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Nvidia)가 AI 추론(inference) 칩을 둘러싼 경쟁 구도에서 잠재적 경쟁자를 사실상 제거하고 비GPU 기반의 AI 추론칩 영역으로 본격 진입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번 거래는 단순한 라이선스 계약을 넘어 핵심 인력 영입까지 포함하는 이른바 아퀴하이어(acqui-hire) 형태로 평가된다.
2025년 12월 28일, 나스닥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AI 칩 스타트업 그록(Groq)은 “엔비디아와 그록의 추론 기술에 대한 비독점적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매우 간단한 보도자료로 발표했다. 이번 계약에는 그록의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 조나단 로스(Jonathan Ross)와 사장 서니 마드라(Sunny Madra), 그리고 다수의 그록 엔지니어 인력이 엔비디아에 합류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록 측은 기존 CFO가 CEO 역할을 이어받아 그록 본연의 서비스인 GroqCloud를 계속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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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규모와 가치 평가
양사는 공식적으로 거래 금액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복수의 재무 매체는 이번 거래 규모를 $200억(약 20 billion 달러) 수준으로 보도했다. 만약 이 수치가 사실이라면 이는 엔비디아의 역대 최대 거래 규모가 된다. 비교로 엔비디아의 이전 최대 인수 거래는 2020년 Mellanox Technologies 인수로, 거래액은 $69억(6.9 billion 달러)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200억은 그록의 직전 기업가치 대비 상당한 프리미엄이다. 그록은 9월에 실시한 $7억5천만(750 million 달러) 규모의 투자유치 이후 기업가치가 $69억(6.9 billion 달러)로 평가되었는데, $200억 규모 보도는 그크의 최근 가치의 약 세 배 수준에 해당한다.
그록의 기술과 엔비디아의 전략적 의미
그록은 LPUs(Language Processing Units)라 불리는 AI 추론 전용 칩을 개발해 왔다. 기사에서는 추론(inference)을 AI의 두 단계 과정 중 두 번째 단계로 정의하며, 첫 단계인 학습(training)은 방대한 데이터로 모델을 학습시키는 과정이고, 추론은 학습된 모델을 배포해 사용자 질의에 대해 답변, 이미지 생성 등 출력물을 생성하는 과정이라 설명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엔비디아의 GPU는 오래도록 AI 학습 단계에서 지배적 지위를 점해 왔고, 추론 단계에서도 주요 솔루션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추론 시장에서는 GPU 외에도 다양한 경쟁자가 존재한다. AMD의 데이터센터용 GPU뿐 아니라, 브로드컴(Broadcom)과 마벨(Marvell Technology) 등이 대형 기술기업 고객을 위한 맞춤형 ASIC(특정응용집적회로)을 개발 중이다. 다만 그간 대형 기술기업들은 자사 맞춤형 칩을 내부적으로 사용하거나 필요 시 클라우드 서비스에 한해 활용해 왔다.
그록은 특정 추론 워크로드에서 자사 LPU가 경쟁 솔루션보다 속도 우위를 지닌다고 주장해 왔으며, 엔비디아 GPU 대비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전략을 계획했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는 그록의 기술과 핵심 인력을 전략적으로 확보함으로써 미래의 잠재적 경쟁자를 조기에 흡수하고, 비GPU 기반 추론 솔루션을 포트폴리오에 포함시켜 고객층 확대와 공급 다변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 지배 구조와 규제 측면
이번 거래가 아퀴하이어 형태로 진행되면서도 그록이 법적으로 계속 운영되는 구조를 취한 점은 규제 리스크를 낮추기 위한 설계로 풀이된다. 엔비디아는 AI 칩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어 완전한 인수합병(M&A)은 각국 규제 당국의 엄격한 심사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엔비디아는 2020년 영국의 반도체 설계사 Arm Holdings 인수 시도가 규제 문제로 무산된 전력이 있다.
