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인텔 지분 50억 달러 전격 인수…PC·데이터센터 칩 공동개발로 AI 생태계 재편 예고

SAN FRANCISCO발 초대형 반도체 딜이 성사됐다. 엔비디아(Nvidia)50억 달러(약 6조7,000억 원)를 투자해 인텔(Intel) 지분을 대거 확보하고, 동시에 차세대 PC·데이터센터용 칩을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번 결정은 엔비디아가 AI 열풍의 ‘슈퍼사이클’ 중심에서 파트너십 외연을 확장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 전통 반도체 제조사 인텔에 구명줄을 던진 행보로 평가된다.

2025년 9월 18일, 로이터(Reuters) 보도에 따르면, 양사는 지분 투자와 동시에 기술 협력을 맺되, 엔비디아의 핵심 GPU1 양산 물량을 당장 인텔 파운드리로 이전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인 대만 TSMC에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TSMC의 독점 생산 구조가 유지된다는 의미다.


투자 세부 조건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주당 23.28달러에 인텔 보통주를 매입한다. 이는 전일(17일) 인텔 종가 24.90달러보다 낮지만, 지난달 미국 정부가 전략적 목적에서 인텔 지분 10%를 인수하며 지불한 주당 20.47달러보다는 높다. 거래 완료 시 엔비디아는 인텔 지분 4% 이상을 보유, 상위 주주군에 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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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투자는 수년째 실적 부진에 시달려온 인텔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실리콘밸리 탄생 신화’를 이끈 인텔은 그간 여러 회생책을 시도했으나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 지난 3월 부임한 신임 CEO 립-부 탄(Lip-Bu Tan)은 “공급 확신이 있을 때만 설비를 확충하겠다”는 ‘린(lean) 전략’을 선언해 왔다.

그러나 이번 합의에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인텔 파운드리(IF) 사업부가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를 생산하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파운드리(foundry)는 ‘반도체 수탁생산’을 의미하는 업계 용어로, 설계(IP)는 없지만 대규모 제조시설을 보유한 업체가 외부 고객의 칩을 만들어 주는 사업 모델이다. 인텔 파운드리는 삼성·TSMC 양강 체제에 도전하고 있지만, 대형 고객 없이 존속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자금 측면에서 인텔은 최근 소프트뱅크로부터 20억 달러, 미 정부로부터 57억 달러를 유치한 데 이어, 엔비디아 50억 달러까지 더해지면서 풍부한 현금 쿠션을 확보했다. 데이비드 진스너(David Zinsner) 인텔 CFO는 지난달 도이체방크 컨퍼런스에서 “차세대 14A 공정 투자 이전까지 추가 자금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스피디 링크(Speedy Links)’ — AI 성능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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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는 데이터센터용 CPU와 엔비디아 GPU를 하나의 시스템 패키지로 묶고, 엔비디아 독점 고속 인터커넥트 기술로 칩 간 통신 속도를 극대화할 계획이다. AI 학습용 서버는 다수 칩을 ‘일체형’으로 엮어야 병렬 연산 효율이 오르는데, 전송 지연(latency) 최소화가 관건이다. 현재 엔비디아는 자사 GPU와 자사 Grace CPU만 탑재한 ‘DGX’ 서버로 AI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번 합의로 인텔은 동일한 속도·대역폭 혜택을 누리는 첫 외부 파트너가 된다.

업계는 이를 AMD, 브로드컴에 대한 강력한 압박 수단으로 본다. AMD는 자체 AI 서버 ‘MI300’ 시리즈를 준비 중이며, 브로드컴은 구글 TPU 개발을 지원하는 등 칩 간 인터커넥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엔비디아-인텔 동맹이 완성되면 두 기업 모두 시장 점유율 방어가 쉽지 않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소비자용 PC 시장에서도 변화가 예상된다. 엔비디아는 인텔을 위해 맞춤형 GPU를 설계해 제공하고, 인텔은 이를 자사 x86 CPU와 패키징해 초고속 인터커넥트가 적용된 노트북·데스크톱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는 AMD 라이젠-RDNA 조합을 겨냥한 포석으로 읽힌다.

물론 x86 아키텍처가 ARM 기반 칩에 밀려 상대적 약세라는 평가도 있으나, 인텔은 여전히 데이터센터·PC 모두 과반 이상의 시장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역사적 협력은 엔비디아의 AI·가속 컴퓨팅 스택과 인텔의 CPU 및 방대한 x86 생태계를 긴밀히 융합한다. 두 거인의 만남은 차세대 컴퓨팅 시대의 토대를 닦을 것이다.” —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CEO

양사는 구체적인 로열티·라이선스 조건 없이 칩을 교환하는 순수 상업적 협력이라고 강조했다. 또 “복수 세대에 걸친 제품군을 함께 설계·출시할 계획”이라고만 밝히고, 첫 공동 제품 출시 시점은 공개하지 않았다.


배경 설명: CPU·GPU·파운드리·x86·Arm

CPU(Central Processing Unit)는 컴퓨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범용 연산 칩이고, GPU(Graphics Processing Unit)는 원래 그래픽 처리 전용 칩이었으나 병렬 연산에 강점을 지녀 AI 연산으로 쓰임새가 확대됐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설계를 맡은 ‘팹리스(fabless)’ 기업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제조만 전담하는 사업 모델을 뜻한다. x86은 인텔·AMD가 공유하는 전통 PC 명령 집합 구조이며, Arm 아키텍처는 저전력 모바일 칩에서 출발해 서버·PC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전문가 시각과 전망

이번 딜은 미국 반도체 공급망 재편 시나리오와 맞물려 있다. 인텔이 생산 경쟁력을 회복하면, TSMC와 삼성전자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 내 생산 비중을 늘리는 정치·경제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엔비디아 GPU 주력 라인업을 계속 TSMC 4나노 공정에서 위탁 생산하기 때문에, TSMC의 실적에는 당장 타격이 제한적일 전망이다.

투자 측면에서 인텔 주가는 보도 직후 장전 거래에서 12% 급등했고, 엔비디아도 2% 상승했다. 시장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양사 협력 성과가 가시화된다면, 인텔은 파운드리·설계 양축 모두 경쟁력을 회복, 엔비디아는 CPU·GPU 통합 솔루션을 통한 ‘잠금 효과(lock-in)’를 강화할 수 있다.

결국 최대 변수는 기술 적시 개발과 실제 수요다. 엔비디아가 AI 서버 시장에서 누리는 독점적 가격 결정력은 경쟁사 대응과 고객사 자체 설계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인텔의 차세대 14A 공정이 TSMC와 삼성의 3나노급 공정과 성능·수율 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해야만 엔비디아 수주 전환 가능성이 커진다.

학계·산업계 관계자들은 “양사 동맹이 미국 내 반도체 R&D 생태계 활성화와 기술 인력 고용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면서도, “국가 간 공급망 리스크가 여전히 존재하며, 장기간 대규모 설비 투자에 따른 CAPEX 부담이 실적에 악영향을 줄 소지도 있다”고 지적한다.

1 GPU: Graphics Processing Unit. 이미지·영상 처리를 위한 병렬 연산 칩으로, 딥러닝 학습·추론에 적합해 AI 가속기로 각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