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 영국 재무장관 레이철 리브스(Rachel Reeves)가 적자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대규모 증세 예산안을 발표하며 근로자, 연금 저축자, 투자자에게서 더 많은 세수를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세부담(세수/국내총생산 비율)을 전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릴 전망이다. 해당 예산안은 앤디 브루스와 데이비드 밀리컨의 취재로 전해졌다다.
2025년 11월 27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영국의 재정 감시기관인 예산책임처(OBR)는 향후 수년간 영국 경제 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이는 지난해 총선에서 ‘경제 가속’을 약속했던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총리에게 악재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OBR는 이번 증세로 정부가 재정준칙을 충족하기 위한 ‘완충 여력(headroom)’을 기존 예상의 두 배 이상으로 확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OBR는 리브스의 연례 조세·지출 연설이 시작되기 전에 — 실수로 — 예측치를 사전 공개했으며, 이 내용은 로이터가 첫 보도했다. 해당 전망에 따르면 이번 증세 규모는 연간 261억 파운드(약 345억 달러)에 달한다. 그 결과 세수/명목 GDP 비율은 38.3%로 상승해 전후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는 지난해 유로존 평균치 41%보다는 여전히 낮다.
핵심 조치와 재정 여력 확대
리브스는 지난해 400억 파운드 규모의 증세를 단행했으며, 당시에는 ‘일회성’이라고 약속했지만, 이번에도 추가 증세에 나섰다. 그는 “
분명히 다시 반대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근로 대중에게 공정하면서도 실행 가능한 대안을 본 적이 없다
”고 말했다. 이번 결정은 재정준칙 상의 여유자금(headroom)을 확대해 4년 후 약 217억 파운드까지 늘릴 전망이라고 OBR는 밝혔다. 이는 올해 3월 99억 파운드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다.
다만 3월 이후 경제 여건은 악화됐다. OBR는 성장 둔화, 차입비용 상승, 그리고 복지 개혁에 대한 7월의 정책 선회가 기존 여지를 상당 부분 잠식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규모 증세가 이러한 부정적 요인을 상쇄해 재정 건전성 신뢰를 지탱했다고 평가된다.
성장률 전망 하향과 노동생산성 이슈
OBR는 향후 5년간 평균 성장률을 1.5%로 제시했으며, 이는 3월 전망치 대비 0.3%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하향 조정의 배경으로는 노동생산성 둔화가 지목됐다. OBR는 생산성의 과거 부진이 브렉시트 등 역풍의 영향과 맞물려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리브스는 “
올해도 전망을 뛰어넘었고, 앞으로도 다시 뛰어넘을 것이다
”라며 OBR의 보수적 전망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럼에도 OBR는 이번 예산과 전망의 종합 효과로 향후 영국의 생활수준이 근소하게만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일부 증세 부담이 가계 소득에 미치는 영향과 맞물려 있다.
시장 반응: 국채 수익률 하락, 파운드화 강세
투자자들은 대체로 이번 계획을 재정건전성 측면에서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 30년물 국채수익률은 하루 동안 거의 12bp 급락했는데, 이는 4월 이후 가장 큰 일일 하락폭이다. 차입 우려에 민감한 장기물 수익률이 하락한 것은 예산안이 신뢰를 일정 부분 확보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파운드화는 달러와 유로 대비 상승세를 보였다.
민간 부문에서는 세수 증가의 지속 가능성이 주목된다. 딜로이트 수석이코노미스트 이안 스튜어트는 OBR의 임금 상승 가정과 그에 따른 세수 확대가 리브스를 ‘구해냈다’고 평가하면서도, “
오늘 발표는 장기 성장에 부담을 남길 수 있다. 장관은 연간 260억 파운드의 추가 세금을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지적했다.
구체적 세제 조정: 소득세 기준선 동결 연장, 배당·부동산·저축 과세 강화
OBR에 따르면 소득세 과세 구간(임계값) 동결을 3년 연장하는 방안 — 이는 이전 보수당 정부에서 도입된 ‘동결’ 조치의 연장 — 으로 2029/30 회계연도에 추가 80억 파운드의 세수가 발생한다. 또한 급여 희생(salary-sacrifice) 방식의 연금 납입에 사회보장부담금을 부과해 향후 거의 50억 파운드를 추가로 거둘 전망이다.
이와 함께 배당소득, 부동산소득, 이자소득에 대한 세율 인상은 21억 파운드의 세수를, 2백만 파운드 초과 주택에 부과되는 이른바 ‘맨션세’는 2029/30 회계연도에 4억 파운드의 세수를 가져올 것으로 추정됐다. 유류세(fuel duty) 세율 동결은 유지하되, 전기차 대상 주행거리 기반(mileage-based) 부담금이 새롭게 도입된다.
