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 3위 경제대국인 아르헨티나가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 급락에 힘입어 2년간의 경기침체에서 빠르게 벗어났으나, 10월 중간선거가 다가오면서 성장 속도가 완만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2025년 7월 28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28명의 경제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5.0%, 내년(2026년)에는 3.4%로 둔화될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CPI) 증가율은 올해 42%, 내년 23%로 추가 하락이 예상됐다.
이번 조사 결과는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Milei) 대통령이 취임 직후 단행한 이른바 ‘체인소(chainsaw)식 긴축’ 정책이 국가 재정을 신속히 안정시키는 동시에 실질임금·고용·투자 전반에 조정을 야기했음을 시사한다. 체인소식 긴축이란 정부 지출을 대폭 삭감해 재정적자를 ‘베어내겠다’는 밀레이 대통령의 표현으로, 공공 부문의 축소와 보조금 삭감이 핵심이다.
경기 모멘텀 둔화의 주요 배경
연구기관 Adcap의 페데리코 필리피니 리서치 총괄은 “
실질임금이 최근 평탄해지고, 정책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신용공급이 둔화되면서 지난 몇 달간 성장세가 정체됐다
”고 분석했다.
실제로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시장 기반 화폐공급제도(market-based money supply scheme) 도입 이후 기준금리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는 IMF 200억 달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추진됐으며, 높은 금리는 기업 대출·투자 심리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IMF 프로그램은 2025년 4월 체결됐으며, 20억 달러 규모의 추가 자금이 10월 선거 전 집행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국제준비금 보강에 기여해 환율 불안을 완화할 ‘완충 장치’로 평가한다.
환율·무역·금융시장 동향
최근 농산물 수출 대금이 줄어들면서 외화 유입이 감소해 페소화 가치가 재차 흔들리고 있다. 경제연구소 Orlando Ferreres의 파우스토 스포토르노 이코노미스트는 “연말까지 농산물 수출이 부진해 외환시장 변동성이 이어지겠지만, 직전 몇 주보다는 완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는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높은 국가위험도(risk premium) 때문에 차입이 어려운 상황에서, 특수채권 발행과 은행간 ‘레포(repo)’ 거래를 통해 유동성을 확보해 왔다.레포는 보유 채권을 담보로 단기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법이다.
그러나 밀레이 정부의 개방정책으로 수입이 급증하며,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에는 재차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에너지·광업 수출 증가가 일부 상쇄하고 있으나, 순수지 관점에서는 여전히 무역수지 압박이 지속된다는 평가다.
정치 변수와 개혁 의제
이번 10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페론주의(Peronism) 진영은 가치절하·보호무역·산업진흥을 병행하는 과거 정책 회귀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2023년 대선에서 유권자들에게 외면받은 정책 패키지다.
반면 ‘자유전진(La Libertad Avanza·LLA)’ 당은 의회 의석 추가 확보를 통해 노동·세제·연금·국영기업 민영화 등 미완의 개혁을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씨티(Citi) 애널리스트들은 “새 의회가 출범하면 Banco Nacion·AySA·Aerolineas Argentinas 등 일부 공기업 민영화가 ‘단순 과반’ 의결만으로도 추진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용어 해설
• 체인소(chainsaw) 정책: 큰 나무를 잘라내듯 공공 지출을 대폭 ‘베어내겠다’는 의미로, 공무원 감축·보조금 삭감 등을 포함한다.
• 시장 기반 화폐공급제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고정하지 않고, 금융시장 수급에 따라 유동성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인플레이션 억제에는 효과적이나, 단기적으로 금리 변수가 경기에 부담을 줄 수 있다.
• 레포(repo): Repurchase Agreement의 약자로, 채권 보유기관이 일정 기간 후 재매입을 조건으로 채권을 담보로 현금을 빌리는 초단기 차입 거래다.
전망 및 시사점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 경제가 ‘과열 진정→정상 성장궤도’로 이동하는 과정에 있다고 평가한다. 단, 환율·금리·정치 리스크가 상존하는 만큼, 10월 선거 결과가 향후 개혁의 강도와 속도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연간 3%대 성장률과 물가 안정 추세가 유지된다면, 주식·채권·통화시장 전반의 리스크 프리미엄이 단계적으로 하향 조정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