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재무장관 레이철 리브스가 수요일(현지시간) 발표할 예산안에서 수십억~수백억 파운드 규모의 추가 증세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이번 조치는 채권 투자자들의 신뢰와 복지 지출 확대를 요구하는 여당 의원들의 기대 사이에서 리브스의 재정 운용 신뢰도를 동시에 시험대에 올릴 전망이다.
2025년 11월 25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리브스는 불과 1년여 전 400억 파운드(약 527억 달러) 규모의 증세를 단행하며 ‘1회성’이라고 약속했지만, 영국 성장 전망의 하향과 부채비용 상승이라는 이중 압력으로 인해 다시 세수 확충 대책을 꺼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리브스는 화요일 사전 배포한 연설문 발췌에서 “나는 영국을 긴축으로 되돌리지 않을 것이며, 무모한 차입으로 공공지출 통제를 잃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생활비 부담 완화, 병원 대기시간 단축, 국가부채 감소를 위해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공공재정 정상화, 이번 예산으로 가능한가
경제학자들은 리브스가 영국 의회에서 GMT 기준 12시 30분경 연례 예산연설을 할 때 200억~300억 파운드 규모의 증세를 제시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완만한 성장과 국방비 증가부터 고령화 비용까지 누적되는 재정수요를 감안할 때, 이 정도로는 재정 균형을 맞추기에 부족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영국은 올해 G7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이지만, 1.3%라는 수치는 2007~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평균 2.5% 성장에 한참 못 미친다.
에버코어의 크리슈나 구하와 마르코 카시라기 애널리스트는 “우리의 핵심 우려는 이번 예산이 향후 증세 불확실성이 투자와 성장에 드리우는 부정적 영향을 해소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두 사람은 아울러, 모호한 예산은 리브스의 직무 장악력뿐 아니라 키어 스타머 총리에 대한 회의론까지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타머는 2024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대승을 거둔 뒤에도 여론조사에서 고전하고 있다.
리브스는 작년 첫 예산에서 브렉시트, 코로나19 팬데믹, 그리고 2022년 리즈 트러스 전 총리의 이른바 ‘미니 예산’ 사태가 남긴 충격 이후 재정의 안정을 회복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예산과 함께 발표될 정부 재정감시기구의 전망이 크게 하향되면서 계획이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영국 예산책임처(OBR)는 그간 생산성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추정을 제시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와 함께 차입비용이 예상보다 높게 굳어지면서, 리브스가 2030년까지 일상적 지출을 세입으로 충당한다는 목표 달성에서 궤도 이탈 위험이 커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를 피하려면 또 한 번의 아픈 선택이 불가피할 수 있다.
구체적 증세 방안으로는 소득세 과표·공제 기준(임계값) 동결 연장을 통해 더 많은 근로자를 과세대상에 편입하고, 상위 세율 적용자를 늘리는 조치가 거론된다. 이는 리브스가 작년에 가계 타격을 이유로 하지 않겠다고 했던 정책이지만, 여건상 번복 가능성이 커졌다. 이 밖에 고가 주택 보유자와 도박 이용자에 대한 과세 강화, 전기차 운전자 대상 주행거리 기반 과금, 연금세제 혜택 축소 등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브스는 또한 재정규칙을 지키기 위한 헤드룸(headroom), 즉 여유폭을 늘리려 한다. 작년에는 99억 파운드에 불과해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로이터가 채권 딜러들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올해는 이를 약 170억 파운드에 가깝게 소폭 확대하려는 시도가 예상된다.
베렌베르크의 경제학자 앤드루 위샤트는 “정부가 재정 신뢰성을 유지하려면 향후 2년 안에 재정적자를 유의미하게 축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세수를 조기에 늘리는 설득력 있는 증세 패키지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리브스의 고민을 더하는 요인으로 여당 중도좌파 성향의 노동당 내부에서 가족 복지 급여의 ‘두 자녀 상한’을 폐지하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해당 조치의 해제가 정부지출을 연간 약 30억 파운드 늘릴 수 있다는 점은, 재정 균형 목표에 추가 부담을 준다.
