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발 재정 딜레마에 영국 정부가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국립경제사회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Economic and Social Research·NIESR)는 6일(현지시간) 보고서를 통해 레이철 리브스(Rachel Reeves) 영국 재무장관이 ‘불가능한 트릴레마’, 즉 대규모 증세·공공지출 삭감·재정 규칙 변경 가운데 어느 것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2025년 8월 5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NIESR은 올해 말까지 리브스 장관이 설정한 ‘10년 말까지 경상수지 균형 달성’ 목표가 410억 파운드(약 540억 달러) 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세입으로 일상적인 공공지출을 충당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사실상 재정적자 확대로 귀결될 위험성을 시사한다.
NIESR은 리브스 장관이 과거에 확보했던 99억 파운드의 ‘재정 여유(buffer)’를 복원하려면, 올가을(10~11월) 예정된 예산안(Budget Statement)에서 최대 500억 파운드 이상의 증세 또는 지출 절감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리브스 장관은 지난해 이미 400억 파운드 규모의 증세를 단행했으며, “같은 선택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리브스와 키어 스타머 총리는 경제 성장 가속화와 동시에, 이미 한계에 다다른 공공지출 수요까지 충족시켜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 NIESR 보고서 중
경제 성장률 전망도 낙관적이지 않다. NIESR은 2025년 영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1.2%에서 1.3%로 소폭 상향했지만, 2026~2030년 모든 해의 전망치는 하향 조정했다. 특히 2028년 성장률을 1.0%로 제시했는데, 이는 예산책임처(Office for Budget Responsibility·OBR)가 제시한 1.7%보다 크게 낮다.
은행권(HSBC·바클레이스 등) 이코노미스트들은 OBR이 올가을 새 전망을 내놓을 때 리브스 장관이 약 200억 파운드의 재정공백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빈틈의 상당 부분은 장기질병 수당 삭감, 고령층 연료 보조금 축소 계획 등 정부가 뒤늦게 철회한 정책(U턴)에서 비롯됐다.
스티븐 밀러드(Stephen Millard) NIESR 부소장은 “NIESR 추정치(410억 파운드)와 은행권 전망(200억 파운드)의 차이는 주로 성장률 가정의 격차 때문”이라며, “다만 5월 당시 570억 파운드로 예상했던 적자 규모가 다소 줄어든 것은 최근 정부 세수(稅收) 개선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물가·통화정책 전망
NIESR은 2025년 영국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3.3%로 예측했다. 이는 영란은행(BoE)의 2% 목표를 상회한다. 물가는 2026년 2.8%, 2027년 2.2%로 점진적으로 둔화될 것으로 봤다.
보고서는 영란은행이 8월 6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11월 추가 인하, 2026년 초 또 한 차례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생활비 부담 완화를 통한 소비 진작이 목표다.
가계 살림살이 ‘양극화’ 지속
NIESR은 2025/26 회계연도에 대다수 가계의 실질 생활수준이 소폭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소득 하위 10% 계층은 임대료·식료품·에너지 비용 상승과 소득세 과세 시작점 동결(인플레이션 조정 미반영) 탓에 오히려 생활 수준이 후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 시각: ‘재정 규칙’이 문제인가, 성장 전략이 문제인가
영국의 재정 규칙(fiscal rules)은 통상 부채비율 관리와 경상수지 균형이라는 두 축 위에 설계됐다. 규칙 변경은 국가 신용도와 국채 시장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리브스 장관이 ‘불가침 영역’으로 규정해왔다. 그러나 국방·보건·교육 등 필수 분야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규칙 고수를 주장하면 증세 혹은 긴축이라는 정치적 독약을 마셔야 한다.
전문가들은 “생산성 개선과 투자 활성화 없이 증세만으로는 재정 균형 달성이 불가능하다”며, “규제 완화·디지털 인프라 투자 등 성장 전략에 대한 청사진이 시급하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용어 풀이
OBR(예산책임처): 정부 예산·재정 전망을 독립적으로 검증하는 기구로, 예산안의 핵심 가정(성장률·세수·지출)을 제시한다. 보고서의 현실성 여부를 가늠하는 ‘재정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Fiscal Buffer(재정 여유): 예상치 못한 경기 침체나 지출 급증에 대비해 마련해 둔 안전판 성격의 기금·재원이다.
Trilemma(트릴레마): 동시에 충족하기 어려운 세 가지 선택지를 일컫는 경제·정책학 용어다. 이 기사에서는 증세·지출 삭감·재정 규칙 변경을 의미한다.
환율 기준: 1달러 = 0.7535파운드(기사 작성 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