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 최근 몇 년 사이 암호화폐 시장이 급등세를 보인 가운데, 이는 부분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친(親) 암호화폐 기조가 금융기관의 수용성을 넓힌 데 힘입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보도됐다. 암호화폐가 전통 금융과 만나는 접점은 확대됐지만, 감독 공백과 변동성이라는 이중의 특성이 여전히 리스크 요인으로 꼽힌다.
2025년 11월 20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암호화폐의 총 시가총액은 약 3조2천억 달러, 일일 거래대금은 약 1,970억 달러로 추산된다고 코인게코(CoinGecko)가 집계했다.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작지만, 암호화폐 부문에서 발생한 충격이 광범위한 금융시스템으로 전이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당국과 투자자의 경계는 계속되고 있다.
이번 주 비트코인 가격이 4월 이후 처음으로 9만 달러 아래로 하락했고, 지난 6주 동안 암호화폐 전체 시가총액에서 약 1조2천억 달러가 증발했다. 비트코인은 대체로 글로벌 위험자산 선호와 동행하는 경향이 있으며, LSEG 데이터에 따르면 최근 1개월 롤링 기준 S&P 500과의 상관계수는 0.84로 6주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상관계수는 -1에서 1 사이의 값으로 측정된다.
핵심 포인트: 비트코인의 단기 변동성 증가는 전통 자산과의 상관성 재고조를 촉발하며, 유동성 환경 변화가 암호화폐뿐 아니라 일부 인접 자산군에도 파급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암호화폐와 전통시장(메인스트림) 사이의 교차 지점
1)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Reserves)
스테이블코인은 통상 미국 달러 등 실물 화폐에 연동(페그)된 암호화폐다. 발행사는 유통 중인 토큰 수에 상응하는 준비자산을 보유하며, 토큰 보유자에게 언제든 1:1로 달러로 상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금융안정 전문가들은 대규모 동시 상환이 발생할 경우, 준비자산에서 현금이 예치된 은행이나 준비금이 투자된 유가증권·단기채에 대한 런(run) 리스크가 전이될 가능성을 경고한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엘살바도르에 기반을 둔 테더(Tether)가 지배하고 있으며, 테더는 약 1,810억 달러의 준비자산을 보유하고 이 중 1,120억 달러를 미국 국채(U.S. Treasuries)에 투자하고 있다. 경쟁사 서클(Circle) 역시 미국 국채에 240억 달러를 보유 중이다. 준비금 운용이 미 국채 등 전통자산과 직접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스테이블코인의 변동은 달러 자금시장의 미세한 유동성 환경과도 접점을 가진다.
용어 풀이
– 스테이블코인: 달러 등 법정화폐 가치에 1:1로 연동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다. 발행사는 준비자산을 통해 교환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 런(run): 다수의 투자자가 동시에 상환·환매를 요구하는 현상으로, 준비금 고갈과 시장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2) 암호화폐 관련 주식(Crypto-related Stocks)
2025년 들어 크립토 관련주가 급등하며 상장 컴퍼니도 늘었지만, 순수 플레이어(pure players)의 규모는 여전히 전체 시장 대비 미미하다. LSEG 데이터에 따르면, ‘블록체인·암호화폐’와 ‘암호화폐 채굴’ 카테고리 상장주의 시가총액 합계는 2,250억 달러로, 이는 글로벌 주식시장의 약 1.8%에 해당한다.
이 수치에는 크립토 트레저리 컴퍼니(crypto treasury companies)로 분류되는 기업—즉, 자체 비즈니스 모델로 암호자산을 매입·보유하는 기업—는 제외돼 있다. 비트코인 매수 기업에는 Strategy 같은 주요 플레이어가 포함돼 있으며, 2025년 들어 다수의 페니주(penny stocks)가 크립토 열성가들에 의해 인수돼 가격 상승 베팅 수단으로 활용됐다. 스탠다드차타드는 비트코인 가격이 9만 달러 아래로 떨어질 경우, 이들 기업의 절반에서 보유 비트코인의 취득가가 현재가를 상회하게 된다고 추정한다.
미국 IPO 시장에서도 관련 상장이 이어졌다. LSEG에 따르면, 2025년 미국 신규 상장 173건 중 4건이 크립토 기업이었고, 조달 금액 합계는 12억 달러로 올해 미국 IPO 전체 조달액의 약 3.3%를 차지했다.
용어 풀이
– 크립토 트레저리 컴퍼니: 본업 수익과 별개로, 회사 자금(코퍼레이트 트레저리)으로 비트코인 등 암호자산을 매입·보유하는 전략을 운영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3) 은행권의 크립토 익스포저(Bank Exposure to Crypto)
은행은 크립토 기업과의 거래, 스테이블코인 준비금 수탁, 암호화폐 관련 커스터디·결제 등 서비스 제공을 통해 암호화폐에 대한 익스포저를 취할 수 있다. 일부 중소형 은행은 크립토 특화 전략으로 리스크가 집중되기도 한다. 실제로 2023년에는 미국의 크립토 특화 은행 실버게이트 캐피털(Silvergate Capital)이 고객 예금 이탈 이후 붕괴한 바 있다.