시장 신뢰의 분기점: 설계·전망의 신빙성
마무드 프라단 전 IMF 유럽 담당 부국장은 이번 예산의 근간이 되는 OBR의 재정전망이 얼마나 엄정한지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현재 아문디 인베스트먼트 인스티튜트의 거시경제 연구책임자인 그는
“이번 예산의 가장 큰 우려는 전망의 신뢰성이다”라고 말했다.
정부 소식통들은 이달 초, OBR가 제시한 예상보다 나은 전망 덕분에 리브스가 유권자와의 약속을 어기는 소득세율 인상 계획을 철회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프라단은
“시장이 이 시나리오를 신뢰하지 않으면, 우리는 국채금리(길트 수익률) 상승 → 부채비용 증가 → 이자부담 확대 → 국가채무 상환비용 가중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있다”
고 경고했다.
실제로 영국의 차입비용은 G7 중 최고 수준이며, 2022년 단명했던 트러스 정부 시기 급등한 이후 독일과 프랑스 대비 스프레드가 지속적으로 좁혀지지 못하고 있다. 현재 영국 10년물 국채금리는 4.53%, 독일은 2.67%, 프랑스는 3.41% 수준이다.
환율: 1달러 = 0.7591파운드*
핵심 개념 해설: 용어를 알면 예산이 보인다
OBR(영국 예산책임처): 독립 재정감시기관으로, 성장률·세수·지출 등 중기 전망을 제시하며 예산의 기초자료를 제공한다. 전망의 보수성/낙관성은 채권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길트(gilt): 영국 국채의 통칭이다. 길트 수익률 상승은 정부의 차입비용 증가를 뜻하며, 다른 조건이 같다면 재정 여유를 줄인다.
헤드룸(headroom): 정부가 정한 재정규칙(예: 특정 연도까지 적자·부채 비율 요건)을 지키기 위해 확보한 여유 재정공간이다. 수치가 작을수록 예상치 못한 충격에 취약해 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다.
임계값 동결(threshold freeze): 소득세 과세구간과 공제한도를 물가상승률만큼 올리지 않는 정책이다. 명목임금이 오르면 더 많은 납세자가 자동으로 상위세율 구간으로 이동하는 숨은 증세 효과가 발생한다.
두 자녀 상한(two-child cap): 가족수당 등 일부 복지혜택을 자녀 두 명까지로 제한하는 제도다. 완화 또는 폐지는 취약계층 지원 강화와 재정지출 증가 사이의 정책 선택을 요구한다.
미니 예산(mini-budget): 2022년 리즈 트러스 전 총리가 단행한 대규모 감세 패키지를 가리킨다. 시장 신뢰가 붕괴해 영국 국채금리와 파운드화가 급변, 이후 영국 재정정책의 신뢰 회복이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전문가 시각: 이번 예산에서 시장이 볼 체크포인트
첫째, 증세의 즉시성이다. 세수가 단기에 유입되는 구조인지가 국채 공급 압력(발행 규모)과 직결된다. 둘째, 헤드룸의 크기와 질이다. 여유폭이 늘어도 낙관적 가정에 의존한다면 시장은 신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셋째, 지출 통제의 설계다. 병원 대기시간 단축 등 공공서비스 개선을 약속하면서도 총지출 증가를 제한할 방법이 제시되어야 한다. 넷째, 정치적 실행가능성이다. 노동당 내부의 두 자녀 상한 논쟁과 같은 민감 이슈는 예산 통과 이후에도 추가 지출을 유발할 수 있어, 중기 재정경로의 불확실성을 키운다.
요컨대 투자자들은 세수 확대의 확실성, 지출의 현실성, 전망의 신빙성이라는 ‘3대 축’에 주목하고 있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설득력이 약하면, 로이터가 전한 대로 영국-독일·프랑스 금리 스프레드의 지속 축소는 더 늦춰질 수 있다. 반대로 이 세 가지가 균형을 이루면, 리브스가 공언한 재정 안정 회복과 성장 가속의 두 마리 토끼에 접근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