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 영국의 머니 매니저와 자산운용 업계가 26일(현지시간) 발표된 예산안 속 연금·저축·투자 관련 증세에 일제히 반발하며, 국민의 저축 의욕을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예산안은 연금 급여희생(salary sacrifice) 방식의 세제 혜택 축소와 배당·부동산·저축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를 핵심으로 하며, 고소득자와 자산가의 세 부담이 두드러지게 늘어나는 구조다.
2025년 11월 27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레이철 리브스 영국 재무장관은 정부 재정 보강을 위해 260억 파운드(약 344억 달러) 규모의 추가 증세를 공개했다. 영국 예산책임국(Office for Budget Responsibility, OBR)은 이번 조치가 2030~31 회계연도까지 총 공공부문 수입을 1.5조 파운드, 국내총생산(GDP) 대비 42.4%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전후 최고의 세부담 기록을 경신하는 것으로, 특히 더 많은 납세자를 상위 세율 구간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금융시장은 초기 반응에서 긍정적이었다. 영국 주식과 국채 가격은 예산안 직후 동반 강세를 보였고, 시장은 리브스의 예산안이 영국의 재정 신뢰도를 보강했다고 해석했다. 특히 국내 주식시장 활성화를 겨냥한 일부 세제 구조 변화가 위험자산 선호를 자극할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됐다.
‘스텔스 증세’와 상징적 조치
주피터 애셋 매니지먼트의 투자운용역 팀 서비스는 “재무장관 레이철 리브스는 스텔스 증세와 부·부동산을 겨냥한 상징적 조치를 택했으며, 새로운 기업 증세의 인플레이션 유발 효과는 피해 갔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스텔스 증세란 명목 세율 인상 대신 공제·한도 축소, 구간조정 등으로 실질 세부담을 서서히 높이는 방식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급여희생 방식의 연금 불입에 대한 세제 혜택이 축소되고, 배당소득·부동산소득·저축소득에 대한 과세가 인상된다. OBR에 따르면 이러한 조합은 총 70억 파운드의 세수를 더 거둘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ISA(개인저축계좌)의 연간 비과세 한도는 2027년부터 65세 미만에게 2만 파운드에서 1만2천 파운드로 낮아진다. 정부는 저축자들이 세제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 영국 주식시장 투자로 눈을 돌리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조치의 의도는 명확하다. 저축을 ‘현금성’에 묶어두기보다, 영국 자본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을 촉진해 성장의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는 해석이 시장에서 나온다.
다만 일부에서는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자 문화가 덜 자리 잡은 영국의 특성상, 정책 유인에도 체감 전환에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신중론을 제시한다.
머니 매니저 주가 상승…그러나 ‘문화’가 변수
정책 신호에 따라 자산운용사·플랫폼의 수혜 기대가 부각됐다. 세제 혜택을 유지하려는 저축자들의 투자 전환이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 속에, 세인트 제임스 플레이스(St James’s Place) 주가는 5.3%, 애버딘(Aberdeen)은 2.6%, AJ 벨(AJ Bell)은 3.2% 상승했다. 파생·트레이딩 플랫폼인 IG 그룹(IG Group)은 10.3% 급등했다. 업계는 “정책 방향성 자체는 운용업계에 우호적일 수 있으나, 투자 확산의 속도는 영국 투자 문화의 성숙도가 좌우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한편 새로운 세금에는 가치 200만 파운드 초과 주택에 대한 과세 도입도 포함돼 있다. 다수의 웰스 매니지먼트 기업은 이러한 부동산세 성격의 조치가 실제 시장에 안착해 완전한 효과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블릭 로텐버그(Blick Rothenberg)의 짐 브라운은 “많은 투자 의사결정이 연기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연금 저축자에 ‘직격탄’: 급여희생 혜택 축소
가장 논란이 큰 대목은 2029년부터 급여희생 방식 연금 불입에 대한 세제 혜택이 줄어드는 것이다. OBR는 이 조치가 2029/30 회계연도에 47억 파운드의 세수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는 시장의 예상보다 큰 규모다. 급여희생은 근로자가 세전 급여 일부를 연금으로 전환해 불입하는 제도이며, 그만큼 근로자와 사용자 모두 해당 금액에 대해 일부 세금과 사회보험 부담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새 예산안에 따르면, 이러한 혜택은 연간 2,000파운드를 초과하는 불입분부터는 적용되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더 많이 불입하는 고소득 전문직·임원에게 타격이 크다. XPS의 최고투자책임자 시메온 윌리스는 “저축을 억제하는 어떠한 조치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시행까지의 시차도 쟁점이다. 전 연금장관이자 레인 클라크 & 피콕(Lane Clark & Peacock) 파트너인 스티브 웹은 “준비 기간이 3년이라는 점은 놀랍고, 정부가 계획한 만큼 세수를 거두지 못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급여희생을 되감는 작업은 복잡하다”며, 일부 최고연봉자들이 명목급여를 낮추고 사용자 전액 연금 부담을 선택해 제도의 빈틈을 활용할 가능성을 거론했다.
