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전자상거래·클라우드 기업인 알리바바(Alibaba Group Holding Ltd.)가 자국 내 인공지능(AI) 생태계의 핵심으로 떠오를 신규 반도체를 선보였다. 이번 칩은 기존 사내 칩보다 범용성이 한층 높아졌으며, 특히 AI 서비스 상용화의 마지막 단계인 ‘추론(inference)’ 작업 전반을 지원하도록 설계된 것으로 전해졌다.
2025년 8월 29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알리바바가 새 AI 칩 초기 테스트 단계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해당 칩은 전량 중국 업체가 위탁 생산하고 있으며, 이는 2021년 공개됐던 1세대 AI 프로세서 ‘Hanguang 800’이 대만 TSMC에서 생산됐던 것과 대조적이다. 분석가들은 이를 기술적·정치적 자립도 제고라는 중국 정부 기조와 궤를 같이하는 움직임으로 해석한다.
왜 ‘AI 추론 칩’이 중요한가
일반적으로 대규모 AI 모델은 훈련(training)과 추론(inference) 두 단계로 나뉜다. 훈련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학습시켜 모델의 파라미터를 조정하는 과정이고, 추론은 학습을 마친 모델이 실제 서비스를 제공할 때 입력값에 대해 결과를 예측·생성하는 단계다. 훈련 단계에는 초고성능 GPU가 집중 투입되지만, 추론 단계는 전력 효율과 레이턴시가 관건이므로 특화된 칩이 필요하다. 알리바바의 새 칩은 이 추론 단계 전용으로 설계돼, 클라우드 고객에게 안정적이고 빠른 AI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엔비디아 H20 공백, 중국 빅테크의 ‘골든타임’
미국 반도체 거인 엔비디아(Nvidia)의 ‘H20’ GPU는 2023년 미국의 수출통제(Export Control) 이후 중국 시장 전용으로 설계된 제품이다. H100·블랙웰(Blackwell) 시리즈보다 연산력이 다소 낮지만, 중국 기업이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AI 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2025년 초 H20까지 사실상 차단하면서 중국 IT·AI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미국 정부가 7월 말 H20 판매를 조건부 재개하도록 허용했지만, 이미 알리바바·바이트댄스(ByteDance) 등은 자체 솔루션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미·중 기술 갈등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고려하면, 이제부터는 글로벌 밸류체인 ‘Plan-B’가 필수다.”1
업계 한 관계자는 WSJ에 이렇게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제조·설계 모두 ‘메이드 인 차이나’
1세대 ‘Hanguang 800’은 설계는 알리바바가, 생산은 TSMC가 맡았다. 반면 이번 칩은 설계·제조 모두 중국 본토에서 이뤄진다. 칩 제조를 맡은 업체명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SMIC·HuaHong·각종 팹리스 전문 파운드리가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알리바바 측은 로이터의 논평 요청에 즉각 답하지 않았다.
클라우드 부문 실적과의 시너지
알리바바는 같은 날 발표한 2025회계연도 1분기(4~6월) 실적에서 클라우드 컴퓨팅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6%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 컨센서스를 상회하는 수치다. 내부적으로는 ‘딥러닝 서비스’ 수요가 폭증하면서 분기 가동률이 상승했고, 신형 AI 칩이 상용화되면 수익성 개선 폭이 한층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용어 설명2
• 추론(Inference): 학습을 마친 AI 모델이 실제 문제를 해결할 때 입력값을 바탕으로 출력을 생성하는 과정.
• H20 GPU: 미 정부 규제에 맞춰 엔비디아가 2023년 중국 전용으로 설계한 AI 가속기.
• 블랙웰(Blackwell) 시리즈: 엔비디아의 2025년형 차세대 데이터센터 GPU 라인업. B100, B200 등으로 세분화돼 AI 훈련·추론 성능을 대폭 향상했으나 중국 수출은 금지돼 있다.
시장·정책 함의
이번 발표는 미국 반도체 수출 제한이 촉발한 중국 내 자립 가속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알리바바 외에도 텐센트·화웨이·바이트댄스 등이 잇달아 GPU·NPU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중국판 칩 인플레이션’으로 불릴 만큼 인재·장비 경쟁이 치열하다. 전문가들은 ‘알리바바 칩’이 대량 양산에 성공하면, 단기적으로는 엔비디아 중국 매출이 감소하고,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GPU 시장 판도가 다극화될 것이라고 본다.
전망 및 과제
알리바바 신형 칩은 아직 엔지니어링 샘플 단계로, 실제 양산까지는 공정 미세화, 전력 효율 개선, 소프트웨어 생태계 구축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또한 글로벌 반도체 장비·EDA(전자설계자동화) 툴 상당수가 미국산인 만큼, 공급망 제약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중국 시장 ‘막혀 있던 수요’를 내수 칩이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업계 판도를 흔들 잠재력을 갖는다는 평가다.
알리바바가 추가 정보 공개와 함께 개발 로드맵·성능 지표를 제시할 경우, 국산 AI 칩의 상용화 타임라인은 한층 앞당겨질 전망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알리바바 클라우드 사업부의 수익 구조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