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의 투자 보류 소식
영국 런던 증시에 상장된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가 2억 파운드(약 2억 7,100만 달러) 규모의 케임브리지 연구 허브 확장 계획을 전면 보류하면서 15일 주가가 장중 3% 하락했다.
2025년 9월 15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회사 측은 해당 프로젝트가 최대 1,000명의 신규 고용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현재로선 자금 집행이 완전히 멈춘 상태라고 공식 확인했다.
이번 결정은 올해 3월에 처음 발표됐던 대규모 투자 계획에 제동이 걸린 것으로, 영국 제약·바이오 업계의 ‘탈(脫)영국’ 현상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평가된다. 투자 중단 소식이 전해지자 투자자들은 향후 연구·개발(R&D) 일정 차질과 영국 내 고용시장 악영향을 우려하며 주식을 매도했다.
■ 잇따른 투자 철회…영국 제약 산업 신뢰도 흔들
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 1월에도 영국 북부에 4억 5,000만 파운드 규모의 백신 생산 시설 신설 계획을 철회했다. 당시 회사는 영국 정부가 약속했던 재정 지원을 축소한 점을 사유로 들었다.
비슷한 시기, 미국계 제약사 머크(Merck & Co) 또한 런던 연구 센터 설립 계획을 전면 취소했다. 머크는 “영국의 불안정한 비즈니스 환경이 투자 매력을 떨어뜨렸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연방 의료 보험 체계(NHS)와의 약가 협상, 브렉시트 이후 관세·통관 절차 등 복합적인 요인이 영국을 ‘투자 기피국’으로 만들고 있다고 분석한다.
■ 아스트라제네카 공식 입장과 정치적 파장
“우리는 회사의 투자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재평가하고 있으며, 케임브리지 확장 계획이 잠정 중단됐음을 확인한다.” — 아스트라제네카 대변인
아스트라제네카의 결정은 키어 스타머 총리가 이끄는 영국 정부에 타격을 주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불과 며칠 앞두고 나온 악재라 정부의 투자 유치 전략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참고로 아스트라제네카는 FTSE 100① 시가총액 1위 종목으로, 기업 동향이 런던 증시 전반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다.
■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과 미국 투자 확대
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 7월, 2030년까지 미국에 50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 중인 의약품 고율 관세 정책에 대한 대응 차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과 유럽은 미국이 지불하는 만큼의 높은 약가를 부담하지 않는다”며 영국·EU 시장을 공개 비판해왔다. 이에 따라 글로벌 제약사들이 ‘가격 정상화’를 명분으로 해외 진출 전략을 수정하거나, 미국 내 생산·연구 인프라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영국 정부는 관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과 “의약품에 대한 상호우대 협상”을 추진 중이다. 5월 양국이 채택한 공동 성명에는, 영국 내 활동 기업에 유리한 세제·규제 개선 방안이 포함됐으나 아직 구체적인 실행안은 나오지 않았다.
■ 업계 단체·제약사 반발 확대
영국제약산업협회(ABPI)는 이번 주 성명을 내어 “영국은 글로벌 투자 대상으로 점점 배제되고 있다”며 NHS와의 약가 환급(Revenue Return) 협상 지연을 비판했다.
제약사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내 가격 인하’ 요구에 대응해 영국 등 해외 국가에 약가 인상 압박을 가속화하고 있다. 실제로 일라이 릴리(Eli Lilly)는 지난달 체중 감량 치료제 ‘마운자로(Mounjaro)’의 영국 공급가를 170% 인상했다.
■ 용어 정리 및 배경 설명
① FTSE 100은 ‘Financial Times Stock Exchange 100’의 약어로, 런던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시가총액 상위 100개 기업을 추종하는 대표 주가지수다. 한국의 KOSPI200과 유사한 개념으로, 편입 종목의 주가 변동은 영국 주식시장의 전반적인 흐름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로 여겨진다.
관세(Tariff)는 수입품에 부과되는 세금으로 자국 산업 보호·무역수지 개선 등을 목적으로 도입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의약품에도 고율 관세를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압력을 높이고 있다.
■ 기자 해설: ‘투자 기피국’으로 전락한 영국의 돌파구는?
영국 정부가 글로벌 제약사와 약가·투자 인센티브 협상에서 예측 가능한 규제 체계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탈영국’ 흐름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특히 R&D 집약도가 높은 바이오·헬스케어 산업 특성상, 연구 허브의 중장기 투자가 끊길 경우 생산성 저하와 기술 유출이라는 이중 리스크가 현실화될 수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아스트라제네카·머크·일라이 릴리 등 선도 기업이 공통적으로 ‘투자 환경 불확실성’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은 영국 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구조적 과제임을 시사한다. NHS와의 약가 협상이 장기화될수록 기업들은 미국·EU·아시아 등 대체 투자처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아스트라제네카의 이번 투자 보류는 환율·관세·약가 정책이 뒤얽힌 복합 위기 속에서 영국 제약 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다. 스타머 내각이 가시적인 정책 불확실성 해소에 나서지 않는 한, ‘케임브리지 클러스터’로 대표되는 영국 바이오 생태계의 글로벌 경쟁력은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