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밀수 AI 칩 사용한 ‘짬짜미 데이터센터’에 경고… “기술·경제적으로 손해 보는 일”

[엔비디아 AI 칩 밀수 논란]

Nvidia CEO Jensen Huang

그래픽처리장치(GPU) 설계사이자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엔비디아(Nvidia)가 중국으로 밀반입된 자사 칩을 활용해 구축한 비인가 데이터센터에 대해 강도 높은 경고 메시지를 내놨다.

2025년 7월 24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밀수품으로 데이터센터를 땜질하듯 꾸리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패배가 예정된 사업’”이라며 “당사는 공식 인증 제품에만 서비스·지원(Service & Support)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1. 파이낸셜타임스(FT) 단독 보도 배경

이 같은 입장은

FT가 최소 10억 달러(약 1조 3,700억 원) 규모의 엔비디아 AI 칩이 불법으로 중국에 유입됐다

는 보도를 내놓은 직후 나왔다. FT는 판매 계약서와 기업 공시, 거래에 정통한 복수 소식통을 인용해 ‘수출 통제 대상’인 B200 GPU가 암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고 전했다.

FT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H20 칩 대(對)중국 수출 제한 조치를 시행하자마자, 중국 유통업체들은 2025년 5월부터 이 칩을 데이터센터 하청업체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들 하청업체의 고객은 바이두‧텐센트 등 중국 대형 AI 기업으로 알려졌다.


2. “정식 서비스는 공인 제품에만

엔비디아 대변인은 CNBC에 보낸 서면 성명에서 “밀반입 칩으로 구축된 시스템은 정품·정규 펌웨어 업데이트, 칩 간 최적화 튜닝, 수리 보증 등 필수 유지보수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결국 총소유비용(TCO)이 높아져 기업 경쟁력을 잠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데이터센터는 단순 하드웨어 집합체가 아니라, 전력 공급·냉각·네트워크 최적화·보안 패치 등 종합적인 운영 생태계가 필요하다. 정품이 아닐 경우 엔비디아의 ‘CUDA’ 소프트웨어 스택과 드라이버 지원도 제한되기 때문에, 예상보다 빠른 성능 저하 및 보안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3. B200·H20 칩이란 무엇인가?

B200은 엔비디아가 2024년 공개한 차세대 GPU ‘Blackwell’ 아키텍처의 핵심 모델이다. AI 모델 학습에 필요한 대규모 행렬 연산을 수행하며, 기존 H100 대비 연산 효율을 2배 이상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된다.

H20은 미국 정부의 수출 통제를 피하기 위해 FP64(배정밀도) 성능을 낮추고, 대역폭·인터커넥트 속도를 조정해 중국 시장 전용으로 설계된 변형 모델이다. 그러나 2025년 4월 미 상무부가 추가 라이선스 취득을 요구하면서 판매가 중단됐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Jensen Huang) 최고경영자(CEO)는 지난주 중국 베이징 행사에서 “미 행정부와 합의를 이뤘으며, H20 공급을 곧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그는 “H20보다 더 진보한 칩도 중국에 판매하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내 향후 규제 완화 기대감을 자극했다.


4. 미·중 AI 패권 경쟁 속 규제·우회·밀수 삼중고

미국과 중국은 AI를 ‘차세대 국가경쟁력’으로 규정하고,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각축전을 벌여 왔다. 미국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첨단 GPU 수출을 단계적으로 제한해 왔고, 중국은 자체 반도체 생태계(칩 설계·제조·패키징)를 육성하며 대응해 왔다.

그러나 규제-우회-밀수라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기술 격차를 좁히려는 중국 기업규제를 피해 수익을 창출하려는 암시장이 공존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미국 내 일부 전문가들은 “과도한 통제가 오히려 ‘병목 현상’을 만들어 회색시장을 키우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엔비디아 역시 막대한 중국 매출을 포기하기 어렵다. H100 이전 세대만 해도 중국 비중은 연매출의 20% 이상이었다. 이번 사태는 기업·정부·불법 유통망 3자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신(新) 지정학’의 한 단면이라는 분석이다.


5. 시장·투자자 영향

엔비디아 주가는 나스닥 상장 이후 사상 최고가 행진을 이어왔지만, 중국 매출 공백재고 관리 부담이 단기적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서비스·지원이 없는 밀수 칩은 대형 AI 모델 학습에 쓰이기 어렵다는 점에서, 공급망 질서 재편에 따른 불확실성이 크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반면 일부 투자자는 “허가 재개 시 중국 수요가 단기간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며 엔비디아 목표주가 상향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가 H20 판매 허용 라이선스에 ‘조건부’ 녹색불을 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장중 3%대 상승세를 나타냈다.


6. 전문가 인터뷰 및 전망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신아메리카’의 기술정책 연구원 A씨는 “밀수 칩은 단기간에 AI 개발 갭을 메우려는 중국 기업의 ‘응급처치’일 뿐, 장기 투자를 위해서는 정식 공급망 확보가 필수”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반도체 분석가 B씨는 “미 정부의 라이선스 정책이 자의적으로 운영될 경우, 기업은 ‘규제 리스크 프리미엄’을 가격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소비자와 산업 전반에 비용이 전가된다”고 내다봤다.


7. 용어 해설

데이터센터는 대량의 서버‧스토리지를 집적해 24시간 운영하는 설비를 의미한다. AI 학습용 GPU는 높은 발열과 전력 소모가 특징으로, 냉각·전력·네트워크 인프라 비용이 서버 가격을 상회하기도 한다.

밀수(smuggling)는 통관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경을 넘어 물품을 반입·반출하는 불법 행위를 말한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수출 통제 대상 칩을 제3국 경유로 위장하거나 허위 세관 신고를 통해 들여오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8. 결론

엔비디아의 공식 경고는 “암시장 GPU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미·중 간 낙차가 큰 규제 환경 속에서 단기 이익을 노린 ‘불법 우회’가 결국 기술 경쟁력과 비용 효율성을 모두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향후 H20 판매 재개 및 추가 라이선스 협상 결과가 글로벌 AI 생태계의 향방을 가를 텐데, 그 과정에서 정책‧안보‧산업 논리가 정교하게 조율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