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AI 인재 쟁탈전, 남겨진 ‘좀비 스타트업’ 속출

“CEO가 됐지만 울음바다였다.” 실리콘밸리 AI 코딩 스타트업 윈드서프(Windsurf)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 제프 왕(39)은 지난 7월 11일, 예고 없이 임시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공동창업자와 핵심 연구진이 구글로 이직하는 24억 달러(약 3조2,000억 원) 규모의 라이선싱 계약을 체결하고 회사를 떠난 탓이다.

2025년 8월 19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윈드서프 임직원 다수는 그날을 ‘눈물의 금요일’이라 부른다. 왕 CEO는 “직원들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데 남은 것이 없다고 절규했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Google snatches Windsurf CEO

윈드서프 사례는 메타(Meta), 구글(Google),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아마존(Amazon) 등 ‘빅테크’가 막대한 현금을 앞세워 AI 스타트업의 창업자와 핵심 인력을 통째로 ‘포획’(talent grab)하는 최신 트렌드를 잘 보여준다. 창업자와 수석 연구원들은 거액을 챙기지만, 투자자·잔류 직원·법인 자체는 ‘생존 불능의 껍데기’로 전락한다.


“조직이 텅 비었다” – 좀비 스타트업의 탄생

투어링 캐피털(Touring Capital)의 사미르 쿠마르 파트너는 “남은 회사는 ‘좀비’와 같다”고 단언한다. “조직이 속빈 강정이 됐고, 미래 전망이 큰 물음표”라는 것이다.

실질적 인수·합병(M&A)이었다면 투자금 회수 구조가 명확했겠지만, 지금은 돈의 흐름이 창업자·리더 개인에게 편중된다.” – 로브 토우스, 레디컬 벤처스 파트너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25년 6월 메타가 데이터 라벨링 스타트업 스케일AI(Scale AI)에 143억 달러를 투자, 지분 49%를 확보하고 CEO 알렉산더 왕을 ‘초지능 연구소’ 책임자로 영입한 거래다. 그러나 한 달 뒤 스케일AI는 전체 인력의 14%인 200명을 정리해고했다.

Meta ScaleAI deal

비슷한 전략은 마이크로소프트(2024년 3월 인플렉션AI), 아마존(2024년 6월 어댑트·같은 해 8월 코베리언트), 구글(2024년 8월 캐릭터AI) 등 곳곳에서 재연됐다.


규제 회피를 위한 ‘지분 소수 인수’ 플랜

이 같은 ‘반(反)인수합병’ 구조는 2022년 말 챗GPT(ChatGPT) 출시 후 본격화됐다. 당시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빅테크 M&A에 제동을 걸고 있었고, 유럽·영국 규제당국 역시 견제를 강화했다. 빅테크는 지분 50% 미만만 취득하고 인력·IP(지식재산권)만 흡수하는 방식으로 사전심사(HSR 신고) 요건을 교묘히 피해 갔다.

멘로벤처스의 매트 머피 파트너는 “‘필요한 것만 사들이고 나머지는 버린다’는 새 플레이북이 정착했다”고 평가했다.


윈드서프: 무산된 오픈AI 인수, 그리고 급전개

윈드서프는 올봄 오픈AI와 약 30억 달러 규모 인수를 논의했으나, 독점 우려 속 마이크로소프트의 간접 지분 구조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5월 1일 독점 협상 기한이 만료되며 무산됐다. 그 공백을 파고든 곳이 구글이었다.

구글과 공동창업자 바룬 모한·더글러스 천이 체결한 24억 달러 라이선스 계약 발표 직후, 왕 CEO는 12시간 넘게 투자자·고객·헤드헌터의 전화를 받으며 상황 수습에 나섰다. 이후 AI 코딩 스타트업 코그니션(Cognition)이 윈드서프의 IP·상표·인재를 2억5,000만 달러에 인수한다고 7월 14일 발표했다. 이는 오픈AI가 논의했던 금액의 10% 미만이다.

코그니션 CEO 스콧 우는 “극한 성과 문화”를 강조하며, 새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운 직원에게 9개월 급여와 의료보험을 조건으로 자발적 퇴사를 제안했다. 왕 CEO는 “로켓에 올라타려는 구경꾼은 필요 없다”고 말했으나, 자신 또한 통합 이후 역할이 불투명하다고 털어놨다.


캐릭터AI·인플렉션·코베리언트: 인재 유출 후폭풍

구글은 2024년 8월 캐릭터AI 공동창업자 노암 샤지어·다니엘 데 프레이터스를 재영입하며 27억 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창업자 부재로 한 달 만에 최대 10% 직원이 이탈했지만, 법률책임자 도미닉 페렐라 임시 CEO는 “70명 규모 제품팀은 건재”라며, 2,000만 월간활성이용자(MAU)·250% 유료가입자 증가 등을 근거로 ‘좀비’ 논란을 부인했다.

인플렉션AI는 2024년 3월, 공동창업자 무스타파 술레이만 등이 마이크로소프트로 이동하며 6억5,000만 달러를 수령했다. 술레이만은 과거 구글 딥마인드 공동창업자로 유명하다. 현재 인플렉션은 50명 체제로 기업용 AI ‘Pi’를 개발 중이다.

아마존은 2024년 8월 로보틱스 AI 스타트업 코베리언트 창업자 3명과 직원 25%를 흡수하며, 4억 달러 이상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고발자는 “거래 구조가 FTC 심사를 피하도록 설계됐다”며 FTC·DOJ·SEC에 제소했다. 잔류 인력은 10~15%에 불과하며 신규 고객 발표도 끊겼다.


용어 풀이 및 산업적 의미

• 제너레이티브 AI(Generative AI): 기존 데이터를 학습해 텍스트·이미지·음악 등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하는 인공지능 기술.
• 어콰이어-하이어(Acquihire): 회사를 인수(Acquire)해 제품보다 인력(Hire)을 확보하려는 전략. 최근 사례는 ‘지분 소수 투자+대규모 인력 이동’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AI 경쟁이 격화될수록 스타트업 생태계의 ‘중간층’이 사라지고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독립적 스케일업 및 IPO(기업공개) 경로가 막히면, 혁신 원천이 좁아져 장기적으로는 소비자 선택권과 고용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 시각 – ‘창업자 엑소더스’가 남긴 과제

기자는 이번 취재를 통해 “창업자가 조기 ‘엑시트’(Exit)하는 현상”의 양면성을 확인했다. 창업자 개인은 리스크 없이 큰 보상을 얻지만, 그 과정에서 회사·투자자·직원·고객이 전가(轉嫁)받는 불확실성은 막대하다. 규제 당국이 소극적으로 대응할 경우, 빅테크가 연구개발(R&D) 생태계를 사실상 ‘사설 인력풀’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동시에 세컨더리 거래(창업자·직원이 보유 지분 일부를 벤처캐피탈에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를 활성화하면 조기 이탈 유인을 완화할 수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하지만 빅테크의 천문학적 ‘서류봉투’ 앞에서는 여전히 역부족이라는 게 현장의 공통된 토로다.

결국 “누가 AI 인재를 지배할 것인가”라는 거대 담론이, 스타트업의 존폐 및 국가경쟁력과 직결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