그럼에도 프랭클린 템플턴(운용자산 1.5조 달러)의 유럽 채권 책임자 데이비드 자언은 “
기회가 놓쳤다. 내년에도 추가 증세가 불가피할 것
”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이번 예산이 단기적 재정여력을 확보했으나, 지속적 지출 압력과 성장 둔화를 고려할 때 추가 조정이 필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복지정책 전환과 정치적 파장
저소득 가정 복지급여의 ‘자녀 2명 상한’ 폐지는 여론조사에서 다수의 반대를 받고 있으나, 이번 발표는 노동당 의원들로부터 환호를 이끌어냈다. 다음 총선은 2029년 예정이지만, 리브스와 스타머의 리더십 권위는 당내 중도좌파 스펙트럼에서 간헐적으로 도전받고 있다.
재정연구소(IFS)는 이번 예산이 단기 지출을 늘리는 동시에, 증세의 상당 부분은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IFS의 헬렌 밀러 소장은 “
다음 총선을 불과 직전에 앞두고 미래의 긴축을 약속하는 구상은, 상당한 회의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고 말했다.
공공 지출은 이번 예산 조치로 매년 증가할 예정이며, 2029/30 회계연도에는 추가 110억 파운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주로 복지정책 전환에 따른 재원 소요를 충당하기 위한 것이다.
빈곤정책 싱크탱크의 반응과 생활비 부담
조지프 라운트리 재단(Joseph Rowntree Foundation)은 자녀 2명 상한 폐지, 에너지 요금 인하 조치,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화요일 발표)을 환영했다. 재단의 통찰·정책국장 알피 스털링은 “
그러나 여전히 할 일이 많다. 주거비와 각종 청구서는 여전히 너무 비싸고, 사회적 안전망은 취약하며, 돌봄 부담이 노동자에게 지나치게 무겁다
”고 말했다.
OBR의 진단대로라면, 증세에 따른 가처분소득 제약과 생활비 부담은 당분간 완화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국채시장 안정 및 통화가치 회복은 차입비용 절감과 재정신뢰 개선을 통해 중기적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용어 해설: 정책 텀의 맥락 이해
세수/명목 GDP 비율은 국가가 거둬들이는 세금이 경제 규모 대비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재정 부담 및 정부의 개입 정도를 가늠하는 데 활용된다. 재정준칙 ‘헤드룸(headroom)’은 정부가 규칙을 위반하지 않고도 추가 지출 또는 감세를 할 수 있는 여유 규모를 의미한다. 급여 희생(salary sacrifice) 연금은 근로자가 세전 급여 일부를 연금으로 전환하는 구조로, 세제·사회보장 부담에 차이가 발생한다.
유류세(fuel duty)는 휘발유·경유 등에 부과되는 세금으로, 동결은 소비자 물가와 물류비에 영향을 준다. 전기차 주행거리 기반 부담금은 연료 소모가 없는 EV에 도로 사용에 따른 비용을 매기는 방식으로, 세수 형평성을 보완하려는 시도다. ‘맨션세’는 고가 주택에 대한 추가 과세를 뜻하며, 자산가격·지역경제에 파급이 있을 수 있다. 자녀 2명 상한(two-child cap)은 복지급여 산정 시 자녀 수 인정 한도를 2명으로 제한하는 정책으로, 빈곤·출산율·재정 사이에서 논쟁이 이어져 왔다.
해석과 시사점: 재정 신뢰 vs. 성장 제약
이번 예산안은 국채시장의 우려를 누그러뜨리고 파운드화의 신뢰를 개선하는 데 성공한 반면, 생산성 정체와 가계 실질소득 개선의 더딤이라는 구조적 제약을 동시에 드러냈다. 세부담의 전후 최고치는 재정 건전성을 뒷받침하지만, 민간 부문 투자와 노동공급에 미칠 잠재적 영향에 대한 정교한 관리가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소득세 구간 동결은 명목임금 상승 시 더 많은 납세자가 상위 구간으로 편입되는 ‘빙하적 증세(fiscal drag)’ 효과를 강화한다. 이는 단기적으로 세수를 확대하지만, 중기적으로 가계의 소비여력을 제약할 수 있다. 동시에 배당·부동산·저축소득 과세 강화는 자본소득에 대한 조세 형평을 제고하는 반면, 투자 의사결정과 자산시장 유동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복지의 선택적 확장(자녀 2명 상한 폐지)은 빈곤 완화 및 에너지 비용 부담 경감과 결합해 사회적 안전망을 보강하려는 방향으로 읽힌다. 시장이 장기금리 하락으로 응답한 만큼, 정부는 이 신뢰를 생산성 제고 투자와 규제 효율화로 전이시켜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추가 사실환율: $1 = 0.7568 파운드. 본 환율은 보도 시점 기준 참고 수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