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철강사 아르셀로미탈(ArcelorMittal)과 핀란드의 스테인리스 전문기업 아우토쿰푸(Outokumpu), 그리고 룩셈부르크계 스테인리스·특수강 업체 아페람(Aperam)이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유럽 철강업계에 드리운 먹구름을 경고했다. 세 회사 모두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관세(타리프)·수요 위축·가격 변동성 등 대내외 복합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2025년 7월 3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2분기 실적 발표 직후 오전 11시(그리니치표준시·GMT) 기준으로 세 회사 주가는 일제히 4~5% 하락했다. 투자자들은 실적보다 하반기 가이던스(전망)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며 유럽 철강 전반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스페인계 아세리녹스(Acerinox)와 스웨덴계 SSAB도 지난주 컨센서스를 밑도는 실적을 공개하며 무역 긴장과 경기 둔화를 ‘이중 악재’로 지목했다. 결과적으로 2분기 성적표는 예상보다 선방했지만, 하반기에는 수요 둔화와 가격 급변이 겹친 복합 환경이 지속될 것이라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특히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50% 철강 수입 관세가 교역 흐름을 뒤틀고 있다. 미국으로 향하던 물량이 ‘풍선 효과’처럼 유럽으로 우회하면 이미 과잉 공급 압력에 시달리는 유럽 시장의 가격 하락은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는 경고다.
· 유럽 철강 시장에 대한 각사 시각
이번 실적 시즌에서 가장 눈에 띈 회사는 아르셀로미탈이다. 같은 업종 동료들이 잇달아 비관적 메시지를 내놓은 것과 달리, 아르셀로미탈은 유럽 수요가 “다른 지역 대비 상대적으로 견조하다”고 평가했다. CFO 제누이노 크리스티노는 「글로벌 자동차 판매가 둔화하고 있지만 자사 자동차향 강재 수요는 아직 견조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아우토쿰푸와 아페람은 “유럽 수요는 여전히 침체 상태”라고 규정했다. 아우토쿰푸 CEO 카티 테르 호르스트는 저가 아시아산 수입물량과 높은 에너지 비용을 복합 악재로 거론하며 3분기 스테인리스강 출하량이 5~15% 감소할 것이라고 가이던스를 제시했다. 아페람 CEO 티모테오 디 마울로도 2025년 하반기까지 ‘높은 불확실성’을 전제하며 순차적 이익 감소를 점쳤다.
아우토쿰푸 CFO 마르크-지몬 샤어는 「시장에 뚜렷한 실수요 반등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며 유럽 경기 부진을 날 것 그대로 전했다.
이처럼 기업별 시각이 엇갈리는 배경은 제품 포트폴리오와 지역 노출도 차이에 있다. 아르셀로미탈은 자동차강·건설용 강재 비중이 높아 경기 방어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스테인리스에 집중된 아우토쿰푸·아페람은 산업재·가전 수요 둔화에 더 민감하다.
· 핵심 수치와 가이던스
룩셈부르크 본사를 둔 아르셀로미탈은 2025년 전 세계(중국 제외) 조강 수요 증가율 전망치를 종전 2.0~3.0%에서 1.5~2.5%로 낮췄다. 유럽과 미국 모두 ‘감속’ 신호가 뚜렷하지만, 특히 미국 경기 냉각을 더 크게 반영했다. 회사는 동시에 미국 관세로 인한 연간 EBITDA(핵심 영업이익) 감소 추정치를 1억 5,000만 달러로 상향했다.
아우토쿰푸는 3분기 EBITDA가 직전 분기(2억 1,500만 유로) 대비 감소할 것으로 예고했고, 스테인리스 중심의 아페람도 순차적 수익성 악화를 언급했다. 발표 직후 세 회사 주가가 나란히 52주 신저가 근처로 밀리자, 일각에선 「실적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나빠질 수 있나’가 관건」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 전문 용어 풀이
타리프(Tariff)란 정부가 특정 물품 수입·수출 시 부과하는 관세로, 자국 산업 보호·무역수지 개선 등을 이유로 설정된다. 이번 사례처럼 미국이 철강 수입품에 50%라는 고율 관세를 매기면, 해당 제품 가격이 급등해 수입이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한다. 그러나 글로벌 공급망은 ‘풍선’처럼 연결돼 있어, 미국행이 막힌 물량이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유럽·아시아로 우회할 가능성이 높다.
EBITDA(법인세·이자·감가상각 전 이익)는 기업의 현금창출력을 가늠하는 대표적 지표다. 매출총이익보다 광범위한 비용을 포함하되, 감가상각·무형자산 상각처럼 현금 유출이 수반되지 않는 회계 항목은 제외하기 때문에 현금 흐름과 가장 밀접하다고 평가된다.
· 기자 관전 포인트
이번 실적 시즌은 ‘생존력을 가르는 두 갈래 길’을 예고한다. 글로벌 자동차 수요 둔화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주문을 확보한 아르셀로미탈과 달리, 스테인리스 특화 업체들은 에너지 비용·무역 왜곡·아시아산 수입 공세라는 ‘삼중고’에 더 크게 노출됐다. 관세가 장기화할수록 시장 재편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향후 몇 분기 동안 유럽 철강업계는 ①설비 감축·구조조정 ②고부가가치 제품 확대 ③친환경 전환 투자라는 세 축 사이에서 ‘선택과 집중’을 서두를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자라면 글로벌 자동차·건설 경기, 무역 정책 변화, 에너지 가격 등 거시 변수와 함께 각사 포트폴리오 차별성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탄소국경조정제(CBAM) 등 환경 규제와도 맞물려 유럽 철강사의 시장 방어 전략이 실적 변동성을 결정지을 핵심 요인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