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발 글로벌 럭셔리 산업이 구조적 둔화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조르지오 아르마니 그룹의 기업가치 산정이 새로운 관심사로 떠올랐다. 업계 관계자들과 애널리스트들은 아르마니 브랜드가 보유한 향수·화장품 및 아이웨어(안경) 부문의 실적이 정체된 패션 사업을 상쇄하며 인수 후보군의 시선을 끌고 있다고 분석한다.
2025년 9월 17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아르마니 그룹은 2024회계연도에 23억 유로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5% 감소한 수치로, 글로벌 소비 위축과 캐주얼웨어 선호 확대에 따른 클래식 수트 수요 약세가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공시 자료를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르마니가 로레알(L’Oréal)과 에실로룩소티카(EssilorLuxottica)에 제공한 라이선스 제품 매출을 합산할 경우, 브랜드 전체 매출은 무려 42억 5,000만 유로로 거의 두 배로 뛰어오른다. 1988년 체결돼 현재까지 유지 중인 이 장기 라이선스 계약은 아르마니의 향수·화장품과 안경을 각각 양 사가 제조·판매하고, 판매액 중 일정 비율을 로열티로 지급하는 구조다.
1. 라이선스 사업이 가져오는 실질적 가치
업계 추정치에 따르면, 아르마니 뷰티 부문(로레알 생산)은 연간 약 15억 유로, 아르마니 아이웨어 부문(에실로룩소티카 생산)은 약 5억 유로를 각각 창출한다. 그중 10%가량이 로열티로 아르마니 본사에 귀속된다. 로열티는 계약 기간 동안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입되기 때문에, 직접 생산과 재고 위험을 떠안지 않으면서도 수익성을 방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아르마니 그룹의 자체 패션 부문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3%에 그쳤다. 같은 기간 로레알은 20%, 에실로룩소티카는 17%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
잠재적 인수자가 아르마니를 평가할 때, 패션이 아닌 라이선스 제품 포트폴리오가 가격 형성의 핵심 변수가 될 것
“이라고 설명했다.
2. 후보 기업: 로레알·에실로룩소티카·LVMH
지난 9월 4일 별세한 고(故)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유언장에는 LVMH와 함께 장기 파트너사인 로레알, 에실로룩소티카가 “우선 협상 대상”으로 명시됐다. 구체적으로는 15% 지분을 우선 매각한 뒤, 차후 추가 지분을 동일 기업에 넘기거나 상장을 추진한다는 절차가 규정돼 있다.
로레알은 2022년 에스티 로더가 브랜드 톰 포드를 인수한 뒤 의류·아이웨어 부문을 외부에 재라이선스한 선례를 벤치마킹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본업인 뷰티 외에 패션 사업까지 관리해야 한다는 복잡성은 잠재적 부담 요인이다.
에실로룩소티카 역시 2024년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슈프림(Supreme)을 인수하며 패션 영역에 첫발을 디뎠으나, 여전히 “메드테크(의료·기술) 그룹” 전환 전략을 강조하고 있어 대규모 패션 레이블 인수에는 신중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편, LVMH는 패션·뷰티·주얼리 등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로 인해 전사적 시너지 창출 능력이 돋보인다. 아이웨어 부문은 자회사 텔리오스(Thelios)를 통해 흡수할 수 있으며, 뷰티 역시 핵심 사업 영역이다. 다만 2050년까지 유효한 현행 라이선스 계약 때문에 단기간 내 전 부문을 내부화하기는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3. 전문가 진단 및 전망
HSBC의 애널리스트 에르완 랑부르그는 “아르마니는 훌륭한 아이웨어·뷰티 브랜드이지만, 레디투웨어(기성복) 시장에서의 존재감은 예전만 못하다“고 평가했다. 모닝스타 애널리스트 댄 수 역시 “남성 향수 부문에 대한 아르마니의 브랜드 파워는 여전히 견고하다”며, 로레알 CEO 니콜라 이로니무스가 ‘스트롱거 위드 유’ 향수를 두고 “Z세대 남성 사이에서 현상(pop phenomenon)”이라 언급한 사례를 예로 들었다.
라이선스(license)는 브랜드 소유주가 타사에 상표·디자인·기술 등을 사용할 권리를 부여하고, 대가로 정해진 로열티(royalty)를 받는 사업 모델이다. 위험은 낮고 현금 흐름이 안정적이지만, 계약 기간 동안 브랜드 통제권 일부를 넘겨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향후 인수전에서 결정적 변수는 ① 라이선스 계약 기간·조건, ② 조르지오 아르마니 재단의 거부권, ③ 인수 기업의 포트폴리오 적합성이 될 전망이다. 특히 재단이 지분 구조에 거부권(veto)을 행사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돼 있어, 인수 주체와 재단 간 협력 구도가 필수적이다.
4. 환율 및 시장 영향
기사 작성 시점 기준 유로화는 달러당 1/0.8474 유로(약 0.85유로)를 기록했다. 환율 변동은 미국 시장에 상장된 아르마니 관련 ETF·지수나 파생상품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투자자들은 패션 부문 정체로 인한 단기 리스크와 뷰티·아이웨어 부문의 성장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한 애널리스트는 “아르마니 지분 인수 여부와 조건이 확정되면, 럭셔리 섹터 재평가(re-rating)의 촉매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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