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기업결합 규제 완화에 대해 핀란드, 아일랜드, 체코공화국과 발트해 국가인 에스토니아·라트비아 등 5개국이 완화를 경계하는 공동 입장을 밝혔다. 이들 국가는 일부 기업들이 비(非)EU 경쟁사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규제 심사를 완화할 것을 요구하는 데 대해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2026년 2월 23일,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이하 집행위)는 2004년 제정된 기업결합 규칙을 개편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의견 수렴을 위해 4월에 관련 제안서를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러 소식통은 이번 개편의 목표가 범유럽(판-유럽) 인수합병(mergers)을 장려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문서에 따르면 이 5개국은 로이터가 입수한 메모에서 유럽이 ‘유럽 챔피언'(European champions)을 만들기 위해 기업결합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 국가는 이미 존재하는 규정으로도 경제적 근거가 존재할 경우 충분히 대형 합병을 허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규모 자체가 주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Size in itself should not be the primary objective).”
이들은 2월 26일 EU 장관 회의에서 논의될 예정인 해당 문서에서 “면제나 특혜가 아닌, 효율성·혁신·공정 경쟁을 통해 성공하는 기업을 추구해야 한다(undertakings that succeed through efficiency, innovation and fair competition instead of exemptions or special treatment).”고 강조했다.
이들 국가는 특히 유럽 통신 사업자들이 제시하는 ‘규모가 커지면 투자가 늘어난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대신에 규제 당국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이러한 효과를 입증하는 증거가 거의 없으며, 투자와 시장 집중도 사이의 상관관계는 사례별로 분석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지했다.
“통신 시장에서 높은 시장집중도와 강한 투자 유인 간의 경험적 연관성은 기껏해야 결론이 불확실하며, 사례별로 분석되어야 한다(The empirical link between higher concentration and stronger investment incentives in telecom markets is at best inconclusive and should be analysed on case-by-case basis).”
또한 이들 국가는 대형 통신 사업자가 공급망을 더 안정적으로 만들 것이라는 주장도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소수의 공급업체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면 유럽 전체의 복원력(resilience)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복원력 강화와 공급망 안전 확보를 위해 추가 규제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는 경쟁법 변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분야별(sectoral) 또는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 수단을 통해 추진되어야 한다(If strengthening resilience and secure supply chains is considered to require additional regulatory measures, these should be pursued through sectoral or industrial policy instruments rather than through changes to competition legislation).”
배경 설명:
기업결합 규칙(Merger rules)은 경쟁을 유지하고 독점적 지배력을 방지하기 위해 합병·인수 거래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심사하는 법적 틀이다. 집행위는 EU 내에서 대형 거래의 경쟁 영향과 관련해 최종 심사 권한을 가진 기관으로, 기업결합 사안에 대해 제출된 자료를 바탕으로 경쟁 제한 여부와 필요한 시정조치(remedies)를 결정한다. 1 이번 논의는 2004년에 마련된 규정을 개정하는 것으로, 규정의 적용 범위와 심사 기준을 재검토하는 것이 핵심 과제다.
“판-유럽 합병(pan-European mergers)”은 여러 EU 회원국에 걸쳐 활동하는 기업들이 합쳐져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거나 단일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려는 합병을 말한다. 일부 기업은 이러한 합병이 글로벌 비EU 기업과 경쟁하는 데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전문가적 해석 및 향후 영향 분석
이번 5개국의 공동 문서는 규제 완화에 대한 보수적 접근을 명확히 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경제·시장적 함의를 시사한다. 첫째, 규제 완화가 즉각적인 대형 M&A 증가로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집행위가 4월 제안서를 공개하더라도, 실제 법·제도의 변경과 그 적용에 대해선 상당한 기간의 심사와 의견수렴이 필요하다. 둘째, 통신 등 특정 산업에서 기업 간 결합이 투자 촉진으로 직결된다는 경험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은, 인수합병이 투자 활성화·기술혁신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셋째, 시장 참여자와 투자자 관점에서는 규제의 불확실성이 단기간에는 거래 비용을 증가시키고, 신중한 대기 태세(wait-and-see)를 유발할 수 있다. 이는 M&A 전문 자문업체와 투자은행들이 단기적 거래를 연기하거나 구조조정 대신 다른 성장전략을 모색하게 함으로써 관련 산업의 자본집중 흐름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규제가 명확해지고 엄격성의 범위가 확정되면 장기적으로는 예측 가능한 규제 환경에서 선택적 합병·전략적 제휴이 촉진될 수 있다.
넷째, 공급망 안정성과 복원력 문제는 단순히 기업 규모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특정 부문에 특화된 산업정책과 인프라 투자로 대응해야 한다는 5개국의 주장은 향후 EU 차원의 산업정책 논의가 병행될 가능성을 높인다. 이는 개별 기업의 합병보다 회원국 간 협력, 전략적 재고 비축, 다원적 공급망 구축 등 정책적 수단을 통한 대응을 촉진할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규제 완화 논의가 향후 시장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산업과 시장 구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통신 산업처럼 고정비가 크고 네트워크 효과가 강한 시장에서는 합병에 따른 가격·서비스 영향이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 그러나 집행위의 엄격한 경쟁심사와 사례별 분석 원칙이 유지될 경우, 단기적 가격 상승이나 획기적 투자 확대보다는 점진적 구조 재편과 서비스 품질·가격의 미세 조정이 더 현실적 시나리오이다.
결론
핀란드·아일랜드·체코·에스토니아·라트비아 등 5개국의 입장은 EU 차원의 기업결합 규제 개편 논의에서 규모 지향적 정책이 아닌 경쟁·효율·혁신 중심의 심사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집행위의 4월 제안서 공개 이후에도 구체적 법 개정과 시행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논쟁과 조정이 예상되며, 그 과정에서 산업별·국가별 이해관계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투자자, 기업, 정책결정자는 향후 제안서의 세부 항목과 사례별 심사 결과를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