2025년 들어 미국 규제 당국은 은행의 크립토 관련 활동 참여 문턱을 낮추는 조치를 취했으며, 이는 다른 지역 규제당국에도 접근 방식 재검토를 압박하는 신호로 해석됐다. 다만, 은행권의 익스포저 데이터는 제한적이며, 확인 가능한 범위에서 보면 규모는 작지만 증가세라는 점이 드러난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24년 5월 리뷰에서, 유로존의 중요 금융기관들이 2024년에 약 47억 유로 규모의 크립토 자산 커스터디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는 2023년 4억 유로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다. 또한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 자료에 따르면, 자발적으로 데이터를 제출한 국가의 은행을 기준으로 2024년 하반기 프루덴셜(건전성) 익스포저는 약 59억 유로로 집계됐다.
용어 풀이
– 커스터디(Custody): 고객의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관리하는 수탁 서비스다.
– 프루덴셜 익스포저: 은행 건전성 규제(자본·유동성 기준 등) 상 보고되는 크립토 관련 위험노출 금액을 의미한다.
4) 크립토 투자펀드(ETF/ETP)
2024년 1월, 미국 규제당국의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은 기관투자자(국부펀드·연기금 등)를 포함한 신규 수요를 촉발했다. 이에 따라 모닝스타 다이렉트(Morningstar Direct)에 따르면, 전 세계 디지털 자산 ETP 수는 2021년 104개에서 2025년 367개로 급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립토 ETP 운용자산(AUM)은 2,223억 달러로, 비(非)크립토 ETP가 운용하는 17.4조 달러에 비하면 여전히 규모가 작다고 모닝스타는 추정했다. 상품의 진입성 개선에도 불구하고, 시장 전체에서 크립토가 차지하는 비중은 제한적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용어 풀이
– ETF(Exchange-Traded Fund): 거래소에 상장돼 주식처럼 실시간 거래되는 펀드다.
– ETP(Exchange-Traded Product): ETF를 포함해, 거래소에 상장된 다양한 지수연동형 금융상품의 포괄적 개념이다.
연결고리의 강도: 데이터로 본 현실과 시사점
현재까지 드러난 수치에서 암호화폐와 전통 금융의 연결은 ‘굵은 한두 개의 파이프’에 집중돼 있다. 첫째, 스테이블코인 준비금의 미 국채 비중이 높아, 대규모 상환이 초래될 경우 단기 채권시장 유동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둘째, ETF·ETP 채널을 통해 기관자금이 유입되면서, 리스크 관리와 가격발견 메커니즘이 전통 금융 인프라와 더 깊이 결합되고 있다. 셋째, 은행권의 직접 익스포저는 통계상 아직 작지만, 커스터디·결제 등 서비스형 노출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상관계수 0.84라는 수치는 단기적으로 주식 등 위험자산과의 공행성을 강화시키며, 거시 환경 변화(금리, 유동성)에 대한 암호화폐의 민감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다만, 전체 규모 측면에서 보면 크립토는 전통 자산군 대비 아직 ‘작은 연못’이기 때문에, 충격의 방향은 양방향이어도 전이의 강도는 제한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특정 상황—예컨대 스테이블코인 동시 상환이나 특화은행의 유동성 경색—에서는 부분적 스트레스 전파가 발생할 수 있기에, 리스크 관리와 공시 투명성 제고가 중요하다.
정책·감독의 변화는 시장 구조에 직접적인 흔적을 남기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친(親) 암호화폐 기조는 금융기관의 참여 문을 넓혔고, 미국의 ETF 승인은 글로벌 투자자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반면, 데이터 가시성의 제약(은행 익스포저 통계 등)은 체계적 리스크 측정을 어렵게 만든다. 이는 표준화된 공시·회계 프레임과 준비자산의 품질·유동성에 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재확인시킨다.
정리: 작은 비중, 그러나 연결은 실재한다
총 3조2천억 달러의 암호화폐 시장은 아직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비중이 작다. 그럼에도 스테이블코인 준비금—미 국채, ETF/ETP—기관자금, 은행—커스터디·결제라는 세 축을 통해 전통 금융과의 실질적 연결이 형성돼 있다. ECB와 바젤위원회의 데이터는 은행권 노출의 ‘작지만 증가’라는 흐름을 가리키며, LSEG·모닝스타의 수치는 상관성 강화와 상품화의 진전을 보여준다. 가격 변동성과 동시 환매가 발화점이 될 수 있는 만큼, 투명한 준비자산 운용과 리스크 전달 경로의 상시 모니터링이 관건이다.
추가 참고: 상관관계 이해
– 상관계수는 -1에서 1까지로, 1에 가까울수록 같은 방향, -1에 가까울수록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0.84는 최근 한 달 기준 상대적으로 높은 동행을 의미한다. 이는 리스크 분산 관점에서, 포트폴리오 내 암호자산의 역할을 재점검하게 만드는 수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