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은행 자본 규제 대대적 재정비 착수…파월 “안전성과 효율성 조화”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종일 콘퍼런스가 은행 규제의 대대적인 재편을 위한 실무 논의를 본격화했다. 규제 당국자, 대형 은행 임원, 업계 변호사, 학계 전문가 등 수백여 명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고강도 규제의 개선·완화 방향을 놓고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2025년 7월 23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회의는 연준 본부(워싱턴 이클립스 빌딩)에서 진행됐으며, 결과물에 따라 대형 은행들은 수십억 달러의 자본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들은 규제 완화가 이뤄지면 대출 여력을 확대해 실물경제 지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회의에 참석한 일부 학계 인사들은 “완화 폭이 지나치면 다음 충격에 대한 복원력이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개회사에서 “모든 규제 조각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만 안전하고 효율적인 은행 시스템이 유지된다”며 “이는 결국 국민 전체의 이익으로 귀결된다”고 강조했다.

행사 추진 배경
이 행사는 지난 6월 연준 부의장(은행 감독 담당) 자리에 오른 미셸 보우먼의 주도로 마련됐다. 보우먼 부의장은 2018년부터 연준 이사로 재임해 왔으며, 트럼프 전 대통령 지명 이후 ‘규제 재검토’라는 야심 찬 의제를 전면에 내세워 왔다. 그는 “17년 전 위기 직후 설계된 규제를 껍데기째 유지할 이유는 없다”며 “시대 변화에 맞춰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입장을 반복해왔다.

핵심 논의 주제
이번 콘퍼런스의 토론 안건은 △레버리지 비율 요건 △글로벌 대형은행 추가 자본할증(G-SIB 서차지) △연례 스트레스 테스트 △시장 리스크 규제 등 연준이 감독하는 거의 모든 자본 규제를 망라했다. 특히 위기 이후 17년간 누적된 규정이 ‘과도하게 복잡하고 구식’이라는 지적이 동시에 제기됐다.

대형 은행(예: JP모건·뱅크오브아메리카·골드만삭스)은 규제 부담 탓에 자본을 묶어 두느라 수익 창출이 제한되고, 그 결과 금융활동이 비(非)은행권으로 이동한다고 호소해 왔다. 골드만삭스의 최고회계책임자 시에라 프레드먼은 “경제 성장건전성 확보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며 “요건 완화가 기업·가계 대출을 살리고 더 나은 금융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Basel III Endgame 논란
은행권은 지난해 ‘바젤Ⅲ 엔드게임(Basel III endgame)’으로 불린 위험가중자산(RWA) 산정 방식 개편을 사실상 무산시키며 한 차례 승리를 거둔 바 있다. 당시 개편안은 대형 은행의 최소 자기자본 비율을 크게 끌어올릴 전망이었지만, 마이클 바 당시 부의장이 추진한 계획은 업계의 강력한 로비로 사실상 좌초됐다. 이번 회의에서도 “새로운 바젤 프레임워크를 적용하되 자본 증가 효과를 최소화하는 절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용어 한눈에 보기
레버리지 비율은 총익스포저 대비 자본 총량을 의미하며, 위험가중치를 고려하지 않은 가장 단순한 안전판이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극단적 경제 충격을 가정해 은행 재무제표를 시뮬레이션하는 제도다. 바젤Ⅲ는 국제결제은행(BIS) 산하 바젤위원회가 제정한 글로벌 은행 건전성 규제이며, ‘엔드게임’은 이를 마무리 짓는 최종 단계 개혁안으로 불린다.

전문가 시각
필자가 취재한 복수의 규제 컨설턴트는 “대형 은행이 수십억 달러를 추가로 벌충해야 하는 기존안이 폐기된 만큼, 신규 절충안은 자본지표를 비슷한 수준에서 동결하거나 소폭 감축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반면 일부 금융안정성 연구자들은 “2023년 지역은행 파산 사례처럼, 예상치 못한 충격이 재발할 때 대마불사 신화가 다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회의에서 구체적 규정 문안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참석자들은 연준 이사회가 2025년 말까지 세부 개정안 초안을 공개하고, 2026년 중 최종 규칙을 발효시키는 ‘야심찬 로드맵’을 이미 내부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 영향
규제 완화가 현실화될 경우, 대형 은행 주가는 단기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자본 비용 감소는 주주환원 확대(배당·자사주매입)와 영업 레버리지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전체 시스템 리스크가 증가하면 장기 투자자들은 프리미엄을 요구할 여지가 커지므로, 변동성 역시 확대될 수 있다는 경계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권 밖에서도 이번 개정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핀테크·사모펀드·헤지펀드 등 비은행권은 “규제가 은행 중심으로 완화되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실제로 2008년 이후 강화된 규제가 자산운용사·대체투자사로 자본을 유도해 왔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향후 과제
연준은 이번 회의에서 도출된 의견을 바탕으로 ①스트레스 테스트 시나리오 단순화 ②기존 레버리지 비율 대신 위험 기반 비율 중심 재편 ③글로벌 시스템 중요 은행(G-SIB) 서차지 계량화 등을 검토 중이다. 관계자는 “30일~60일 내로 이해관계자 추가 의견 수렴을 거쳐 구체적 변경 항목을 가다듬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결국 관건은 경제 성장 촉진이라는 명분과 금융 시스템 안정이라는 가치 사이에서 어느 지점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부의장 보우먼은 “안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규제를 현대화할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학계·소비자단체는 “모든 규제 완화는 미래 충격의 비용을 현재로 이연시키는 행위”라고 맞섰다.

연준은 이날 회의 자료와 전체 녹화를 곧 웹사이트에 게시할 예정이며, 공식 기록은 연방관보를 통해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