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주택 가격이 약 1년 6개월 만에 가장 광범위하게 하락세를 보이며 주택 시장 전반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부동산 전문기관 왕립 공인감정사협회(Royal Institution of Chartered Surveyors, RICS)가 12일(현지시간) 발표한 8월 주택가격지수(balance)는 -19를 기록해 전월(-13)보다 6포인트 하락했다.
2025년 9월 10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수치는 2024년 1월(-23) 이후 최저치로, 전문가 집계(로이터 경제학자 설문 예상치 -10)를 크게 밑돌았다. 이는 국내 경기 둔화, 높은 인플레이션, 기준금리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신규 주택 수요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RICS 주택가격지수는 조사 대상 감정사 가운데 ‘가격 상승’을 예상한 비율과 ‘하락’을 예상한 비율의 차이를 지수화한 것이다. 예컨대 -19라는 결과는 하락을 전망한 감정사가 상승 전망보다 19%p 더 많았음을 의미한다. 이 지표는 한국의 KB·부동산원 주택가격전망지수와 유사하게 시장 심리를 읽는 선행 지표로 사용된다.
세부 항목을 보면 신규 매수 문의(new buyer enquiries)가 순균형치 -17로 내려가 전월(-7) 대비 10포인트 급락했으며, 체결된 매매(agreed sales)도 -24로 전월(-17)보다 7포인트 악화됐다.
RICS 시장조사·분석 책임자인 터런트 파슨스(Tarrant Parsons)는 “매수세 둔화와 거래 감소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시장이 불확실성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영국 경제·재정 전망에 대한 우려, 완화되지 않는 인플레이션, 향후 금리 수준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면서 시장 심리를 짓누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7월 영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8%로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잉글랜드은행(BoE)은 9월 인플레이션이 4%로 정점을 찍은 뒤 2027년 2분기에야 2% 목표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 전·월간 온도차1도 뚜렷하다. 모기지 대출기관인 핼리팩스(Halifax)와 네이션와이드(Nationwide)는 7월 주택 가격이 전월 대비 보합에 그쳤고 전년 대비 2% 상승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RICS의 8월 조사에서는 ‘가격 하락 의견’이 빠르게 확산된 모습이다.
브렉시트 이후 타이트해진 인력·자재 공급,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에 따른 에너지비 급등 등 구조적 요인도 방해 변수다. 특히 부동산 시장과 기준금리에 민감한 변동형 모기지 비중이 높은 영국은 BoE의 긴축 기조가 직접적인 부정적 압력으로 작용한다.
재정정책·거시지표 변수
재무장관 레이철 리브스(Rachel Reeves)는 11월 26일 예정된 연례 예산안에서 증세 가능성을 시사하며 “정부는 BoE의 물가 안정 목표를 지원하고 성장 동력 확충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세수 확보가 가계 실질 소득에 또 한 번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 통계청(ONS)이 13일 발표할 7월 국내총생산(GDP) 속보치는 6월 0.4% 성장 후 ‘제로 성장’이 예상된다. 경제 모멘텀이 식어가는 가운데 고금리가 이어질 경우 주택 가격 하락세가 심화될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된다.
임대 시장도 수급 불균형이 심화됐다. RICS 조사에서 임차 수요(tenant demand)는 여전히 강한 반면 임대 공급(landlord instructions)은 순균형치 -37%로 2020년 4월 이후 최저다. 이에 따라 향후 3개월 간 임대료 상승을 예상한 응답 비중이 +27%로 조사됐다.
파슨스 책임자는 “주택 구매 대신 임대로 전환하는 수요가 커지는 반면 임대인들의 신규 물건 등록이 급감해 실수요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임대료 상승 압력은 당분간 완화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눈에 보는 주요 지표(자료: RICS, BoE, ONS)
- 8월 RICS 주택가격지수: -19(전월 -13)
- 8월 신규 매수 문의: -17(전월 -7)
- 8월 체결 매매: -24(전월 -17)
- 7월 CPI: 3.8%(YoY), 9월 예상 정점 4%
- 임대인 지시 사항: -37%(2020년 4월 이후 최저)
- 향후 3개월 임대료 전망: +27%
용어 설명
• RICS(Royal Institution of Chartered Surveyors): 1868년 설립된 영국 왕립 공인감정사협회로, 전 세계 부동산·건설 전문가 13만여 명이 가입해 있다. 월간 주택가격지수는 영국 정부와 시장 참가자들이 부동산 경기 선행 지표로 활용한다.
• House Price Balance: ‘가격 상승’과 ‘가격 하락’을 예측한 응답 비중 차이를 %포인트로 표현한 값이다. 0 이상이면 상승 우위, 0 이하면 하락 우위를 뜻한다.
• New Buyer Enquiries: 잠재적 주택 구매자가 부동산 중개업소에 구매 의사를 타진한 건수를 토대로 한 지표로, 예비 수요를 가늠할 수 있다.
전문가 시각
시장 참여자들은 ※강한 인플레이션 기대※와 BoE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2026년까지 실질 주택 가격이 추가로 3~5%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반면 ‘공급 부족’을 근거로 “장기적으로 영국 주택은 구조적 강세”라는 의견도 상존한다.
한국 투자자에게는 해외 부동산 펀드·리츠 편입 시 영국 시장 익스포저를 확대할지 여부를 판단할 때 이번 지표가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특히 임대료 상승과 금리 고점 논란은 영국 내 수익형 부동산의 총수익률(total return)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중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 가계 소득, 구조적 공급난—세 변수가 영국 주택 시장의 방향성을 결정지을 것으로 관측된다. 시장은 11월 예산안과 9월 BoE 통화정책회의 결과를 주목하며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