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칼라브리아 연결 ‘세계 최장 단일 경간’ 메시나 해협 교량, 주민 반발 속 정부 최종 승인

MESSINA, Italy — 이탈리아 정부가 시칠리아와 본토 칼라브리아 사이를 잇는 세계 최장 단일 경간 교량 건설을 최종 승인함에 따라,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숙원 사업이 또다시 법적 공방에 휘말릴 전망이다.

2025년 8월 8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우파 정부는 전날 메시나 해협(Strait of Messina)에 길이 3.7km, 예상 사업비 135억 유로(약 15조8,000억 원) 규모의 교량 건설안을 확정했다.

멜로니 내각의 결정에 대해 현지 주민‧환경단체‧법률가들은 “해협을 건드려선 안 된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시칠리아 메시나 시(市)에 거주하는 75세의 마리오리나 데 프란체스코 씨는 “집 값을 세 배로 준다고 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풍경이다”라고 강조했다.

사업구간 내 주택·토지 수용 규모는 시칠리아와 칼라브리아에서 총 440여 필지로 추정된다. 데 프란체스코 씨의 주택은 예정된 399m 높이 육상 주탑 인근에 위치한다. 그는 “우리 변호사들이 행동에 나설 것이고, 공사를 막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마테오 살비니 인프라‧교통부 장관은 “예비 공사를 9~10월 중 시작하고, 2032년 준공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수용 대상 주민에게 “관대한 보상”을 약속했으나, 당장 소송전이 불가피하다.

법정 공방 불가피
사업시행사인 ‘메시나 해협 회사(Strait of Messina Co.)’의 피에트로 추치 최고경영자(CEO)는 일간 라 스탐파에 “무수한 행정소송이 시간을 갉아먹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환경단체들은 이미 EU 집행위원회에 생태계 훼손 가능성을 이유로 정식 이의를 제기했다.

시칠리아 메시나 최북단 토레 파로(Torre Faro) 일대는 두 개의 석호(潟湖)를 품은 자연보호구역으로, 본토 칼라브리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세기적 관문을 꿈꾸는 정부 입장과 달리, ‘노 브리지(No Bridge)’ 주민위원회는 “환경적 가치와 높은 지진 위험 때문에 부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지진 위험·소음 우려
메시나 해협은 1908년 규모 7.1의 대지진으로 8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지역이다. 주민들은 “공사가 장기화돼 일상이 파괴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회사 측은 “설계 기준을 리히터 규모 7.5 이상으로 잡아 활단층(Active Fault)을 피했다”면서, ※활단층: 지질학적으로 최근에도 움직인 단층이라 설명했다.

계획을 수주한 ‘유로링크(Eurolink)’ 컨소시엄(주관사: 이탈리아 웨일드빌트)은 “저개발 남부 경제를 활성화할 것”이라고 자평했다. 71세의 주민 주세페 카루소 씨는 “젊은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된다면, 시칠리아도 변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마피아 차단·국방 예산 편성 검토
정부는 코사 노스트라(Cosa Nostra), 은드랑게타(’Ndrangheta) 등 범죄 조직의 관여를 차단하겠다고 강조한다. 국방비로 분류해 NATO 방위비 목표치 달성에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주택 수용은 공정 진척 속도에 맞춰 단계별로 이뤄질 예정이다. 활동가들은 “최종적으로 약 1,000명이 거주지를 잃을 수 있다”며, 2011년 85억 유로에서 135억 유로로 늘어난 사업비가 EU 공공조달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메시나 주민 측 변호인 안토니오 사잇타는 “EU 규범을 따르는 법치국가에서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며, 10월 말까지 행정법원( TAR ) 제소가 핵심 저지 수단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불가피한 상승”이라 반박했다.

행정법 전문가 잔루카 마리아 에스포지토(로마 사피엔차대 교수)는 “공익이 사익에 우선하기 때문에 저지 가능성은 매우 낮다”면서, “시민은 정당 보상만 받을 권리가 있을 뿐 사업 자체를 멈출 순 없다”고 설명했다.

환율: 1달러 = 0.8564유로


■ 심층 해설 및 기자 전망

이번 교량은 ‘현수교’ 방식으로 중앙 경간 3,300m를 한 번에 잇는 구조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세계 교량 기술의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대형 인프라가 항상 경제적 활력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 남부 고속철도, 바리 항만 개발 사례에서도 보듯, 건설 이후 운영·물류 네트워크가 함께 갖춰져야 투자 효과가 극대화된다.

또한 ‘은드랑게타’는 연매출 500억 유로 규모의 거대 마피아 조직으로, 북미·독일까지 뿌리를 넓히고 있다. 정부가 밝힌 ‘화이트 리스트(철저 신원조회 받은 업체만 참여)’ 제도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감시·제재 권한을 독립기관에 이양하고 지역 경제의 현금 의존도를 낮추는 병행 정책이 요구된다.

법적 측면에선, 조달 지침 2014/24/EU에 따라 “본질적 변경(Substantial Modification)”이 인정될 경우 입찰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사업비 60% 증액이 이 요건에 해당하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유럽사법재판소(CJEU) 판단이 내려질 경우 사업 일정이 수년 더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결론적으로, 메시나 해협 교량은 기술·경제·정치·법률·사회·환경 등 복합 요소가 얽힌 초대형 프로젝트다. 지역 균형발전과 지중해 물류 허브 구축이라는 ‘큰 그림’을 달성하려면, 주민 설득·생태 보전·재원 투명성 확보라는 세 가지 전제를 충족해야 할 것이다. 공익과 사익, 전통 경관과 현대 인프라가 충돌하는 이번 논쟁은 향후 유럽 대규모 사업 추진 모델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