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는 월가를 움직이는 연료다. 그러나 기업 실적 발표 시즌과 거의 매일 쏟아지는 거시 지표 탓에 투자자들이 소화해야 할 정보는 종종 과부하 상태에 빠지곤 한다.
2025년 8월 20일, 나스닥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방대한 정보 속에서도 특히 주목해야 할 자료가 있다. 바로 총 운용자산(AUM)이 1억 달러 이상인 기관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분기마다 제출해야 하는 ‘13F 보고서’다. 이 문서는 월가 거물들의 최신 매매 내역을 간결하게 보여주며, 현명한 투자자라면 반드시 확인해야 할 ‘나침반’으로 통한다.
13F를 몇 분기 연속으로 추적하면 개별 매매 이상의 장기적 투자 패턴이 포착된다. 이번 분기에서 특히 관심을 모은 인물은 듀케인 패밀리 오피스를 이끄는 억만장자 스탠리 드러켄밀러다. 그는 40년 가까이 시장을 이겨 온 ‘전설적 매크로 트레이더’로, 현재 40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팔란티어 전량 매도… 단순 차익 실현 이상의 의미
AI 붐의 대표 종목으로 꼽히는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티커: PLTR)는 2023년 이후 누적으로 약 2,700% 급등하며 ‘차세대 엔비디아’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핵심 플랫폼인 Gotham과 Foundry는 각각 정부·군사 작전 지휘, 그리고 기업 데이터 분석·자동화를 담당하며 사실상 대체재가 없다는 점이 주가 급등을 이끌었다.
그러나 드러켄밀러는 2024년 6월 말 77만 주에 달했던 팔란티어 지분을 2025년 3월 말까지 완전히 정리했다. 듀케인 포트폴리오의 평균 보유 기간이 7개월이 채 되지 않는 만큼 ‘차익 실현’은 자연스러운 선택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다른 요인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팔란티어의 밸류에이션 부담이 크다. 닷컴 버블 정점에서조차 인터넷 선도기업의 P/S(주가매출비율)은 30~40배 수준이었으나, 팔란티어는 최근 140배에 근접했다. 역사상 어떤 메가캡 기업도 이런 프리미엄을 지속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드러켄밀러가 리스크를 회피했을 가능성이 높다.
“게임 체인저 기술도 초기에는 과열과 조정을 피해가지 못한다.” — 시장 분석가들의 공통된 경고
실제로 지난 30년간 인터넷, 스마트폰, 전기차 등 모든 혁신 기술은 초기 버블 붕괴를 경험했다. AI 도입 속도에 대한 과도한 낙관이 현실화된다면, 고평가된 팔란티어가 타격을 받을 것은 자명하다.
4분기 연속 매수… 드러켄밀러가 두 번째로 키운 종목은 ‘테바’
반면 그는 지난 1년간 45개 종목(옵션 포함)을 신규·추가 매수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종목은 이스라엘계 제약사 테바 제약산업(티커: TEVA)이다. 드러켄밀러는 네 분기 연속 테바 주식을 매수해 포트폴리오 2대 보유 종목으로 끌어올렸다.
- 2024년 3분기: 1,427,950주 매수
- 2024년 4분기: 7,569,450주 매수
- 2025년 1분기: 5,882,350주 매수
- 2025년 2분기: 1,089,185주 매수(총 15,968,935주 보유)
테바 주가는 최근 2년간 87% 상승했지만, 2015~2023년에는 인수 실패·소송 리스크로 투자자들을 괴롭혔다. 특히 2016년 제네릭 업체 액타비스 인수로 부채가 급증했고, 미국 48개 주가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 남용 책임을 물어 제기한 소송이 불확실성을 키웠다.
2023년 초 48개 주와 총 42억5,000만 달러(13년에 걸쳐 현금·제네릭 나르칸 제공 포함)에 합의하면서 법적 짐을 내려놓았다. 이후 CEO 리처드 프랜시스는 제네릭 위주였던 사업 구조를 브랜드 신약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고수익·고성장 신약이 장기간 독점 판매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표 제품인 ‘아우스테도’(Austedo)는 2025년 예상 매출 20억 달러로 호조를 이끌고 있다. 또한 전임 CEO 카레 슐츠 시절부터 이어진 비용 절감과 비핵심 자산 매각으로 순부채를 대폭 축소해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할 여력을 확보했다.
무엇보다 밸류에이션 매력이 돋보인다. S&P500의 셜러 P/E가 39배에 육박한 데 비해, 테바의 순이익 기준 전망 PER은 6배 수준이다. 시장 평균 대비 ‘할인’ 구간인 만큼 드러켄밀러가 위험 대비 보상을 크게 보고 있다고 해석된다.
전문가 해설: 13F·P/S·셜러 P/E란 무엇인가?
13F 보고서는 일정 자산 규모 이상 기관이 분기 말 45일 이내 보유 종목을 보고하는 문서로, 헤지펀드·연기금·자산운용사 등 ‘큰손’의 매매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P/S(Price to Sales)는 시가총액을 매출액으로 나눈 지표로 ‘매출 1달러를 사기 위해 투자자가 지불하는 금액’을 의미한다. 기술·성장주가 고평가인지 가늠할 때 쓰인다.
셜러 PER은 주가를 최근 10년 평균 실질 이익으로 나눈 지표다. 경기 변동 영향을 완화해 장기적 고평가·저평가 여부를 판단할 때 활용된다.
기자 관전평
드러켄밀러는 ‘양손잡이 투자자’라는 별명답게 고공 행진한 AI 대장주를 과감히 정리하는 한편, 저평가된 제약주에서는 장기 성장 모멘텀을 선점했다. 이는 단순 수익 실현보다는 리스크 관리와 밸류에이션 균형을 중시하는 그의 투자 철학을 잘 보여준다.
특히 AI 섹터에 대한 과열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안전 마진’이 큰 헬스케어 종목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전략은 변동성 장세에서 참고할 만하다. 다만 팔란티어·테바 모두 여전히 변수가 많은 종목이므로, 개별 투자자는 자금 규모·목적에 맞춰 분산·리스크 허용 범위를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