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저비용항공사(LCC) 스피릿항공(Spirit Airlines)이 앞으로 1년 안에 충분한 현금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기업 존속 자체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CNBC·Kevin Carter 사진
2025년 8월 12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 3월 파산보호 절차(Chapter 11)를 마치고 단 5개월 만에 ‘회생 기업’ 꼬리표를 뗀 스피릿항공이 다시 한 번 유동성 압박에 직면했다. 회사 측은 12일(현지시간) 제출한 2분기(4~6월) 보고서에서 “추가 현금 조달이 실패할 경우 채무 契約(계약)을 위반해 연쇄 디폴트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스피릿항공은 “부채 구조조정을 통해 상당한 금융비용을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내선 공급 과잉과 레저 수요 침체가 맞물리면서 2025년 2분기 운임이 예상보다 크게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매출·현금흐름이 채권단과 맺은 최소 유동성 조항(minimum liquidity covenants)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보고서 원문 “Because of the uncertainty of successfully completing the initiatives to comply with the minimum liquidity covenants … there is substantial doubt as to the Company’s ability to continue as a going concern within 12 months from the date these financial statements are issued.”
‘going concern’은 회계 용어로 ‘기업이 특별한 제약 없이 12개월 이상 영업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기업이 이 가정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 것은 투자자·채권자에게 사실상 구조조정 혹은 추가 자금 수혈이 불가피함을 시사하는 신호로 여겨진다.
회사는 현금 확보 방안으로 ▲항공기 매각·재리스(leaseback) ▲부동산 및 공항 슬롯·게이트 매각 ▲추가 차입 또는 신규 지분 발행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다만 “각 이해관계자와의 협의 결과에 상당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파일럿 270명 추가 유급휴직…비용 절감책 ‘총동원’
스피릿항공은 이미 대규모 인력 감축 계획을 실행 중이다. 지난달 28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올가을 추가로 270명의 조종사를 일시 해고(furlough)하고, 100명 이상의 조종사를 직급 강등(downgrade)할 예정이다. 임금이 높은 조종사 인건비를 줄여 고정비를 절감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회사는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더 넓은 좌석·기내 와이파이·프리미엄 짐 수하’ 등 고급화 상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팬데믹 이후 강화된 ‘서비스 질 중시 흐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지난해 제트블루(JetBlue Airways)의 인수 합병이 무산된 충격과 프랫앤휘트니(Pratt & Whitney) GTF 엔진 리콜로 다수의 A320 항공기가 장기간 지상에 묶인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파산 재진입? 2011년 이후 최대 규모 위기
스피릿항공의 2024년 파산은 2011년 아메리칸항공 이후 13년 만에 등장한 미국 대형 항공사 파산 사례였다.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는 초저가 운임(Ultra Low Cost) 시장에서 선두 주자였던 스피릿은 노란색 동체로 상징되는 ‘플라잉 택시’ 이미지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최근에는 Δ고유가 Δ정비 비용 증가 Δ소비자 기호 변화 등의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참고로 ‘초저가 운임 모델’은 수하물·좌석 지정·음료 등 부가 서비스에 별도 요금을 부과해 기본 운임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주거래 고객층인 레저 여행객이 인플레이션으로 지갑을 닫으면서, 가격만으로 승부하기 어려운 구도가 형성됐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투자자·채권단 반응과 향후 일정
스피릿항공은 이번 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연내 3억~4억 달러 수준의 유동성 확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채권자는 “최소 유동성 조항 위반이 확정되기 전에 담보 자산 매각이나 DIP(Debtor-in-Possession) 론을 통해 시간을 벌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시장 관심은 부동산·게이트 매각이 현실화될 경우 항공 네트워크 축소가 어느 정도로 진행될지, 그리고 2026년 만기 회사채를 어떻게 재융자할지가 관건이라는 데 모아진다. 일각에선 유동성 확보 실패 시, Chapter 22(재파산)에 돌입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주요 용어 설명
Going Concern : 한국어로 ‘기업 존속 가정’. 재무제표 작성 시 기업이 1년 이상 정상 영업을 지속할 것이라는 전제.
Liquidity Covenant : 대출 계약 시 차입 기업이 유지해야 할 최소 현금 및 현금성 자산 한도.
Furlough : 정리해고가 아닌 일시 해고로, 고용관계를 유지한 채 무급 또는 부분 급여 상태로 휴직.
한편, CNBC는 같은 날 게재한 관련 기사에서 “델타항공(Delta)과 유나이티드항공(United)이 프리미엄 노선과 서비스 투자로 차별화 전략을 펼쳐 업계 격차를 벌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스피릿항공처럼 비용 절감 중심의 울트라 로우 코스트 전략이 구조적으로 한계를 맞고 있음을 방증한다는 평가다.
스피릿항공 주가는 이번 ‘존속 불확실성’ 공시에 장 초반 12% 급락했지만, 장 마감 무렵 8% 하락으로 낙폭을 일부 만회했다. 투자자들은 앞으로 발표될 3분기(7~9월) 예약률과 추가 자산 매각 진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