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발 — 영란은행(BoE)은 12일(현지시간) 자사의 자산매입 프로그램, 즉 양적완화(QE)와 관련해 영국 재무부가 결국 부담하게 될 순손실 추정치를 1,150억 파운드(약 1,550억 달러)로 소폭 낮췄다고 발표했다.
2025년 8월 12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조정치는 지난 5월 분기 보고서에서 제시됐던 1,200억 파운드 예상치보다 50억 파운드가 줄어든 수준이다. 불과 1년 전인 2024년 8월 BoE는 950억 파운드 손실을 전망한 바 있어, 불확실한 금리 경로가 손실 추계를 크게 흔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QE 프로그램의 배경과 구조
BoE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양적완화를 시작했다. 양적완화란 중앙은행이 국채(영국에서는 길트채)나 회사채 등 장기 채권을 대량으로 매입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장기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통화정책 도구다. 당시 재무부는 ‘손실이 나면 부담, 이익이 나면 회수’하는 구조에 동의했고, 이는 전 세계 중앙은행 가운데서도 손에 꼽히는 국고 완전 보증 모델로 평가된다.
프로그램은 브렉시트(2016년)와 코로나19 팬데믹(2020년)의 충격을 완화하고자 추가로 확대됐으며, 2021년 말까지 누적 8,750억 파운드 규모로 커졌다. 이후 2022년 2월부터 BoE는 보유 자산 축소(Quantitative Tightening)에 돌입했고, 현재 연간 1,000억 파운드 속도로 국채 보유액을 줄이고 있다.
주요 수치
• 누적 매입액: 8,750억 파운드
• 재무부가 이미 거둔 이익: 1,240억 파운드
• 향후 순손실 예상치: 1,150억 파운드
• 기준금리(현재): 4.0%
• ‘중립금리’ 가정 손실: 550억 파운드
손실이 발생하는 메커니즘
길트채 매입 당시 BoE가 지불한 평균 수익률은 현 기준금리보다 낮다. 금리가 0%대였던 시기에는 BoE가 민간은행에 지급하는 예치이자(은행 준비금)에 큰 부담이 없었으나, 2022년 이후 급속한 금리 인상으로 지급 이자 비용이 폭증했다. 여기에 보유 채권을 시장가보다 높은 가격에 매입했던 터라, 매각 과정에서 시가차손도 현실화되고 있다.
BoE는 최신 추정이 연간 약 300억 파운드 규모의 손실이 계속 발생할 것으로 봤다. 반면 2009~2021년에는 총 1,240억 파운드의 이익이 발생해 재무부로 송금됐다. 즉 기존 이익을 모두 상쇄하고도 1,150억 파운드를 추가로 국민 세금이 떠안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정치권·전문가들의 비판과 BoE의 반론
전 BoE 부총재인 찰리 빈(Charlie Bean)과 폴 터커(Paul Tucker)는 “현 구조는 국가 재정을 과도하게 압박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의원은 재무부와 중앙은행 간 손실 분담 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앤드루 베일리 총재는 “구조 변경은 통화정책 독립성을 훼손하고 시장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면서, 단순한 현금 손실보다 QE가 가져온 경제 성장과 낮아진 차입 비용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금리 시나리오별 손실 전망
BoE 분석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2.5% ‘중립 수준’으로 조속히 하락할 경우 순손실은 약 550억 파운드로 절반가량 줄어든다. 시장은 내년(2026년) 중 최저 금리를 3.5% 선에서 형성할 것으로 가격에 반영하고 있어, 현실적으론 대규모 손실을 피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또한 연간 자산 매각 속도를 1,000억 파운드에서 800억 파운드로 낮춘다 해도 순손실 규모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점도 이번 보고서에서 확인됐다. 이는 보유채 권면금액이 워낙 방대하고, 금리 수준이 손실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전문가 시각: 향후 정책 고려 사항
기자가 취재한 다수 시티(런던 금융가) 애널리스트들은 “현 추세라면 재무부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물가 안정을 위한 고금리 유지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통화정책 조기 전환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들은 BoE가 소극적 매각보다는 채권 만기 도래에 맞춘 자연상각(Natural Roll-off) 전략으로 전환해 시장 충격을 완화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영국 총선이 예정된 2026년을 전후해 통화·재정 당국 간 책임 공방이 가열될 수 있다는 점에서, QE 회계 처리 방식이 정치 쟁점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1 파운드/달러 환율은 보고서 작성 시점인 12일 기준 1달러 = 0.7428파운드였다.
2 본 기사에 언급된 모든 수치는 BoE가 공개한 중앙 시나리오(중간값)를 기준으로 한다.
용어 설명
• 양적완화(QE): 중앙은행이 시중 채권을 대량 매입해 통화량을 늘리고 장기금리를 낮추는 비전통적 통화정책.
• 길트(Gilt): 영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의 총칭.
• 중립금리: 경제가 과열이나 침체 없이 잠재성장률을 달성할 때의 이론적 정책 금리 수준.
결론적으로, BoE는 시장 기대와 정책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자산 축소 속도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고금리가 장기화할 경우 재무부가 감당해야 할 세금 부담이 예상 손실을 넘어설 것이라는 우려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