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의 청정 에너지(renewable power) 수요가 미국 전력망의 증설 속도를 앞지르면서, 태양광과 에너지 저장 설비에 대한 투자 매력이 급부상하고 있다.
2025년 11월 1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 UBS는 “데이터센터의 100% 재생에너지 전환 요구가 기존 공급 능력을 넘어서는 구조적 공급 부족을 초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UBS는 “이 같은 희소성(scarcity)이 미국 태양광(solar)·배터리(storage) 업체의 가격 결정력(pricing power)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최근 추진된 세 건의 대형 프로젝트만 살펴봐도 수요·공급 간 괴리는 명확하다.
OpenAI, Oracle, Vantage Data Centers가 미국 위스콘신주에 태양광·풍력·배터리로만 전력을 공급받는 초대형 캠퍼스를 조성 중이다.
구글(Google)은 탄소 포집 기술(CCS)을 탑재한 천연가스 발전소와 장기 계약(PPA)을 체결했고, 브룩필드(Brookfield)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중단됐던 원전 프로젝트를 재가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UBS는 보고서에서 “아마존, 애플,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6개 기술기업의 전력 수요가 현재 추세대로 증가할 경우, 2028년 초에는 미 전체 유틸리티 규모 태양광 발전량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단일 산업군이 한 국가의 전체 태양광 설비 규모를 초과하는 첫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산업 구조적 변화: ‘예스 앤드(Yes-and)’ 전략>
수요 폭증은 ‘태양광이냐 풍력이냐’와 같은 이분법적 선택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UBS 애널리스트는 “기업들은 태양광·풍력·원전·가스+CCS 등 가용한 모든 저탄소 전원을 동원하는 ‘예스 앤드(Yes-and)’ 전략으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전환의지 부족이 아니라, 물리적 한계(physical limits)가 문제임을 시사한다.
전력시장에서 PPA(Power Purchase Agreement·전력구매계약)는 통상 1~3년 전 체결됐지만, 최근에는 5~10년까지 선계약이 이뤄지고 있다. 이는 공급 부족이 지속될 것이라는 시장 기대가 반영된 결과다. UBS는 “심지어 세제 인센티브(ITC, PTC)가 만료되더라도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투자 의지가 꺾이지 않을 것”이라며, 퍼스트솔라(First Solar), 넥스트래커(Nextracker)를 단기 수혜주로 꼽았다.
<왜 AI 데이터센터가 ‘전력 먹는 하마’가 됐나>
생성형 AI(Generative AI) 모델은 GPU(Graphics Processing Unit)·TPU(Tensor Processing Unit) 등 고집적 반도체를 대규모로 병렬 구동한다. 이들 칩은 섭씨 수십 도의 열을 발생시키며, 냉각(Cooling) 설비와 함께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UBS는 이를 “석유가 아닌 전기로 움직이는 2차 산업혁명”으로 규정했다.
여기에 미국 전력망(Grid)은 40년 이상 된 노후 인프라가 적지 않다.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들어선 중서부(Corn Belt)에서 주요 소비처인 해안지역(Coast)까지 전력을 운송하려면 초고압 송전선(HVDC) 구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인허가 지연·지역 반발 등으로 진척이 더디다. UBS는 “전력망 적체(Grid congestion)가 차세대 먹거리 산업의 병목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자 전략: 공급 희소성이 부른 ‘밸류에이션 재평가’>
시장에서는 공급망(Supply chain) 안전성, CAPEX(설비투자비) 상쇄 효과 등을 이유로 태양광 모듈·트래커·배터리 제조사의 마진 개선이 기대된다. UBS는 “주가가 실적을 선반영하지 못해 밸류에이션 리레이팅이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퍼스트솔라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7배에 그쳐, S&P500 에너지 섹터 평균 20배를 하회한다.
또 다른 수혜 분야는 에너지 저장(ESS)이다. 태양광·풍력은 간헐성이 크기 때문에, 4~8시간 저장이 가능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UBS는 “저장 비용이 MWh당 100달러를 하회하면, 가스 피크발전소(Peaker)를 대체하는 경제성이 확보된다”고 내다봤다.
<용어 설명>
탄소 포집·저장(CCS)은 발전소 굴뚝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CO₂)를 포집해 땅속에 주입·격리하는 기술이다. PPA는 전력 생산자와 소비자가 장기간(통상 10~20년) 전력 가격과 공급량을 계약해 가격 변동성을 낮추는 제도다. HVDC는 AC(교류)보다 송전 손실이 적어, 장거리·대용량 전력 수송에 적합하다.
<전문가 시각>
기자는 이번 UBS 보고서를 통해 ‘에너지 전환(Energy Transition)’ 담론이 단순한 친환경 캠페인을 넘어, 국가 산업 경쟁력 문제로 격상됐음을 확인했다. 미국 IT 대기업이 사실상 새로운 ‘전력 수급 계획’을 좌우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는 전력 시장의 공공재 성격과 민간 기업의 초과 수요가 충돌할 때 나타나는 구조적 긴장을 보여준다.
특히 원전 재가동은 ‘넷제로(Net-Zero)’ 달성과 전력망 안정도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된다. 다만 ▲건설 기간 ▲규제 리스크 ▲폐기물 관리 비용 등 난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관건이다. 반면 단기적으로는 모듈 효율 향상과 CAPEX 절감으로 빠르게 증설 가능한 태양광·ESS가 최적 솔루션이라는 데 이견이 적다.
UBS는 “시장 참가자들이 수십 년간 이어질 미국 전력 인프라 확장 사이클의 규모를 저평가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인프라 펀드·신재생 ETF 등 장기 투자 상품에 대한 관심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