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이사인 리사 쿠크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해임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 항소법원에 긴급 구제를 거부해 달라고 요청했다.
2025년 9월 13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쿠크 측 변호인단은 트럼프 행정부가 제기한 긴급 ‘스테이(stay)’※ 요청을 기각해 달라는 의견서를 토요일 법원에 제출했다. 이 스테이는 연방지방법원의 판결 효력을 일시 정지해 트럼프 대통령이 쿠크 이사를 즉각 해임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려는 절차다.
쿠크 측은 행정부가 그녀를 해임할 ‘정당한 사유’(for cause)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며, 대통령이 근거 없이 연준 이사를 해임할 경우 중앙은행 독립성 붕괴와 이에 따른 경제적 위험이 막대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이 행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연준 독립성을 더 이상 보장하지 못한다는 첫 신호가 될 것이다. 대통령이 근거가 빈약한 명분으로 다른 이사들까지 해임할 수 있게 되고, 결국 연준 독립성의 시대가 막을 내릴 것이다. 이는 미국 경제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 쿠크 측 제출서
항소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일요일 동부시간 오후 3시까지 쿠크 측 주장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기한을 부여했다.
이번 분쟁의 핵심은 9월 둘째 주 화·수요일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가 연준 이사회 구성을 흔들어 금리결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에 있다. 동시에 상원 공화당은 공석인 이사직에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스티븐 미란의 인준 절차를 빠르면 월요일 처리하려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쿠크 이사가 2021년 7월 두 채의 부동산을 동시에 ‘1차 거주지’로 신고해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와 초기 부담금을 부당하게 낮췄다며 ‘모기지 사기’ 혐의를 제기했다. 쿠크는 2022년 이사회 합류 전이던 당시 이 같은 신고를 했으며, 일반적으로 1차 거주지로 인정받으면 대출 금리와 다운페이먼트가 더 유리하다.
쿠크 이사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행정부의 해임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해 직접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화요일 지아 콥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연준 이사는 재임 중 발생한 위법‧비위행위가 있을 때만 해임할 수 있다’고 판단하며 행정부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쿠크가 이사회에 합류한 시점은 2022년으로, 의혹 제기 시점보다 뒤였다.
그러나 행정부는 즉각 항소에 돌입하며 월요일까지 하급심 판결을 뒤집는 긴급 결정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트럼프 측은 “의혹이 이사 취임 전이라 해도 신뢰성(trustworthiness) 문제를 야기한다”며 쿠크가 금리와 경제를 책임질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만약 항소심에서 행정부가 승리하면, 쿠크는 소송이 최종 종결될 때까지 직무에서 배제돼 다음 주 FOMC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다. 반대로 쿠크가 승리할 경우, 행정부는 연방대법원에 긴급 상고를 시도할 수 있다.
연준 금리 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말 이후 지속적으로 연준에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해왔다. 연준은 ‘관세정책 변동성에 따른 인플레이션 재점화 가능성’ 때문에 금리를 동결해 왔다.
지난달 제롬 파월 의장은 고용 둔화 우려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조만간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시장과 경제학자들은 연준이 기준금리를 0.25%p 내려 약 4.1% 수준으로 조정할 가능성을 가장 유력하게 보고 있다.
기준금리가 내려가면 시간이 지나며 주택담보대출, 자동차 할부, 기업대출 금리가 동반 하락한다. 이미 시장금리 일부는 연준의 인하를 선반영해 떨어지고 있다.
※ 용어 설명 및 추가 분석
※ 스테이(stay)는 하급심 판결의 집행이나 효력을 일정 기간 정지시키는 법적 절차를 뜻한다. 주로 상급심이 본안 판단을 할 때까지 기존 판결이 즉시 집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된다.
연준 독립성의 의미: 중앙은행이 정치권의 단기 이해가 아닌 물가 안정과 고용 극대화라는 장기적 목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다. 역사적으로 독립성이 훼손되면 인플레이션 급등이나 금융 불안이 동시에 나타난 사례가 많다.
전문가 시각: 만약 대통령이 ‘재임 전 사유’만으로 연준 이사를 해임할 수 있다면, 차기 정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반복돼 통화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크게 낮아질 수 있다. 이는 국채금리 변동성 확대, 달러화 가치 급락 등 시장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스티븐 미란 후보가 공석을 채우게 될 경우, 연준 내 매파 성향이 강화될지 여부가 시장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과거 학계와 정책 자문 경력에서 금리 인상 선호 입장을 표명한 바 있어, 단기적으로는 금리 인하 드라이브가 약화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독립 규제기관 인사의 신분 보장 범위를 시험하는 헌법적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대법원까지 이어질 경우, 향후 연준뿐 아니라 증권거래위원회(SEC)·연방통신위원회(FCC) 등 다른 독립기관에도 직접적인 선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