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은행(BoE)이 영국의 은행 링펜싱(ring-fencing) 제도에 대해 핵심 보호장치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면서도, 일부 규정을 완화하는 방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대형 금융기관들이 요구해 온 광범위한 개편에는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복수의 소식통이 전했다. 이는 정부가 제도 전반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금융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는 중앙은행의 기조를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2025년 11월 18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링펜싱은 소매금융(예금·대출)과 투자은행 등 기타 위험도가 높은 활동을 분리하도록 한,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대표적 규제다. 제도의 목적은 위기 발생 시 예금자와 납세자를 보호하고 시스템 리스크의 전이를 차단하는 데 있다.
영국 재무장관 레이철 리브스(Rachel Reeves)는 7월에 “의미 있는(reforming) 개혁”을 약속하며 규제 간소화를 통해 경제성장을 뒷받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프루덴셜 규제국(PRA)을 통한 영란은행의 내부 기류는, 기본 보호벽을 약화시킬 수 있는 대대적인 제도 손질에는 선을 긋고, 운영 효율 개선 성격의 제한적 조정을 검토하는 쪽으로 기운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소매 예금이 350억 파운드(£35bn, 약 461억 달러)환율 기준: $1 = £0.7596를 넘는 은행은 링펜싱의 적용을 받는다. 이 기준은 로이드, 내트웨스트, HSBC, 바클레이스, 산탄데르 UK 등 주요 은행들에 해당한다. 비판론자들은 링펜싱이 영국 금융의 국제 경쟁력을 저해하고, 자본을 묶어두어 대출여력을 제한한다고 주장한다.
복수의 대형 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은행들은 최종 결정권을 가진 영국 재무부에 대해 로비를 벌이며, 비링펜스(non-ring-fenced) 은행이 투자은행 등 기타 활동에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된 ‘350억 파운드’ 한도의 일부를 링펜스 체계 내에서도 활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요지는 엄격하게 분리된 벽을 낮추어, 일정 범위 내에서 소매성 예금을 보다 탄력적으로 운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PRA 관계자들은 이러한 제안을 사실상 “울타리를 허무는 것”에 가깝다고 보고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사안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익명 조건으로 전했다. 핵심 보호장치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대 논리의 중심에 있다.
대신 영란은행은 더 작은 범주의 개선책에는 열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두 개의 법인(링펜스 유닛과 비링펜스 유닛) 간에 핵심 백오피스(back-office) 기능을 공유하는 것을 허용하거나, 복잡성이 낮은 바닐라 파생상품 거래를 링펜스 유닛 내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는 운영 효율성과 위험관리의 현실성을 일정 부분 반영하려는 절충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서비스 공유 금지 조항의 변경은 규제기관 자체의 룰북(rule book) 개정을 통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처리될 수 있는 사안으로 분류된다. 반면 자금흐름과 자본 규율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제도 변경은 광범위한 정책·법률 검토가 수반된다.
PRA는 해당 사안에 대한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고, 재무부 역시 코멘트를 내지 않았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인 만큼 공식 제안이 나오기 전까지는 기관들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모습이다.
“링펜싱 전면 폐지의 ‘차선책’” 논쟁
리브스 장관은 7월 연설에서 링펜싱 체계를 뒤흔들 개편 의지를 피력하며 규제가 “기업의 목을 누르는 족쇄”라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앤드루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는 다음 주 반박 입장을 내고 링펜싱을 옹호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는 기본적 금융안정에 대해 타협할 수 없다.”
한 상업은행의 고위 경영진은 현행 규칙이 국제 대형은행들의 영국 소매부문이 성장하기 전에 설계됐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JP모건은 영국에서 체이스(Chase) 은행의 소매 사업을 확대했지만 아직은 적용 기준(350억 파운드)에 미달한다. 임계치 미만의 은행은 예금을 투자은행 등 다른 활동에 활용할 수 있다.
또 다른 은행의 한 당국자는 350억 파운드 접근을 링펜싱 체제 전면 폐지의 ‘차선책’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규제의 근간을 유지하되, 일정 부분의 유연성을 부여해 자본 활용도를 높이려는 산업계의 ‘현실적 목표’로 해석된다.
