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키 스위프트·앤턴 브리지 기자 | 도쿄발 —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차남인 에릭 트럼프가 일본 비트코인 재무 운용사인 메타플래닛(Metaplanet) 주주총회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트럼프 일가의 글로벌 암호화폐 행보가 가속화되고 있다.
2025년 9월 1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메타플래닛은 이날 도쿄 시부야에서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최대 5억 5000만 주를 해외에 발행해 1303억 엔(미화 약 8억 8440만 달러)을 조달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회사 측은 조달 자금의 상당 부분을 추가 비트코인 매입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에릭 트럼프는 지난 3월 메타플래닛의 자문위원회 멤버로 합류했으며, 회사는 그를 “전 세계 디지털 자산 채택을 주도하는 목소리”라고 소개했다. 그는 직전 주 홍콩에서 열린 ‘비트코인 아시아 컨퍼런스’ 무대에 오른 데 이어, 이날 주주총회가 끝난 뒤 같은 장소에서 진행되는 파이어사이드 챗(fireside chat)※비공식 대담 형식의 토론에 연사로 참여할 예정이다.
■ 자본 확충 세부 내용과 주주 의결
주주들은 새 주식 발행안을 압도적으로 승인했다. 신주 발행 규모는 통상 유상증자 수준을 크게 상회하며, 회사는 “비트코인 보유량 확대가 장기 기업가치를 극대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 참석한 투자자 3명은 “안건이 원안대로 가결됐으며, 오후 늦게까지 열리는 부대 행사에서 에릭 트럼프가 직접 경영 비전을 밝힐 것”이라고 전했다.
메타플래닛은 회의 직전 로이터의 관련 질의에 “에릭 트럼프의 구체적 역할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며 말을 아꼈고, 트럼프 측 대변인도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 트럼프 가문의 ‘크립토 드라이브’
아버지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을 “크립토 대통령(Crypto President)”으로 칭하며 “암호화폐가 은행 시스템을 개선하고 달러 패권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치적 수사가 트럼프 일가의 암호화폐 관련 사업과 이해관계를 상승시키는 ‘레버리지’로 작동한다고 분석한다.
실제 트럼프 형제는 아메리칸 비트코인(American Bitcoin)이라는 채굴 회사를 공동 설립했고, 이 회사는 이달 내 나스닥 상장을 추진 중이다. 현재 아메리칸 비트코인의 지분 80%를 보유한 모회사 Asher Genoot CEO는 “에릭 트럼프가 메타플래닛 행사에 반드시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실은 앞서 블룸버그 통신이 최초 보도했다.
■ 주주총회 현장 — 코스튬·푸드트럭·K-팝
시부야 행사장은 축제 분위기였다. 다양한 코스튬 차림의 참가자가 입구에 줄을 섰고, 푸드트럭이 길게 늘어섰다. 또한 K-팝 밴드의 공연도 예정돼 있어 일반 기업 주주총회와는 대조적인 무대를 연출했다. 취재진은 회의장 출입이 제한됐으며, 의결 절차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 호텔업 → 비트코인 — 급격한 사업 전환의 배경
메타플래닛은 원래 ‘레드플래닛 재팬’이라는 중저가 호텔 체인 운영사였다. 2020년대 초 코로나19 여파로 숙박 수요가 급감하자, 창업자 겸 CEO 사이먼 게로비치(Simon Gerovich)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는 마이크로스트래티지 CEO 마이클 세일러의 ‘비트코인 국고 전략’에서 영감을 받아 호텔 자산 대부분을 매각하고 암호화폐 매입에 자금을 투입했다.
회사 측은 회사채(bonds)와 워런트(warrants)※주식 매수권을 부여하는 증권를 발행해 비트코인을 지속 매입했고, 현재 보유량은 2만 코인에 이른다. BitcoinTreasuries.net에 따르면 이는 전 세계 공개기업 중 7위 규모다. 메타플래닛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추가로 1009 BTC를 사들였다”고 발표했다.
■ 주가·시장 반응
급격한 포트폴리오 전환은 주가에도 직접 반영됐다. 최근 12개월간 주가가 약 760% 급등했으며, 같은 기간 토픽스(TOPIX) 지수 상승률은 14%에 그쳤다. 다만 이날 오후 도쿄 증시에서 메타플래닛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3.9% 하락했다.
메타플래닛은 도쿄증권거래소 스탠더드 부문에 상장돼 있으며, 과거에는 CD 도매업체로 출발해 호텔업으로 전환한 독특한 기업 이력을 지녔다. 자회사 레드플래닛 호텔스 재팬은 2024년 5월 파산 신청을 했으나, 모회사의 비트코인 전략에는 큰 영향이 없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 용어·맥락 해설
비트코인 재무 운용사(Bitcoin Treasury Company) — 현금성 자산 대신 비트코인을 대량 보유해 기업 가치를 높이려는 전략을 택한 회사를 의미한다.
파이어사이드 챗(Fireside Chat) — 벽난로 앞에서 진행되는 캐주얼 토론 형식을 가리키며, 행사장의 공식 프레젠테이션보다 자유로운 질의응답이 특징이다.
워런트(Warrant) — 특정 기간 내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매수할 권리를 부여하는 증권으로, 자본 조달 수단이자 인센티브 장치로 활용된다.
■ 관전 포인트와 전망
첫째, 메타플래닛의 공격적 비트코인 축적 전략이 장기적으로 주주가치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비트코인 가격 변동성이 기업 실적과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트럼프 일가가 암호화폐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미국 규제 환경 변화가 메타플래닛을 포함한 글로벌 크립토 기업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셋째, 대규모 신주 발행이 기존 주주의 희석(Dilution) 우려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회사 측은 비트코인 보유 확대를 통해 장기 가치를 높여 ‘희석을 상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단기적으로 주가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1 = 147.3300 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