스티브 웹: “3년을 준비하도록 두는 건 믿기 어렵다. 그리고 정부는 그 돈을 받지 못할 것이다… 급여희생을 되짚어 푸는 일은 지저분하다.”
ISA 한도 축소와 과세 강화의 파급효과
ISA의 연간 비과세 한도를 2만 파운드에서 1만2천 파운드로 줄이는 조치는, 현금성 예금 중심의 저축보다 투자형 ISA로의 이동을 촉진할 수 있다. 정부는 런던 증시 유동성과 가계의 투자 참여를 동시에 높이는 투트랙 효과를 기대한다. 반면 낮아진 한도는 고액 저축자일수록 체감 부담이 크며, 배당·저축·부동산소득 과세 강화와 결합될 경우 총세부담은 더 커진다.
이와 함께 2백만 파운드 초과 주택 과세는 고가 부동산 보유자에게 실질적 비용 증가를 의미한다. 웰스 매니지먼트 업계는 부동산 시장의 거래 지연과 가격 재평가를 동반한 전환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블릭 로텐버그의 브라운은 “연기된 의사결정”이 증가할 것이라며 자본배분 지연을 우려했다.
시장 반응: 재정 신뢰도는 플러스, 가계엔 긴축
예산안 발표 직후 영국 국채와 주식시장은 모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시장은 증세를 통한 재정 건전성 확보를 신뢰 신호로 해석했으며, 특히 ISA 구조조정이 국내 주식 수요를 창출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다만 이는 동시에 가계에 민간부문 긴축으로 작용한다. 세후 가처분소득이 줄면, 중장기적으로 소비와 저축의 구성이 재조정되는 과정에서 성장 경로가 변동성을 겪을 수 있다.
시장 내부에서는 “단기 1차 반응은 신뢰 회복에 따른 위험자산 선호 확대지만, 정책의 미세설계와 실행 과정에서의 마찰이 가시화될 경우 재차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급여희생 제도의 후퇴가 기업 보상정책과 퇴직연금 설계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상당할 수 있어, 대기업·전문직 중심의 보상 구조 재편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핵심 용어 해설
급여희생(salary sacrifice): 근로자가 세전 급여 일부를 현금 대신 연금 불입 등 복리후생으로 전환하는 제도다. 전환된 금액에 대해 근로자와 사용자 모두 일부 세금 및 사회보험 부담을 회피하거나 경감할 수 있다. 이번 예산안은 연간 2,000파운드 초과분부터 이러한 혜택을 제한한다.
ISA(개인저축계좌): 이자·배당·자본이득에 비과세 혜택을 주는 영국의 대표적 개인저축 계좌다. 2027년부터 65세 미만의 연간 비과세 한도가 2만 파운드 → 1만2천 파운드로 낮아진다.
OBR(영국 예산책임국): 재정·경제 전망을 독립적으로 산출하는 공공기관이다. 이번에 총 공공부문 수입 1.5조 파운드, 세부담/ GDP 42.4% 전망을 제시했다.
실무적 체크포인트
첫째, 연금 불입 전략 재점검이 필요하다. 2029년 시행 전까지 고소득자는 연 2,000파운드 초과분의 세제효율 저하를 감안해, 보상 구조(현금 vs. 연금)와 불입 타이밍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둘째, ISA 한도 축소로 인해 자산배분의 우선순위가 바뀔 수 있다. 현금성 저축에서 투자형으로의 전환 강도를 높이며, 비과세 혜택을 최대한 활용하는 순서·상품 선택이 중요해진다.
셋째, 부동산의 경우 200만 파운드 초과 주택 보유자는 추가 세금을 고려해 보유·거래·증여/상속 의사결정 타이밍을 재검토해야 한다. 웰스 전략 차원에서 현금흐름과 세후 수익률을 정교하게 재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종합 평가
이번 영국 예산은 재정 신뢰 회복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스텔스 증세와 상징적 과세를 조합했다. 시장 신뢰는 얻었지만, 가계와 고소득 전문직·자산가에는 뚜렷한 비용을 전가했다. 저축·투자 생태계를 현금성에서 자본시장으로 이동시키려는 정책 설계는 영국 증시에 중기적 우호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급여희생 제도 후퇴의 복잡성, ISA 한도 축소에 따른 체감 부담, 부동산 과세의 점진적 파급 등은 정책의 실행 리스크로 남는다. 결과적으로 재정 신뢰의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가 향후 정치·경제적 논쟁의 중심이 될 전망이다.
환율 참고: 1달러 = 0.7568파운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