두 번째 소식통에 따르면, PRA는 재무부와 함께 개편 제안을 2026년 초에 제시할 계획이다. 샘 우즈(Sam Woods) PRA 최고경영자는 2019년 발효된 링펜싱 설계에 핵심 역할을 했다. 그의 두 번째 5년 임기는 내년 6월 종료된다.
한편 바클레이스는 소매·투자은행 모두를 지원하는 별도 서비스 부문을 구축해 온 만큼, 주요 영국 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현행 규칙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조직 구조와 운영 모델이 링펜싱의 요구조건에 이미 최적화돼 있어 상대적으로 비용과 비효율이 작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핵심 개념 해설: 링펜싱, 백오피스, 바닐라 파생상품, PRA
링펜싱(ring-fencing)은 동일 그룹 내에서도 소매은행과 투자은행 간의 법적·운영상 분리를 요구하는 제도다. 소매예금(가계·소기업의 예금 등)을 위험도가 높은 활동으로부터 보호하고, 파생상품·자본시장 거래에서 발생한 손실이 예금자에게 전가되는 것을 막는 것이 목적이다. 핵심은 자본과 유동성, 거버넌스, IT 및 인력 등 지원 기능의 분리에 있다.
백오피스(back-office)는 결제, 정산, 회계, 리스크관리, IT 인프라, 인사·경영지원 등 직접적 수익창출과 거리가 있지만 은행 운영의 지속성을 떠받치는 필수 기능을 말한다. 두 법인 간 핵심 백오피스 공유 허용은 중복 비용 감소와 운영상 일관성 확보라는 장점이 있지만, 공유의 범위를 잘못 설계하면 리스크 전이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바닐라 파생상품은 구조가 단순하고 표준화된 선도·선물·이자율스왑 등으로, 복잡한 구조화상품에 비해 가격결정과 리스크 측정이 비교적 투명하다. 링펜스 유닛 내에서 바닐라 파생상품을 허용하는 방안은, 예컨대 예금·대출 포트폴리오의 금리위험을 기초적 수단으로 헤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도구를 인정하자는 취지로 이해된다.
프루덴셜 규제국(PRA)은 영란은행 산하의 건전성 감독 전담기구로, 은행·보험사 등의 자본·유동성·거버넌스 기준을 설정·감독한다. “울타리를 허무는” 수준의 개편에 반대하는 PRA의 입장은, 감독 실무의 연속성과 위기대응 능력을 중시하는 특성에서 기인한다.
쟁점의 함의: 보호와 효율 사이의 균형
현재 논의의 쟁점은 금융안정 보호와 운영 효율·경쟁력 사이의 줄다리기다. 공유 서비스 허용과 바닐라 파생상품 범위 확대는 비용 절감과 기능적 일관성을 통해 ‘과도한 중복과 비효율’을 줄일 수 있다. 반대로, 350억 파운드 임계치와 연동해 소매성 자금을 다른 활동에 폭넓게 전용하도록 허용하는 방안은, 링펜싱의 취지를 약화시키고 ‘위기 시 충격 고립’이라는 제도의 본령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결국 제도 미세조정의 폭과 경계설계가 관건이다.
또한 적용 임계치(£35bn) 바로 아래에 위치한 신흥·국제계 은행들의 소매사업 확대는, 규칙의 공정성과 형평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문턱효과(threshold effect)가 크면, 일부 금융기관이 의도적으로 규모를 조절해 규제를 회피하는 규모 인센티브 왜곡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정책적 응답은, 임계치 조정·유예 규정·비례적 감독 등 복수의 설계 도구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마지막으로, 2026년 초로 예정된 PRA-재무부의 공동 제안은 금융산업·정책당국·소비자 보호 간 이해관계의 접점을 모색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핵심 울타리의 견고함을 유지하면서도 운영 효율의 개선을 이끌 수 있는 정교한 설계가 요구된다. 업계는 비용 절감과 자본 활용성 제고를, 당국은 시스템 리스크 억제를 중시하면서도, 글로벌 경쟁 환경 속에서 영국 금융의 매력을 유지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