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영국 재무장관 레이첼 리브스(Rachel Reeves)가 공공지출 분야의 ‘긴축(austerity)’ 회귀를 피하기 위해 광범위한 증세 가능성을 열어두며, 두 번째 연례 예산안을 ‘어려운 선택’의 예산으로 규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공공지출을 보호하는 동시에 영국의 부채를 줄이기 위해 재정 선택의 폭을 넓히겠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2025년 11월 4일,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예산안 발표를 불과 3주 앞둔 시점에 재무장관이 이례적으로 연설을 갖고 경제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리브스 장관은 높은 부채 수준, 낮은 생산성, 끈질긴 인플레이션이 맞물린 어려운 경제 여건을 지적하며, 이러한 배경이 다가오는 예산에서 불가피한 선택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11월 26일로 예정된 예산안에서 “모두가 기여해야 하는” 고통 분담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이는 일자리 안정과, 그가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규정한 보건(NHS)과 교육 부문을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EASY ANSWERS ARE ‘IRRESPONSIBLE’
리브스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세입과 세출에 관한 결정을 내리면서, 높은 인플레이션과 금리로부터 가계를 보호하고, 공공서비스가 다시 긴축으로 회귀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할 것이다.”
그는 이어 단기 처방의 유혹을 경계했다.
“쉬운 해답을 바라는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정치인들은 장기적 경제 전략 대신 단기 처방에 예산을 쏟아붓는 데 중독되어 왔다. 그때도 무책임했고, 지금도 계속해서 쉬운 해답을 밀어붙이는 것은 역시 무책임하다.”
이 같은 발언은 경제 상황 악화의 책임을 이전 보수당 정부에 돌리는 한편, 노동당 정부가 총선 공약으로 내세운 소득세·부가가치세(VAT)·국민보험(National Insurance) 동결 원칙을 훼손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해석됐다.
리졸루션 파운데이션(Resolution Foundation) 싱크탱크는, 리브스 장관의 전 직속 상사였던 토어스텐 벨(Torsten Bell)이 현재 재무부 장관 보좌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정부가 약 260억 파운드(350억 달러) 규모의 증세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리브스 장관은 증세 준비 여부에 대한 직접적인 질의에는 답을 피하며, 이달 말 예산안에서 정책 구체안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첫 예산에서 세입 확충을 통해 “경제의 기초를 다졌다”고 평가했지만, 그 이후 경제 환경이 악화했다고 덧붙였다.
INCREASING THE FISCAL BUFFER
리브스 장관은 재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준비해 둔 재정 버퍼(fiscal buffer)를 확대할 의향을 다시금 내비쳤다.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그는 첫 예산에서 400억 파운드 규모의 증세를 단행했고, 2029년까지 일상적(경상) 지출을 세입으로 균형 맞추겠다는 목표에 대비해 확보했던 99억 파운드의 여유재원(headroom)을 사실상 소진한 상태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따라서 재정 버퍼 재구축에는 추가 증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리브스 장관은 “올바른 결정을 내린다면, 글로벌 변동성을 견딜 수 있는 보다 탄탄한 공공재정을 구축하고, 민간 부문의 투자 확신을 높이며, 위기 시 정부의 기동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공서비스 지출을 삭감하는 방식의 ‘긴축’을 재현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는 한편, G7 중 가장 높은 차입 비용에 직면한 영국의 현실을 감안해 정부 부채 비율을 낮추는 목표는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재정 규칙(fiscal rules)을 준수하겠다고 재확인하며, 규칙이 훼손될 경우 시장이 정부의 차입 비용을 더 가파르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규칙을 우회해도 무방하다”, “더 빌려도 문제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 리브스 장관은 영국 정부 부채는 금융시장에서 판매되는 채권이라는 기본 사실 자체가 정부의 선택지를 제약한다고 지적했다.
MUFG 런던의 헨리 쿡(Henry Cook) 유럽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연설을 시장이 “올바른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녀는 결정의 초점을 인플레이션 둔화 유지—즉 금리 인하의 전제조건—에 맞추겠다고 했고, 재정 규칙 준수에 대한 철통 같은 약속을 강조했다. 다만 세부 내용이 관건이 될 것이다.”
그는 또 “정부가 복지국가(welfare state) 개혁에 전념하겠다고 밝힌 점도 주목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핵심 용어 설명
· 긴축(Austerity):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공공지출을 대폭 삭감하는 정책을 뜻한다. 영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보수당 정부 아래에서 광범위한 긴축을 시행해 공공서비스 부담이 크게 증가했다는 평가가 있다.
· 재정 규칙(Fiscal Rules): 부채·적자 경로에 대한 정부의 자가 규율로, 영국은 중기적 시계에서 경상지출을 세입으로 균형시키고, 부채비율을 하향 안정화시키겠다는 기준을 둔다. 이를 어기면 국채 금리 급등 등 시장 불안을 유발할 수 있다.
· 재정 버퍼(Fiscal Buffer): 예상 밖의 충격에도 재정 목표를 유지하기 위한 여유재원(headroom)을 의미한다. 버퍼가 클수록 정부는 정책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
· 국민보험(National Insurance): 영국의 사회보장 성격의 보험료로, 근로소득 등에 부과되어 NHS 재원 등으로 쓰인다. 실질적 부담 측면에서 소득세와 유사하게 인식된다.
· G7 차입비용: 영국 국채 수익률이 다른 선진국 대비 높을 때, 정부의 이자부담이 커지고 재정 지속가능성에 부담이 된다.
맥락과 함의: 무엇이 예고됐나
첫째, 리브스 장관의 메시지는 증세가 불가피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한다. 이미 400억 파운드 규모의 세입 확충 후에도 99억 파운드 버퍼 소진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260억 파운드 추가 증세 전망은 재정 안정을 위한 최소치로 읽힌다.
둘째, 재정 규칙 준수와 긴축 회피라는 두 축은 증세 우선 접근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는 공공지출을 지키면서도 부채 경로를 개선하려면 세입 측 조정이 현실적 선택지라는 점을 반영한다.
셋째, 복지국가 개혁 언급은 지출 효율화를 향한 구조적 논의가 병행될 것임을 시사한다. 다만 이번 발언만으로 개혁의 구체 스펙은 드러나지 않았으며, 세부 내용은 예산안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넷째, 시장 친화적 신호인 “규칙 준수·인플레 둔화 우선” 메시지는 국채시장 신뢰 확보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예산 디테일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변동성이 확대될 소지가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연설은 세입 확충을 통한 재정 재정렬, 공공서비스 방어, 시장 신뢰 유지라는 세 가지 목표를 명확히 했다. 11월 26일 예산안에서 제시될 구체적 증세 범위와 복지 개혁의 윤곽이 향후 영국의 성장·물가·금리 경로에 미칠 파급효과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