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Nvidia)가 AI 추론(인퍼런스) 칩 스타트업 그록(Groq)과 기술 라이선스 합의를 체결하고 그록의 핵심 임원을 영입하기로 했다고 그록이 24일(현지시간) 블로그를 통해 밝혔다. 그록은 설립자 조나단 로스(Jonathan Ross)이 구글의 AI 칩 프로그램 초기 작업에 참여한 인물이라고 설명했으며, 그록의 사장 서니 매드라(Sunny Madra)와 일부 엔지니어링 인력도 엔비디아에 합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25년 12월 24일,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CNBC는 엔비디아가 그록을 현금 20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엔비디아와 그록 측은 CNBC 보도에 대해 즉각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록은 블로그에서 향후에도 독립 회사로 운영되며 사이먼 에드워즈(Simon Edwards)가 CEO직을 유지하고 클라우드 사업도 계속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록은 엔비디아와의 기술 사용 계약이 비독점적(non-exclusive) 라이선스라고 명시했다.
그록은 이미 학습이 완료된 인공지능(AI) 모델이 사용자 요청에 응답하는 인퍼런스(Inference) 분야를 전문으로 한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가 대규모 모델 학습(트레이닝) 분야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인퍼런스 분야에서는 AMD(Advanced Micro Devices) 등 전통적 경쟁자와 그록, Cerebras Systems 같은 스타트업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엔비디아 측과 가까운 한 인사는 라이선스 합의를 확인해 주었다.
그록은 자체적으로 외부 고대역폭 메모리(HBM, High Bandwidth Memory)를 사용하지 않는 설계를 채택한 업체 중 하나다. 이 접근법은 칩 내부에 SRAM 형태의 온칩 메모리를 활용해 AI 챗봇과 같은 모델과의 상호작용 속도를 높이는 장점이 있으나,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모델의 최대 크기를 제한하는 단점도 있다. 그록의 주된 경쟁사는 동일한 접근법을 쓰는 Cerebras Systems이다.
그록은 지난 1년간 가치가 크게 상승했다. 회사 가치는 지난해 8월 28억 달러에서 69억 달러로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이는 지난해 9월 실시한 7억5천만 달러 규모의 자금 조달 라운드 이후의 평가액이라고 블로그는 전했다.
“비독점 라이선스 구조가 경쟁의 외형을 유지할 수는 있지만, 그록의 경영진과 핵심 기술 인력이 엔비디아로 이동하면 실질적 경쟁에는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투자은행 Bernstein의 애널리스트 스테이시 라스곤(Stacy Rasgon)은 고객 메모에서 지적했다. 라스곤은 이 거래의 주요 리스크로 반독점(antitrust) 문제를 거론했다.
최근 몇 년간 빅테크 기업들은 유사한 방식으로 스타트업의 기술과 인력을 확보하는 거래를 진행해 왔다.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는 6억5천만 달러 규모의 거래로 AI 분야 핵심 인력을 확보했고, 메타는 스케일 AI(Scale AI)의 최고경영자를 영입하기 위해 150억 달러를 지불하는 등 스타트업 전부를 인수하지 않고도 인력·기술을 흡수하는 사례가 늘었다. 아마존은 Adept AI 창업자들을 선발해 영입했고, 엔비디아도 올해 유사한 거래를 진행한 바 있다. 이러한 거래들은 규제 당국의 검토를 받았으나 아직 되돌려진 사례는 없다.
이번 발표에서 주목할 점은 엔비디아가 비독점 라이선스를 택했다는 사실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비독점 구조가 표면상 경쟁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핵심 인력의 이동은 기술 우위의 이전을 의미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Bernstein은 엔비디아 CEO 젠슨 황(Jensen Huang)과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가 미국 주요 기술 기업 중 강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기술적 배경 설명
인공지능 분야에서 흔히 구분되는 두 가지 작업은 트레이닝(Training)과 인퍼런스(Inference)이다. 트레이닝은 대규모 데이터로 모델을 학습시키는 과정으로, 막대한 연산량과 고대역폭 메모리가 요구된다. 반면 인퍼런스는 이미 학습된 모델이 사용자 입력에 응답하는 과정으로, 지연시간(latency)과 처리 속도가 중요한 요소다. 그록과 같이 온칩 SRAM을 쓰는 설계는 인퍼런스 지연을 크게 줄여 실시간 응답 성능을 높이지만, 외부 HBM을 쓰는 설계보다 처리 가능한 모델의 규모 면에서 제약을 받을 수 있다.
경쟁 구도와 시장 함의
그록과 같은 스타트업은 메모리 병목을 피하면서도 인퍼런스 성능을 높이는 설계를 통해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사업자에게 매력적인 옵션을 제시하고 있다. Cerebras는 유사한 접근법을 사용하며 중동 지역 등에서 대형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들 업체의 등장은 엔비디아의 인퍼런스 시장 점유율에 도전장을 내미는 한편, 트레이닝 중심의 전략을 보완할 수 있는 기술적 대안을 제공한다.
엔비디아는 2025년 주요 키노트에서 인퍼런스로의 시장 전환 시점에서 자사의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번 라이선스 합의와 핵심 인력 확보는 엔비디아가 인퍼런스 분야에서 기술적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려는 전략적 행보로 해석된다.
시장·정책적 영향 분석
금융시장과 반도체 산업에 미칠 영향은 다면적이다. 첫째, 만약 CNBC 보도대로 200억 달러 규모의 인수로 최종 확정된다면 이는 엔비디아의 대규모 현금 지출과 밸류에이션 반영으로 이어져 단기적으로는 주가 변동성을 유발할 수 있다. 둘째, 그록의 핵심 인력이 엔비디아로 이동함에 따라 인퍼런스 하드웨어 경쟁 구도가 재편되고, 경쟁사들의 기술·가격 전략에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 비독점 라이선스라는 구조는 규제 당국의 검토 포인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반독점 당국은 기술과 인재의 이동이 실질적 경쟁을 약화시키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심사를 진행할 것으로 관측된다.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와 AI 서비스 기업은 이번 거래의 결과에 따라 하드웨어 공급선 및 가격 협상에서 전략적 조정을 할 필요가 있다. 엔비디아가 인퍼런스 성능을 강화하면 일부 고객은 엔비디아 생태계에 더 강하게 의존하게 되고, 반대로 경쟁사는 비용 효율성과 특화된 솔루션으로 대응하려 할 것이다. 또한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핵심 인력의 대형기업 흡수가 투자 및 창업 유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향후 전망과 남은 쟁점
현재로서는 엔비디아-그록 간의 합의가 어떤 범위와 조건으로 최종 확정될지, 규제 당국의 심사 결과가 어떨지 불확실하다. 그록이 독립 운영을 지속하면서도 핵심 기술의 라이선스와 인력 일부가 엔비디아로 이동한다면 표면상 경쟁은 유지되는 듯 보이나, 시장의 실질적 경쟁력은 달라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와 애널리스트들은 향후 몇 주에서 몇 달간 추가 발표와 규제 반응을 주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