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Nvidia)가 인공지능(AI) 스타트업 그록(Groq)의 핵심 인력을 사실상 흡수하는 방식으로 약 200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진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거래는 그록이 “비독점적 라이선스 계약(non-exclusive licensing agreement)”이라고 설명한 형태로 공개됐으며, 양사 모두 보도자료나 규제 문건을 통해 상세 내용을 발표하지 않았다.
2025년 12월 26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그록은 영업일이 단축된 수요일 장 마감 후 게시한 90단어 분량의 블로그 게시물에서 엔비디아와의 비독점적 추론(inference)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공개했다. 엔비디아는 별도의 보도자료나 규제신고서를 내지 않았고, 대변인에 따르면 그록의 게시물 내용만을 확인해주고 있는 상태다.
CNBC가 수요일에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그록의 주요 투자자인 알렉스 데이비스(Alex Davis)는 엔비디아가 그록의 자산을 현금 20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데이비스가 이끄는 투자사 디스럽티브(Disruptive)는 그록에 5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고, 그록의 최근 자금조달 라운드(9월)에서는 약 69억 달러의 가치(valuation)에서 7억 5천만 달러를 모금하는 라운드를 주도했다.
그록의 창업자 겸 CEO 조나단 로스(Jonathan Ross)와 사장 서니 마드라(Sunny Madra) 및 다른 선임 경영진들은 엔비디아에 합류해 라이선스된 기술의 발전과 확장을 돕게 될 것이라고 스타트업은 밝혔다. 다만 그록은 재무책임자 사이먼 에드워즈(Simon Edwards)가 이끄는 독립 회사로서 계속 존속한다고 설명했다.
“그들이 지금은 너무 커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200억 달러 규모 거래를 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않는다.” — Bernstein의 애널리스트 스테이시 라스곤(Stacy Rasgon)
이번 거래 형태는 전통적 인수합병(M&A)이 아닌 인력·기술을 획득하기 위한 비독점적 라이선스와 고액 현금 지불 방식으로, 최근 몇 년간 메타(Meta), 구글(Google),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아마존(Amazon) 등 주요 기술기업들이 채택해온 수법과 유사하다. 엔비디아 또한 과거 AI 하드웨어 스타트업 엔패브리카(Enfabrica) CEO 및 직원들을 고액으로 영입하고 기술을 라이선스하는 방식으로 약 9억 달러를 지출한 바 있다.
거래의 규모와 맥락
만약 이번 거래가 전통적 의미의 인수로 볼 경우, 그록은 엔비디아의 32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가 된다. 엔비디아의 기존 최대 인수는 2019년 이스라엘 칩 설계기업 멜라녹스(Mellanox) 인수로 약 70억 달러를 지불한 사례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엔비디아가 공식 인수 발표 대신 비독점적 라이선스 계약을 택하면서 반(反)독점 규제의 감시를 일부 회피할 수 있는 구조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버넌스틴(Bernstein)의 라스곤은 고객 노트에서 “반독점(antitrust)이 주요 리스크로 보이지만, 거래를 비독점 라이선스로 구조화해 경쟁의 환상(fiction of competition)을 유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버넌스틴은 엔비디아 주식에 대해 강력매수 의견을 유지하며 목표주가 275달러를 제시했다.
시장 반응과 재무 여력
엔비디아 주가는 금요일 기준 약 2% 상승해 $192.40를 기록했다. 주가는 올해 들어 약 43% 상승했으며, 2022년 말 이후(생성형 AI 부상 이후) 약 13배 상승했다. 엔비디아는 확장되는 현금성 자산을 AI 생태계 전반에 투자하고 있으며, 지난 10월 말 기준 현금 및 단기투자 잔액이 606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2023년 초 133억 달러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다.
영역별 경쟁 구도: 학습(training)과 추론(inference)
그록은 2016년 전직 엔지니어 그룹이 설립했으며, 창업자 가운데 일부는 구글의 텐서 처리 장치(TPU) 개발에 참여했던 인물들이다. 그록은 특히 추론(inference) 측면에서 강점을 보인다. 추론은 새 정보에 기반해 AI가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의미하며, 학습(training)은 대규모 데이터에서 패턴을 학습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엔비디아는 학습용 GPU(그래픽 처리 장치)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용어 설명
GPU(그래픽 처리 장치)는 대규모 병렬 연산에 강해 딥러닝 모델 학습에 널리 사용되는 반도체다. TPU(텐서 처리 장치)는 구글이 맞춤형으로 개발한 AI 가속기로 학습과 추론 모두에 활용된다. 추론(Inference)은 이미 학습된 모델을 활용해 실시간 또는 배치 방식으로 결정을 내리는 작업을 뜻한다. 기사에서 거론된 LPU(언어 처리 유닛, language processing unit)는 자연어 처리 등 언어 모델의 추론 효율을 높이기 위한 특화 칩을 지칭하는 용어로 이해되며, 이번 거래에서 해당 지식재산권(IP) 소유권과 라이선스 가능성은 향후 중요한 쟁점으로 남아 있다.
애널리스트들의 평가와 남은 의문
칸터(Cantor)의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거래가 엔비디아의 전체 시스템 스택과 AI 시장 전반에서의 리더십을 강화한다고 평가하면서 매수 의견과 목표주가 300달러를 유지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증권도 매수 의견과 275달러 목표를 유지하며 이번 거래를 “놀랍고, 비싸지만 전략적”이라고 규정했다. BofA는 GPU 중심의 AI 학습에서 추론으로의 빠른 이동이 보다 특화된 칩을 요구할 수 있음을 엔비디아가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다만 애널리스트들은 몇 가지 핵심 질문을 제기했다. 우선 그록의 언어 처리 유닛(LPU) 관련 지식재산권이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귀속되는지, 해당 기술이 엔비디아 경쟁사들에게 라이선스될 수 있는지 여부, 그리고 그록이 남겨둔 초기 클라우드 사업이 엔비디아의 LPU 기반 서비스를 가격 경쟁으로 약화시킬 위험이 있는지 등이 남은 쟁점이다. 현재 엔비디아는 이들 세부사항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규제 리스크와 시장 영향 예측
이번 거래는 반독점 리스크를 수반한다. 기업들이 전통적 인수 절차를 회피하는 구조화된 거래를 통해 경쟁사로의 기술 유출을 차단하고 인재를 확보하는 방식은 규제 당국의 관심을 끌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비독점적 라이선스라는 형식을 취할 경우 법적·정책적 검토 범위를 다소 좁힐 여지도 있다. 향후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나 유럽연합(EU) 등 주요 규제기관의 대응 여부가 관건이다.
금융시장 측면에서 단기적으로는 엔비디아의 주가가 이번 발표로 긍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200억 달러라는 규모와 거래 구조에 대해 추가적인 공시가 나오지 않는 한 불확실성은 계속될 전망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엔비디아의 제품 포트폴리오 확장과 추론 시장 주도력 강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데이터센터 장비 수요 증가와 고성능 추론 서비스의 경쟁력 차별화를 통해 매출과 마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으나, 규제 대응 비용과 통합 실패의 리스크도 존재한다.
향후 일정
애널리스트와 투자자들이 엔비디아 측의 공식 입장을 들을 첫 기회는 2026년 1월 5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CEO 젠슨 황(Jensen Huang)이 연설할 때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전까지는 그록이 공개한 블로그 문구와 일부 투자자들의 전달정보가 사실상 시장에 알려진 전부다.
— CNBC의 데이비드 페이버(David Faber)가 이 보고서에 기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