.48달러, 150억4,000만 달러를 기대한 LSEG(구 리피니티브) 컨센서스를 근소하게 하회한 수치다.
그러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2% 성장했고, 순이익은 29억3,000만 달러로 전년과 동일한 수준을 지킨 점, 그리고 무엇보다 잔여 수행 의무(Remaining Performance Obligation·RPO)가 무려 4,550억 달러에 달한다는 대목이 투자자 눈길을 사로잡았다. RPO는 이미 계약은 체결됐으나 아직 인식되지 않은 매출을 의미하며, 향후 손익계산서에 반영될 잠재 매출 규모를 가늠하는 지표다. 전년 대비 359%나 뛰었다는 점이 오라클 클라우드 사업의 추세적 성장성을 방증한다.
Safra Catz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분기 세 고객과 네 건의 수십억 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특히 OpenAI가 오라클과 손잡고 4.5GW(기가와트)에 달하는 미국 내 데이터센터 용량을 신규 구축하기로 한 사실이 7월에 공개되면서, 생성형 인공지능(GAI) 수요 확대로 인한 오라클 인프라 사업의 수혜 기대감이 커졌다. 4.5GW는 대형 화력 발전소 네 곳에 해당하는 전력 규모다.
오라클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아마존 웹서비스(AWS) 등 거대 클라우드 사업자보다 후발주자였지만, 최근 몇 년간 NVIDIA GPU에 대한 선제적인 투자와 자체 2세대 OCI(Oracle Cloud Infrastructure) 아키텍처로 AI 워크로드에 특화된 생태계를 구축했다. 이번 분기 클라우드 인프라 매출은 33억 달러로 55% 급증해 직전 분기 52% 성장률을 또다시 웃돌았다.
주가·시가총액 동향
오라클 주가는 8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2025년 들어서만 45% 상승했다. S&P 500 지수 상승률 11%를 크게 앞선다. 시간외 21% 급등이 10일 정규장에서도 유사하게 이어질 경우, 1999년 닷컴 버블 이후 26년 만의 최대 일일 상승폭이 될 전망이다. 회사 시가총액은 8,000억 달러 선을 돌파하게 된다.
시장조사업체 CFRA의 애널리스트 John Freeman은 “클라우드 시장이 AI 특수로 재편되면서 오라클이 ‘늦깎이 승자(late bloomer winner)’로 부상 중”이라며 “향후 몇 분기 동안 수익성까지 수직 상승할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분석했다.*애널리스트 평가는 개인 의견이며 투자 판단의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다
주요 계약·협력 구도
이번 분기 오라클은 구글 클라우드의 차세대 생성형 AI 모델 ‘Gemini’를 OCI에서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경쟁사와의 협업을 통해 고객이 가장 성능 좋은 모델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지원하면서, ‘멀티클라우드·개방형 AI’ 전략에 힘을 실었다.
또한 회사는 AI 교육 과제를 다루는 백악관 태스크포스 회의에 참여해 정책적 존재감을 강화했다. Safra Catz CEO는 지난 9월 4일 백악관 만찬에서 “AI는 공공·민간 부문 모두에 혁신적 기회를 제공하며, 이를 위한 인프라 투자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용어 설명
Remaining Performance Obligation(RPO)은 공급자가 이미 계약을 체결했으나 서비스가 아직 제공되지 않아 매출로 인식되지 않은 잔여 계약 금액을 의미한다. 클라우드 기업에게는 미래 매출 성장성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선행지표다.
GPU(Graphics Processing Unit)는 AI 학습·추론에 필수적인 병렬 연산을 담당한다. 특히 NVIDIA GPU는 고성능 AI 칩 시장에서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잡았으며, AI 붐으로 수급이 극도로 타이트해진 탓에 조기 확보 여부가 클라우드 사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가 됐다.
전망과 기자 해설
오라클은 전통적인 데이터베이스 라이선스 비즈니스에서 벗어나 클라우드 ‘서비스형 인프라(IaaS)’와 ‘서비스형 플랫폼(PaaS)’ 모델로 전환하며 탄탄한 구독 기반 현금흐름을 확보했다. 특히 데이터베이스 고객이 대규모로 OCI로 이동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운영마진이 지렛대 효과를 받는다. 이번 분기 RPO 급증이 이를 방증한다.
다만 클라우드 인프라 시장에서 AWS·마이크로소프트·구글과의 가격 경쟁, GPU 공급망 병목, 에너지 비용 상승 등 리스크 요인은 여전히 존재한다. 기자가 추가 취재한 결과, 월가 애널리스트 사이에서는 “향후 12개월 PER이 30배를 웃도는 점은 밸류에이션 부담”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막대한 선주문을 통해 GPU 조달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해소했으며, 에너지 효율 최적화 설계 덕택에 전력단가 리스크를 줄였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결론적으로, 오라클은 AI 열풍을 추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체 클라우드·데이터베이스 강점을 결합해 수익성을 끌어올릴 구조를 마련했다. 주가 급등이 장기 랠리로 이어질지 여부는 향후 2~3분기 실제 매출 인식 속도와 마진 개선 추이에 달렸다.
오라클 경영진은 동 실적 발표 후 동부표준시(ET) 기준 9일 17시부터 컨퍼런스콜을 진행해 투자자 질의에 응답할 예정이다. CNBC는 “추가 지침과 AI 관련 수주 내역이 공개되면 향후 주가 흐름에 결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