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엔비디아(Nvidia)의 데이터센터·게임·인공지능(AI) 사업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해외 시장 가운데 하나다. 글로벌 사진 전문 매체 라이트로켓(LightRocket)의 사진기자 Avishek Das가 촬영한 이미지Getty Images 제공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25년 7월 31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사실상 수출 재개를 허용한 H20 GPU(General Processing Unit·범용 연산장치)에 대해 베이징 당국이 새로운 보안 심사를 개시했다.
중국 국무원 산하 사이버공간관리국(CAC)은 전날(30일) 엔비디아 관계자와 만나 “중국 내 판매가 예정된 H20 칩이 국가안보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며, 백도어·취약점·원격 차단 기능 여부를 입증할 증빙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워싱턴의 규제 완화, 베이징의 역(逆)규제
올해 4월, 미국 상무부는 첨단 AI 칩의 對중국 수출을 사실상 금지했으나, H20 모델에 한해 예외를 부여했다. 하지만 CAC는 해당 칩이 “성숙한 추적·위치 파악 기술과 원격 셧다운(Shutdown) 기능을 내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AI 전문가들이 이미 엔비디아 칩에 자리 잡은 ‘트래킹(Tracking)·포지셔닝(Positioning)’ 기능을 지적했다.” — CAC 공식 성명
이는 2025년 5월 로이터통신이 보도한 빌 포스터(Bill Foster) 미 연방 하원의원의 입법 구상과도 연결된다. 포스터 의원(일리노이, 민주당·전 입자물리학자)은 고성능 AI 칩에 위치 보고 시스템을 의무화하고, 무허가 사용 시 미국 당국이 칩을 원격으로 무력화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기술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위치 추적 기능을 구현하는 하드웨어·펌웨어는 “이미 엔비디아 칩 설계에 상당 부분 반영돼 있다”고 한다. CAC는 이를 근거로 “중국 소비자·기업·정부 기관이 사용하는 H20 칩이 외국 기관의 통제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엔비디아의 대응과 시장 전망
엔비디아는 CNBC의 논평 요청에 즉각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반도체 공급망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베이징의 심사가 장기화될 경우, H20 납품 일정 자체가 하반기 이후로 밀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공급망 관점에서 보면, 엔비디아는 이번 주 TSMC(대만반도체제조)에 H20 칩셋 30만 개를 주문했다는 로이터 보도가 나왔다. 중국 내부 수요가 워낙 탄탄해, 초기 물량은 대부분 현지 인터넷·클라우드 기업에 배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CAC가 ‘추적·원격 차단’ 기능 검증을 이유로 통관 절차를 늦추거나 추가 시험·인증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중국 빅테크의 AI 학습 로드맵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장 반응 역시 엇갈린다. 일부 미국 의원들은 “규제 완화(rollback)가 베이징의 AI 능력 고도화를 부추길 것”이라 비판했고,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중국 매출이 엔비디아 전체 실적의 약 20%를 차지하는 만큼, H20 판매 재개는 주가 상승 요인”이라고 해석한다.
전문가 해설: ‘H20 GPU’와 규제 키워드
H20 GPU는 ‘Hopper’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A100·H100의 ‘다운클럭(down-clock)’ 버전으로, 대역폭·연산능력을 의도적으로 낮춰 미국 수출 규정을 통과했다. 그러나 여전히 FP8·FP16 혼합 정밀도에서 강력한 AI 학습·추론 성능을 제공한다.
‘백도어(Backdoor)’란 정식 인증을 거치지 않고 시스템에 침투할 수 있는 숨겨진 접속 경로를 의미한다. ‘원격 셧다운’ 기능은 칩 제조사나 정부가 네트워크를 통해 칩 전원을 강제로 차단하는 기술이다. 중국 당국은 바로 이 지점을 국가안보 핵심 쟁점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미국 의회는 칩 추적·위치 보고를 통해 수출통제 위반·밀수입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양국 규제 철학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규제 스파게티’에 빠질 위험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자 시각: ‘기술-안보-시장’ 3각 갈등 심화
이번 사안은 기술 경쟁과 국가안보, 그리고 글로벌 시장이라는 세 영역이 정면 충돌한 대표적 사례다. 미국은 ‘기술 우위 수성’과 ‘안보 리스크 최소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고, 중국은 ‘기술 자립’과 ‘데이터 주권’을 지키려 한다.
엔비디아는 양국 모두에 필수적인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지만, 규제 리스크가 실적 가시성(volatility)을 높이고 있다. 투자자에게도 정책 방향성을 면밀히 추적할 필요가 커졌다.
장기적으로는 칩 설계와 제조, 펌웨어 업데이트에 이르는 전체 밸류체인에서 ‘투명성’ 요구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양국 모두 독자적 AI 하드웨어 생태계를 추진하고 있어, 글로벌 IT 기업은 ‘무역 규제 준수’와 ‘시장 접근성’ 사이에서 어려운 줄타기를 계속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