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라제네카, 뉴욕증권거래소 직접 상장 추진…런던 증시 유동성 이탈 우려

런던=Charlie Conchie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가 2025년 2월부터 자사의 보통주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직접 상장(listing)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현재 운영 중인 미국 예탁증서(ADR·Depositary Receipt) 방식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형태다. 회사는 런던증권거래소(LSE)와 스웨덴 스톡홀름증권거래소(OMX) 상장을 유지하되, 매매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뉴욕 시장 참여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2025년 9월 30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결정은 런던 시장의 유동성을 잠식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업계와 정책당국의 이목을 끌고 있다. 애널리스트, 기관투자자, 자본시장 자문사는 “런던 증시에 몸담고 있는 다른 대형 기업들도 아스트라제네카의 행보를 주시하며 비슷한 전략을 검토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미셸 드마레(Michel Demaré) 이사회 의장은 주주 서한에서 “미국 투자자가 단일 국가 기준으로 가장 큰 주주군을 형성하고 있고, 지난해 미국 사업 부문이 전체 매출의 43%를 차지했으며 2030년에는 50%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시가총액은 9월 30일 기준 약 2,300억 달러(약 298조 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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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유동성이 풍부한 공모주 시장이며 혁신적 바이오·제약 기업과 투자자가 밀집해 있다.” — 미셸 드마레, 아스트라제네카 이사회 의장


◆ ‘런던 완전 철수’ 우려 일단 진정
언론 보도 초기에는 회사가 런던 상장을 전면 철회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회사 측은 “런던·스톡홀름 이중 상장은 유지”한다고 선을 그었다. 영국 정부 대변인은 “본사, 세금 납부, 고용·혁신 기반이 영국에 그대로 남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거래량(liquidity)이 뉴욕으로 쏠리고, FTSE 100 대형 우량주가 잇달아 미국으로 향하는 ‘도미노’가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아스트라제네카 주주의 22.5%가 북미 기반이며, 런던 상장 대기업(HSBC·셸·롤스로이스·BAT·리오틴토)도 20.5~24.7%가량을 북미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다.1

찰스 홀(Charles Hall) 필 헌트(Peel Hunt) 리서치 총괄은 “대부분의 FTSE 100 기업 이사회가 오늘 이 사안을 검토 안건으로 올렸을 것”이라며 “런던 상장 대기업 상당수가 이미 미국 투자자 비중이 높다”고 지적했다.

알래스터 스틸(Alasdair Steele) CMS 로펌 파트너 역시 “아스트라제네카 주식 유동성이 런던보다 뉴욕으로 더 옮겨간다면 런던 시장의 위험 신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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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밸류에이션 갭’과 지수 효과
FTSE 100 지수는 지난 10년간 58% 상승한 반면 S&P 500은 250% 급등했다. 이 같은 ‘평가 격차(valuation gap)’가 영국 기업들의 해외 이전 압력을 키우고 있다.
MKP Advisors의 마크 켈리(Mark Kelly) CEO는 “아스트라는 런던 시장에서 너무 ‘덩치가 큰’ 기업”이라며 “런던에서는 대형 글로벌 지수 편입에 따른 거래량 효과를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고 말했다.

최근 핀테크 기업 와이즈(Wise)가 뉴욕행을 예고했으며, 리오틴토(Rio Tinto)·글렌코어(Glencore)·피어슨(Pearson) 등도 비슷한 주주 압박을 받아왔다. 이안 파일(Ian Pyle) 애버딘(Aberdeen) 수석 운용역은 “3중 상장이 원하는 효과를 내지 못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완전한 뉴욕 이전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평가했다.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은 성명을 통해 “아스트라제네카가 FTSE 100 핵심 종목으로서 영국 자본시장과의 연계성을 재확인한 것”이라며 긍정적 메시지를 냈다. 라샘 & 왓킨스(Latham & Watkins)의 마크 오스틴(Mark Austin) 파트너도 “글로벌 투자자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런던 상장의 이점을 유지하는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 용어 설명: 예탁증서(ADR)와 직접 상장
ADR은 해외 기업 주식을 미국 은행이 대신 보관하고, 이를 증서 형태로 뉴욕 증시에 상장·거래하는 구조다. 직접 상장은 기업이 발행한 실제 보통주가 뉴욕 거래소에서 바로 거래되므로, ▲투명성 제고 ▲거래 비용 절감 ▲유동성 확대 장점이 있다.

◆ 기자 해설 및 전망
본 기자는 이번 결정을 ‘런던 시장의 구조적 한계’와 ‘뉴욕 시장의 압도적 자본력’이 교차한 결과로 본다. 영국 정부와 LSEG가 추진 중인 상장 규제 완화, 기술기업 유치 전략이 효과를 내려면 ▲대형 성장주에 대한 지속적 유동성 공급 ▲연금펀드의 국내 주식 투자 확대 ▲글로벌 투자자 대상 세제·정보 인프라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런던발(發) ‘상장 엑소더스’라는 부정적 내러티브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파운드화 대비 달러 강세가 지속되고 뉴욕 증시의 기술·바이오 섹터에 대한 밸류에이션 프리미엄이 유지될 경우, 런던 상장 기업의 ‘미국 이동 러시’는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투자자, 정책당국, 기업 경영진이 긴밀히 협력해 실효성 있는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