따라서 이번 거래는 핵심 기술·인력의 이전과 비독점 라이선스 체결을 통해 실제 경쟁력 강화 효과는 얻되, 규제 당국의 직접적 제재 가능성을 줄이는 구조인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향후 엔비디아가 그록 기술을 자사 제품에 어떻게 통합하고, 시장에 어떤 방식으로 제공할지에 따라 경쟁 환경과 규제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핵심 인물: 조나단 로스와 TPU 연관성
보도에 따르면 그록의 설립자 겸 CEO인 조나단 로스는 구글의 텐서 처리장치(TPU) 개발에 핵심 역할을 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기사에서는 그가 TPU의 단독 창시자는 아니지만 이 개발을 주도한 핵심 인물 중 하나였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배경은 그록의 기술력이 단순한 스타트업 수준을 넘어 업계에서 기술적 위상을 인정받은 결과임을 시사한다.
추가 설명: AI 학습·추론과 칩 아키텍처에 대한 이해
AI 분야의 비전문가를 위해 다음과 같이 간단히 정리한다. AI 모델을 만드는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첫째, 대규모 데이터로 모델을 학습시키는 학습(training) 단계는 높은 연산 능력과 병렬 처리 능력을 요구하며, GPU가 강점을 발휘한다. 둘째, 학습된 모델을 실제 서비스에 적용해 질의에 답하거나 이미지를 생성하는 추론(inference) 단계는 지연(latency), 전력효율, 단가 측면이 더 중요해지며, 특정 용도에 최적화된 ASIC이나 LPU와 같은 전용 칩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즉, 추론 시장에서는 속도·전력효율·비용의 3요소가 경쟁력을 결정하며, 워크로드 특성(대화형·배치형 등)에 따라 최적의 하드웨어가 달라진다. 이번 거래는 엔비디아가 추론 시장의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제품군을 확장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시장 영향 및 향후 전망
이번 거래는 몇 가지 관점에서 시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첫째, 단기적으로는 엔비디아의 기술 포트폴리오 강화와 함께 고객사에 제공하는 추론 옵션이 확대되어 수요 유치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둘째, 그록의 핵심 인력과 기술이 엔비디아로 이전됨에 따라 독립적인 그록의 제품 경쟁력은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셋째, 경쟁사들은 자체 ASIC 개발 가속화 또는 GPU 성능·가격 경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
가격(주가) 측면에서 보면, 시장은 기술적 우위와 인수 비용을 모두 반영해 평가한다. 만약 거래액이 보도대로 $200억이라면 이는 엔비디아의 현금성과 미래 수익성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한다. 대규모 현금 유출 또는 주식 발행 없이 현금성 자산으로 인수 비용을 충당할 경우 단기 재무 지표에 부담을 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추론 시장 점유율 확대와 제품 경쟁력 강화가 실적 개선으로 연결되면 긍정적 영향이 클 수 있다.
규제 측면도 불확실성 요인이다. 비독점 라이선스와 아퀴하이어 방식은 규제 심사를 회피할 수 있는 설계지만, 경쟁 제한 효과가 실제로 나타나면 각국 규제 당국의 추가 조사·시정조치 가능성이 존재한다. 특히 클라우드·데이터센터 고객이 특정 공급자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강한 점을 고려하면 고객 수요와 규제 반응이 거래의 최종 성과를 좌우할 것이다.
결론: 전략적 흡수와 산업 구조의 변화
엔비디아의 그록 관련 라이선스 계약 및 핵심 인력 영입은 비GPU 기반 AI 추론 칩 시장으로의 본격적인 진입 신호로 해석된다. 이번 거래는 기술 흡수와 인력 확보를 통해 잠재적 경쟁자 제거 및 제품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전략적 결정이다. 다만 거래 규모, 규제 당국의 반응, 그리고 엔비디아가 그록 기술을 어떻게 통합하고 상용화할지에 따라 시장 영향은 달라질 수 있다.
요약하면, 이번 계약은 엔비디아의 기술적 포지셔닝을 강화하는 한편 AI 추론 하드웨어 경쟁 구도를 재편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