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인디아 보잉 787 추락, 조종석 녹취록이 밝힌 ‘연료 차단’의 5초

에어인디아 AI423편(기체 등록번호 VT-ANB)2025년 6월 12일 인도 서부 아메다바드 공항 인근에서 추락한 사고의 초 단위 진행 경과가 인도 항공 조사국(Aircraft Accident Investigation Bureau·AAIB)의 예비 조사 보고서를 통해 공개됐다. 보고서는 특히 이륙 직후 5초 동안 두 엔진의 연료가 차단된 사실을 지적하며, 사건의 핵심 원인으로 조종석에서 발생한 인적 오류 가능성을 부각했다.

2025년 7월 17일, 인베스팅닷컴이 로이터 통신 보도를 인용해 전한 내용에 따르면, 조종석 음성기록장치(CVR)에는 한 조종사가 다른 조종사에게 “왜 연료를 차단했느냐”고 묻는 장면이 저장돼 있다. 해당 질문 직전에 엔진 1과 엔진 2의 연료 컷오프 스위치가 각각 1초 간격으로 ‘RUN’에서 ‘CUTOFF’로 내려간 것으로 기록됐다.

다음은 AAIB가 공개한 사고 당일 초 단위 타임라인이다.
• 05:47 GMT(현지시각 11시 17분) – AI423편이 뉴델리에서 아메다바드로 착륙.
• 07:48:38 GMT – 항공기가 34번 계류장을 떠남.
• 07:55:15 GMT – 관제탑으로부터 택시 허가를 받음.
• 08:07:33 GMT – 이륙 허가 발부.
• 08:08:39 GMT – 이륙.
• 08:08:42 GMT – 최대 대기속도 180노트 도달 직후, 두 엔진 연료 차단.
• 08:08:47 GMT – 두 엔진 회전수(N1·N2)가 최소 아이들 속도 이하로 급락, 램 에어 터빈(RAT) 전개.
• 08:08:52~56 GMT – 조종사가 각각의 연료 스위치를 다시 ‘RUN’으로 복귀.
• 08:09:05 GMT – 조종사가 "MAYDAY MAYDAY MAYDAY" 송신.
• 08:09:11 GMT – 비행자료 기록 중단.
• 08:14:44 GMT – 공항 소방차가 사고 현장으로 출동.

기술 용어 해설

램 에어 터빈(Ram Air Turbine·RAT)은 기체가 전원 손실을 겪을 때 동체 외부로 튀어나와 주행풍을 이용해 최소 전력과 유압을 공급하는 비상 발전 장치다. 작은 프로펠러처럼 생겼으며, 주로 대형 상용기와 군용기에 장착된다.
FADEC(Full Authority Digital Engine Control)은 항공기 엔진을 전자적으로 완전 제어하는 시스템으로, 연료 분사·점화·추력 등을 자동 관리한다. FADEC이 작동하더라도 연료 공급이 물리적으로 차단되면 엔진은 꺼질 수밖에 없다.


조종사 간 대화에 따르면, 한 조종사가 “왜 연료를 차단했느냐”고 묻자 다른 조종사는 “내가 한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보고서는 어떤 조종사가 스위치를 조작했는지 명시하지 않았으며, 정확한 의도나 착오 여부는 추가 인터뷰 및 데이터 분석으로 확인될 예정이다.

AAIB는 “연료 스위치가 공중에서 ‘RUN→CUTOFF→RUN’으로 세 차례 움직인 전례는 극히 드물다”면서, 휴먼 팩터(Human Factor)와 콕핏 자원관리(Crew Resource Management·CRM) 절차 위반 여부를 중점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엔진 복구 과정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연료를 다시 투입한 뒤에도 엔진 1은 회전수 감소가 멈추고 서서히 회복됐으나, 엔진 2는 연속 점화를 시도해도 회전수를 안정화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두 엔진 중 하나만 정상 추력을 냈다면 기체가 공항 담장을 넘는 데 필요한 양력 확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전문가 시각과 파급 효과

미항공우주국(NASA) 출신 항공안전 컨설턴트 라훌 바르가브는 “보잉 787 드림라이너는 회수 가능한 여러 중복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지만, 인적 요소에서 발생한 단 하나의 오류가 복합적으로 확대되면 시스템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사고가 향후 전 세계 항공사에 이륙 구간 비상 절차 재점검을 요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어인디아는 “조사에 전폭 협조하고 있으며, 비행 승무원에 대한 내부 면담 및 의료 검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인도 민간항공총국(DGCA)은 보잉·GE 항공엔진과 합동으로 동일 기종 27대에 대한 긴급 안전 점검을 시행하고 있다.

향후 전망

AAIB는 향후 60일 이내에 중간 조사 보고서를, 12개월 이내에 최종 보고서를 공표할 계획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에 따라 최종 보고서는 미국(NTSB), 프랑스(BEA), 캐나다(TSB) 등 관련 기관과의 공조로 작성된다.


기자 통찰
이번 사례는 초 단위 응급 대응이 사고 결과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특히 이륙 직후 고도 100피트 이내에서는 활주로 복귀 선택지가 제한되므로, 조종사는 완벽에 가까운 체크리스트 수행신속·정확한 의사소통을 병행해야 한다. 또한 항공사는 ‘스위치 오작동’이나 ‘비(非) 의도 조작’을 예방하기 위한 콕핏 디자인 개선, 시뮬레이터 교육 강화, 정신·신체 상태 모니터링 시스템 도입 등을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현대 항공기 자동화 시스템의 복잡성이 조종사에게 지나친 심리적 의존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자동화에 대한 과신(automation complacency)을 줄이고, ‘만일의 수동 개입’ 역량을 되살리는 훈련이 요구된다. 안전 규정이 결국 사람을 통해 현실화된다는 점에서, 이번 조사 결과는 전 세계 항공 생태계에 귀중한 교훈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